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씨, 지스타, 출시 일정, 라이브 3회, 추가 개선, 실시간 채팅 대화
절박할 수밖에 없는, 정말로 집에 갈 틈이 없었을 개발 속사정
"오늘은 집에 들어가려고 하고요. 면도를 하고 나오겠습니다."
24일 밤 '아이온2' 라이브, 김남준 개발PD의 한 마디는 열이 올라 채팅을 치던 유저들마저 잠시 멈칫하게 했다. '오늘은'이라는 말에 함축된 뜻이 심금을 울렸기 때문이다.
엔씨소프트 신작 MMORPG '아이온2'은 모든 업계인과 게이머의 눈이 집중된 채 출시했다. 별다른 대형 경쟁작이 없기도 했고, 한참 아래로 치달은 엔씨의 분위기와 이미지를 되돌릴 수 있느냐가 중요했다. 엔씨에게 남은 가장 강력한 카드가 바로 '아이온'이었다.
라이브는 캐릭터 내실 공유와 이른 거래소 통합 등, 유저들이 가장 필요하다고 외치면서도 근본 개발이 다시 필요한 분야를 연이어 발표했다. 질의응답도 3만 명이 모인 방송 내에서 엄청난 속도로 올라가는 채팅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읽으며 개선을 약속했다.
어중간하게 넘기는 주제는 없었다. 작업장 방지를 위해 거래소 구매 권한도 멤버십에 묶어야 하는 사정, 직업 밸런스를 우선 지켜보려는 이유 등 민감한 주제도 솔직하게 먼저 털어놓았다. "내 말은 끝까지 안 봐주네"라는 채팅이 보이자 내부 스태프에게 그 유저가 쓴 내용을 확인해달라고 요청하는 등, 불편한 의견도 모두 감수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 수염이 퍼포먼스가 아닌 이유
출시 전 말끔했던 김남준 PD는 첫날 라이브부터 방치된 채 자라난 수염으로 이목을 끌었다. 수염은 방송이 거듭될수록 더욱 자라났다. 누가 봐도 사옥에서 거주하고 있는 행색이다. 작위적인 퍼포먼스로 치부하기에는, 아이온2 출시 앞뒤 정황에서 정말로 집에 갈 수 없는 배경을 느낄 수 있다.
엔씨는 13일 개막한 지스타 2025 메인 스폰서를 맡았고, 아이온2는 그중에서도 메인이었다. 대규모 시연대와 이를 훨씬 웃도는 관람객이 몰려들면서 최대 4시간 이상 시연 대기를 기록했다.
지스타에 신작이 참가할 때는 모든 부서가 준비에 총력을 기울인다. 가장 괴로움에 시달리는 곳은 역시 개발 파트다. 시연을 위한 빌드를 따로 준비해야 하고, 시연 환경에서 기술적 오류는 무조건 막아야 한다. 일선 개발자면서 지스타 참여를 선호하는 사람이 희귀종으로 불릴 정도다.
촉박한 시간 제한 속에 밤을 새워 마무리 작업을 하고 테스트를 돌려야 한다. 더군다나 지스타 폐막 사흘 뒤가 정식 출시일이었다. 출시 직전 작업량만 해도 상상을 초월하는데, 지스타와 겹쳤을 때 어떤 수준이었을 것인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 라이브 3회 뒤에 숨겨졌을 개발 강행군
아이온2는 출시 첫날부터 긴급 라이브를 실시했다. 이틀 뒤 다시 라이브를 켰고, 24일이 세 번째다. 일주일 동안 채팅과 직접 대화하는 라이브 3회는 엔씨는 물론 전 세계 게임계에 전례가 없다. 세 차례에서 추가된 개선 항목을 모두 집계하면 40종을 넘긴다.
이런 생방송은 한두 시간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끝이 아니다. 내부에서는 발표 내용 준비와 정리만 최소 하루를 매달려야 하고, 실시간 소통에서 나온 반응 정리와 추가 개발 일정 잡기에 그 이상 시간이 소모된다. 출시 전 계획한 플랜은 미뤄지고 개발 프로세스를 실시간으로 수정해야 한다.
단순 약속을 넘어 게임 기획에 큰 변화를 주는 사항도 이미 다수 추가됐다. 일주일 사이 전체 보상 밸런싱, 모바일 서포트 추가, 일부 상품 삭제, 어비스 시스템 조정, 스킬 밸런스 조정 등 수십 개 시스템이 고쳐졌다.
방송 뒤 눈물을 흘리며 작업 조정을 다시 하고 있었을 PM에게 경의를 표해야 하는 이유다. 또한 주말까지 매일 이어지는 피드백과 반영 과정에 결정권자가 자리를 비울 수 없으니, 집에 가서 쉬기도 어려운 시간이었다는 것을 바로 짐작할 수 있다.
■ 아이온2는 '모든 것'을 해내야 했다
조금이라도 쉴 수 없을 만했다. 현재 엔씨 내에서 아이온2가 해내야 하는 과제는 너무 많았다. 완전히 다른 방향의 두 마리 토끼도 잡아야 한다.
재미있는 게임이 되는 것은 기본이다. 여기에 최대한 많은 유저를 끌어들여야 하고, BM이 과하면 절대 안 되는데, 그 가운데 매출도 유의미하게 올려야 한다. 엔씨의 달라진 소통 의지도 증명해야 하고, 최종적으로 엔씨의 이미지를 끌어올려야 했다. 마치 타격과 불펜 지원 없이 완봉을 해야 이길 수 있는 선발 투수 등판과 같았다.
이번만큼은 반드시 이런 과제를 달성해야 엔씨가 미래를 볼 수 있었다. 아이온2 팀이 느낄 무게와 부담이 어느 정도일지 상상하기도 어렵다. 초반 안타와 볼넷을 허용하며 위기 상황도 겪었지만, 일단 지금까지는 무실점으로 버티고 있다. 업계인들이 호기심 반, 응원 반의 마음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아이온2가 자리를 잡는다면 국내 게임계도 많은 것이 바뀔 수 있다. 멤버십 비용이 거래소 해제에 19,800원, 2종 합쳐 4만 5천원이 부담스럽다는 의견도 있다. 다만 역으로 그것 외에는 더 구매할 성능 상품이 없다. 모바일을 포함한 MMORPG에서 이렇게 고점 낮은 BM은 없었다.
아이온2가 달라져야 한다는 열망, 그 주어에 '국내 게임계'를 넣어도 의미는 비슷하다. 아이온2가 재미에서 호평을 받고 실적을 올린다면, 유저 친화적 BM과 게임 본연의 수동 조작 액션이 성공 사례로 남는다. 일단 높은 과금 모델부터 잡아놔야 사업 승인을 받고 투자가 들어오던 기존 업계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약속을 드릴게요. 너희들(엔씨) 사람 모이면 금방 '통수'칠 것 아니냐, 뭐 팔 것 아니냐는 말이 있는데, 제가 보기에도 팔려고 들면 팔 수 있겠다 싶은 것들이 많아요. 그런데 게임을 오래 하실 게 있었으면 좋겠어서 길게 보고 만들었거든요. 팔려고 만든 게 아니고,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아이온2는 유튜브 채널 개설 후 지금까지 총 8회 라이브 방송을 했다. 그리고 지난 21일, 일곱 번째 방송부터 실시간 채팅 다시보기를 없애지 않았다. 자신감 회복일 수도, 쓴소리와 악플을 회피하지 않겠다는 의지일 수도 있다.
엔씨가 바뀌기 위해 '노력'한 시점은 몇년 전부터였다. 2년 전 '쓰론 앤 리버티(TL)'는 글로벌 PC MMORPG 기준에서도 매우 저렴한 BM을 들고 나왔고 소통 방송도 활발했다. 그 결과 글로벌 시장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냈다. 다만 이미 분위기가 차가운 국내에 변화가 와닿기 위해서는 게임 본연이 주는 즐거움도 함께 필요했다.
아이온2는 노력을 넘어, 정말 바뀌었다는 '인정'을 받기 위해 모든 힘을 쏟아붓고 있다. 게임 평가는 엔드 콘텐츠가 자리잡기 전까지 확실한 극찬도 비판도 섣불리 하기 어렵다. 하지만, 면도를 하지 못한 채 위와 같이 말한 PD의 마음만큼은 진심으로 보인다.
과거 실책과 기업 이미지가 하루아침에 수습될 수는 없다. 수십, 수백 차례에 걸쳐 진심을 보여야 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며 결국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보일 때 인식 변화는 시작된다. 아이온2 개발진과 엔씨가 지금 보이는 절실함이 변하지 않길 바란다. 신뢰를 얻고 증명하기에 다시 없을 기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