EA 독과점 시장에 던진 출사표... 알고 보니 매우 영리한 전략
EA의 상술에 질려버린 고인물 유저들 대거 유입 기대감 상승
크래프톤 신작 '인조이(inZOI)'가 마침내 시장에 나왔다. 3월 28일 스팀 얼리액세스를 앞두고 게임 평가가 엇갈리면서 장르 구도에도 불이 붙었다.
'인조이'는 언리얼 엔진5를 기반으로 한 인생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중요한 것은 장르였다. 첫 공개부터 세계적인 기대를 낳은 이유이자, 우려가 함께 흘러나온 이유다. 인생 시뮬레이션은 사실상 '심즈'였고, 모든 시스템이 심즈 시리즈에서 파생됐기 때문이다.
김형준 디렉터는 인조이 기획 동기로 아들과의 일화를 꼽았다. 함께 심즈를 즐기다 "최신 그래픽으로는 이런 게임이 없느냐"는 아들의 질문에 개발을 시작한 것. 한 개발자의 낭만적인 계기는 물론이고, 크래프톤이 이를 승인한 뒤 대규모 투자에 나선 것도 이례적인 도전이다.
심즈 독점 장르에 크래프톤이 신작을 꺼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이 매력적이라면, 왜 다른 곳들은 지금껏 참여하지 않았을까. 인생 시뮬레이션은 깊게 오래 겪어보지 않았다면 속사정을 알기 힘든 분야다. 그리고 심즈 유저 관점에서 말하자면, 인조이의 도전은 가치가 있는 동시에 합리적인 접근이다.
■ 심즈류, '엄청나게 큰 외딴섬'을 만들고 점령하다
인생 시뮬레이션 장르는 외딴섬 같은 시장 형태를 띤다. 취향에 맞는 사람은 한 게임에 10년 동안 수천 시간을 몰입하는 일도 흔하고, 맞지 않는 사람들은 게임 최초의 메커니즘부터 이해하지 못하기도 한다. 단지 섬이 대륙에 가까운 크기일 뿐이다.
그 대형 섬에서 혼자 군림해온 것이 '심즈' 시리즈다. '심즈류'를 처음 탄생시켰고, 지금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시스템을 정립했다. 내 마음대로 살아가며 주변을 설계한다는 개념을 게임화했고, 파급력은 엄청났다. 시리즈 누적 매출 50억 달러(7조 원)와 판매량 2억 장 돌파. 단 4개 타이틀만으로 이룬 성적이다.
'심즈류'를 표방한 아류작은 여럿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소규모 프로젝트였고, 오래 버티지 못하거나 출시조차 하지 못하고 사라졌다. 대형 게임사에서 경쟁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개발은 끔찍하게 어렵고, 승산은 높지 않은 시장'이기 때문이다.
인생 시뮬레이션은 개발 난도 최상위권 장르다. 넓은 마을이나 도시 속에서 수많은 오브젝트와 상호작용하고, 따로 생활해가는 NPC들과 영향도 주고받아야 한다. 수만 개 선택지를 조합하다 보면 무한에 가까운 변수가 나온다. 그래서 심즈 시리즈 역시 상상도 못한 버그가 지금까지도 튀어나오곤 한다.
새로운 요소 하나를 추가할 때마다 그 모든 호환을 고려한 QA와 적용 노하우가 필요한데, 경력자는 당연히 찾기 어렵다. 심즈를 개발한 EA 산하 맥시스가 유일하고 그마저도 스튜디오 일부가 폐쇄되는 악조건 업계다.
심지어 그 어려운 개발을 해내도 '심즈'라는 강력한 상징을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아무도 모르던 신규 IP가 장르 점유율 97%에 달하는 7조원 매출 IP를 상대해야 한다. 다른 장르에 눈을 돌리는 편이 개발진 구축과 흥행 기대에서 모두 큰 이득이다.
최적화는 당연히 잡기 힘들다. '심즈3' 초기 플레이 경험이 있다면 인조이를 체험하고 "그때보다는 무난하네"라는 감상이 가능하다. '심즈4'가 프레임과 렉에서 그나마 해방됐지만, 그 대가로 화면 하나만 건너가면 로딩을 기다리는 시련을 선사해야 했다.
■ 대체재 수요가 생겼고, 크래프톤은 여유가 있다
2023년, 크래프톤은 인조이를 최초 공개하면서 이런 위험한 시장에 뛰어들기를 선언했다. 하지만 크래프톤이 미련한 것은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업적으로도 가능성이 존재하는 장르가 됐기 때문이다.
심즈가 장르의 선구자이자 기둥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독점이 길어지며 폐해도 커졌다. '심즈4'는 지금까지 무수한 콘텐츠를 쌓아왔다. 대신 무료 업데이트는 극소수였고, 전부 비싼 가격의 DLC 판매였다.
현재 심즈4 콘텐츠를 모두 즐기기 위해서는 할인 없이 약 150만원을 지불해야 한다. 심즈3부터 DLC 쪼개 팔기로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심즈4는 더 많은 팩을 팔았고 무료 패치는 더 부실했다. 2014년 출시 후 지금까지 아무런 경쟁자가 없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10년 넘는 시간이 흐르면서 그 '심즈'도 개발 감축이 들어가고 신작 출시도 요원하다. 심즈 팬들의 원성은 날로 커졌지만 대체재는 없었다. 인조이 트레일러와 게임 정보에 수많은 해외 유저들의 환호성이 터진 이유다.
심즈를 확실히 앞서고 DLC 구매 부담도 줄인다면 거대 외딴섬 시장 정체를 승계할 수도 있고, 독점 구도에 균열만 내도 상호 경쟁을 통한 발전이 가능하다. 어려운 개발이고, 초창기부터 성공할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 하지만 기업이 시간과 자금에 여유가 있다면 투자할 가치는 충분하다.
■ 현재 시대에 맞춘 운영 설계가 가능해졌다
크래프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당장의 돈보다 IP와 새로운 유저층이다. 이런 관점에서 '심즈'의 계승은 어렵지만 매력적인 카드다. PUBG와 수요가 거의 겹치지 않고, 성공할 경우 문화적 영향력으로 뻗어나갈 잠재력도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부가적인 운영 잠재력도 열려 있다. 인생 시뮬레이션은 이론상 현실 속 수많은 브랜드와 협업이 가능했다. 심즈 시리즈는 애니메이션 화풍으로 한계가 있지만, 인조이의 실사형 모델링이라면 충분하다. 의류, 자동차, 가전, 가구, 요식업, 건물에 이르기까지 콜라보레이션이 불가능한 분야가 거의 없다.
인조이 체험판은 바로 그 점이 흥미로웠다. 이미 건축 모드 가구 선택에 삼성과 LG 브랜드의 노트북, 스피커 등 전자기기가 포함되어 있다. 현실 제품 그대로의 모델링이다. 자동차에도 익숙한 브랜드가 보인다.
이런 비즈니스 모델이 활성화된다면, 유저들에게 부담을 전가하지 않는 방식으로도 사업 확장이 가능하다. 이미 게임 내에 전광판이나 광고판을 달 수 있는데, 이를 활용하는 것도 지금 시대에는 가능한 선택지다.
현재 인조이는 멀티플레이 콘텐츠가 없지만 온라인 연결이 필수다. 창작 공유 플랫폼 '캔버스' 때문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더 나아가 기간별 이벤트 운영이 가능해서일 수도 있다. 특정 브랜드와 기간 계약을 맺고 의상과 가구 아이템을 제공하는 등 유연한 협업 방식이 가능하다. 이를 응용해 인게임에 색다른 느낌을 주는 운영도 생각할 만하다.
■ 그래서, '인조이' 얼리액세스 평가는 실패일까?
인조이는 28일 얼리액세스를 앞두고 데모 버전을 공개했다. 최적화와 콘텐츠 깊이에 대해 혹평도 나온다. 중요한 점은, 아직 미래 가능성을 보는 시기라는 것이다.
간단히 예시로 들면, 심즈3는 출시 후 16년이 흐른 현재 최상급 PC에서도 프레임을 온전히 잡을 수 없는 게임이다. 심즈4는 본편 출시 당시에 현재 인조이처럼 깊이가 전혀 없고 로딩만 가득한 게임이라는 혹평을 받았다. 당시 메타크리틱은 70점이다. 지금도 확장팩 구매가 없다면 그 평가는 변함이 없다.
그 사이 기술이 발전했다고 완벽 해결될 일이 아니다. 하이퀄리티 그래픽으로 인한 연산량은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인조이가 그 사이에서 치밀한 고민을 했다는 점은 게임 구획 설정부터 드러난다. 완전한 심리스는 피하되, 최적화 어려움을 감수하더라도 하나의 구획 반경은 심즈4보다 훨씬 넓혔다.
그 결과 심즈3보다는 최적화를 잡았다. 심즈4보다는 로딩과 기본 틀의 볼륨에서 향상됐다. 반대로 말하면 심즈3의 심리스 오픈월드를 구현하지 못했고, 심즈4의 최적화를 따라가지 못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두 타이틀 모두 심각한 단점이 지금까지 내려왔음을 고려하면, 인조이의 선택은 길게 바라보기 위한 타협책으로 해석할 수 있다.
■ 심즈4가 "이제 게임 같다"는 말을 듣기까지 3년 걸렸다
장르 특성, 개발 관점, 사업 관점, 장르 팬심을 모두 고려할 때 인조이 얼리액세스 결론은 다음과 같이 내리고 싶다. '예측 범위 내에서 최상의 잠재력'이라고.
막 출시된 시점의 본편과 본편을 비교할 때, 인조이는 심즈4에 비해 깊이가 전혀 부족하지 않다. 멀티 태스킹 단 하나가 아쉬울 뿐이다. 다만 바깥에서 바라보는 경쟁 대상은 150만원 어치 DLC가 장착된 심즈4다. 어떤 개발의 달인들이 모여도 얼리액세스부터 이를 뛰어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심즈류' 경쟁 구도는 장기전이다. 인조이는 이 정도면 최선을 다해 출발했다. 앞으로 적어도 3년은 지켜봐야 한다. 콘텐츠와 상호작용의 디테일이 얼마나 풍부하게 채워질지, DLC 구매 부담은 심즈에 비해 얼마나 덜할지 확실하게 느끼기 위해서는 3년도 부족할 수 있다.
심즈4의 역사를 보면 답은 나와 있다. 도시 맵 확장팩이 출시 2년 만에, 모두가 최우선으로 요청하던 반려동물 확장팩은 무려 3년 만에 '판매'됐다. 확장팩은 보통 한 가지에 3만원 정도였고, 아이템팩은 또 따로 팔았다. 인조이가 쇼케이스 로드맵대로 업데이트를 충실히 진행한다면, 절반도 되지 않는 기간에 이를 '무료'로 따라잡을 수 있다.
물론 잘 하는 것이 최소 조건이다. 아직 갈 길은 멀다. 최적화, 충돌, 안정성을 지키면서 수많은 것을 쌓아야 한다. 크래프톤이 인생 시뮬레이션을 두고 EA와 선의의 경쟁 구도를 만들 수 있을까. 무엇보다, 오랫동안 고여 있던 장르가 숨을 쉬기 시작한다는 것은 이미 경사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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