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롬 게임의 '그림자'를 가장 가까이 밟은 소울라이크
[게임플]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 할까."
'P의 거짓' 플레이를 마치고 리뷰를 준비하면서 가장 고민한 질문이다. 할 이야기가 너무나 많았다.
소울라이크 장르를 설명할 때, 프롬 소프트웨어 이야기는 빠질 수 없다. '다크소울'과 '블러드본', '세키로', '엘든 링' 등 특유의 하드코어 액션과 끔찍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을 만들고 발전시켰다. 세계적으로 수많은 계승작이 나왔지만, 근처에 다다른 게임은 극히 드물었다. 'P의 거짓'은 그들의 뼈대에 피노키오의 이야기를 붙여 탄생했다.
'P의 거짓'이 지닌 과제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는 체험판을 향한 호평이다. 만일 이 정도 재미가 후반까지 이어지고 발전한다면 수작은 충분히 될 것이라는 반응. 기대에 걸맞는 결과를 보여주느냐, 훨씬 다양한 경험을 안겨줄 수 있느냐가 중요했다.
둘째는 프롬 게임의 그늘이다. 소울라이크 모방이 더 이상 논란거리는 아니다. 다만 그들의 독보적인 완성도와 분위기에 발을 맞추기는 극히 어렵다. 지극히 가까이 다가간다 해도 정체성을 잃어버릴 수 있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는 어려운 숙제가 있었다.
셋째는 한국 게임의 척박한 시작점이다. 한국 콘솔 도전작이라는 타이틀은 국내에서 많은 기대와 열망을 받는다. 하지만 글로벌 인지도에서는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하나의 무명 개발사로서 게임 품질 하나로 증명해야 했다. 평가 역시 국적을 떠나 세계적인 기준에서 냉정하게 내려야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P의 거짓'은 프롬 게임의 그림자를 가장 가까이 밟은 소울라이크다.
■ 흥미, 액션, 난이도... 아름답게 그려지는 우상향 곡선
사전 플레이는 PS5 플랫폼으로 진행했다. 난이도 설명에 참고를 위해 기자가 끝까지 클리어한 소울라이크도 미리 적고자 한다. 프롬 게임은 다크소울2, 다크소울3, 블러드본, 세키로, 엘든 링. 프롬 외 게임은 인왕, 와룡, 더 서지2, 렘넌트2, 티메시아 등이다.
전체적인 그래픽과 세세한 모델링 및 퀄리티는 지금까지 소울라이크 중 최고 수준이 확실하다. 게임 경험은 1,2챕터인 체험판에서 무난하게 상향된 채 전개된다. 스토리도 한 걸음씩 움직이지만, 초반부터 빠르게 전개되진 않는다.
적어도 챕터6 중반까지는 그랬다.
분기점은 그 다음이었다. 스포일러로 인해 자세히 설명하기 어려운 적을 만나고, "이 게임 쉽지 않다"는 체감을 하는 구간이 있다. 이야기의 밀도 역시 정밀하게 올라간다. 공장, 대성당, 빈민가, 오페라하우스, 쇼핑몰, 늪지대 등 다양한 색채를 가진 지역들이 각자 다른 레벨 디자인으로 유저와 대결을 선언한다.
가장 시각적으로 즐거웠던 지역을 하나만 꼽으라면 챕터7이다. 벨 에포크의 상업가를 옮긴 로렌치니 아케이드의 레벨 디자인은 특히 예쁘고 정교했다. 상류층의 번화한 위층과 지하 하수도의 끔찍함이 절묘하게 교차되고, 만국박람회 지역을 거쳐 보스전까지 매우 즐겁게 싸우고 탐험한 곳이다.
장르 필수품 중 하나인 레벨 디자인은 무난하다. 그 분야 마스터피스인 '다크소울3' 정도로 전율을 안겨다주며 동선을 맞춰나가는 수준은 아니다. 다만 그밖의 소울라이크에 밀리지 않을 구성은 충분히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차분히 탐험해가며 퍼즐처럼 길을 열어나가며, 아이템 얻는 길이나 숨겨진 방도 정석으로 설계됐다.
난이도, 스토리 흥미, 보스전에서 느끼는 쾌감이 등차수열처럼 올라간다. 챕터7과 8이 또 다르고, 챕터9의 몰입도는 또 뛰어오른다. 하나씩 등장하며 게임 완성도를 높이는 캐릭터들 역시, 비중의 차이는 있지만 매력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 너와 함께 한 모든 보스가 좋았다
P의 거짓은 보스전만으로도 액션 마니아들을 행복하게 할 자격이 충분하다. 챕터별 메인 보스 중에서는 만족스럽지 않은 경우가 없었다. 모두 멋지거나, 끔찍하거나, 압도적이다. 각자 콘셉트도 모두 선명했다.
그 액션의 난이도가 합리적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터무니없이 많은 대미지가 들어와 두어 방 만에 사망하거나, 한참을 때려야 할 정도로 체력만 늘리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심지어 극후반 굉장히 고생한 어떤 보스에게도 개별 대미지가 그렇게 크게 들어오진 않는다. 한 번씩은 맞을 만하다. 한두 번만 맞기가 힘들다는 점이 문제지만.
보스전 흐름은 결국 그로기 시스템이 정한다. 퍼펙트 가드나 차지 어택이 열쇠다. 각자 무기 세팅에 따라 체감이 다를 것이다. 둔기형 무기는 공격을 꽂아넣을 틈이 자주 생기지 않지만, 한 방의 효과가 확실하다. 회피 후 빠른 공격이 강점인 단검형은 그로기를 조금씩 쌓지만, 차지 어택을 빠르게 넣고 물러서기를 반복할 수 있다.
소울라이크에서 가장 중요한 전투의 공방이 처음부터 끝까지 숨막힐 듯 몰아친다. 그리고, 그 공방은 언제든 대역전이 가능하게 설계됐다. 이 점은 '세키로'의 패링 공방을 생각나게 한다.
보스 체력이 거의 온전히 남고 펄스 전지가 다 떨어진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퍼펙트 가드를 연달아 받아내며 전지를 충전하고 그로기를 반복하며 클리어에 성공할 수 있다. 반대로 다 잡았다 싶은 순간에서 가드나 회피 연속 실수가 터지면 주체할 수 없는 보스 패턴이 이어지기도 한다. 좌절과 방심을 단 1초도 허용하지 않는, 액션 게임에서 가장 이상적인 재미다.
■ "P의 거짓은 어떤 액션인가요?"에 대한 대답이 어려운 이유
무기 조합은 P의 거짓만이 가진 정체성이다. 날과 손잡이를 분리해 수많은 조합을 만들어낼 수 있고, 쇼케이스 영상 이후 관심이 급증했다. 실제 플레이에서도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조합이 나타난다. 무엇보다, 조합에 따른 차이는 전투 대전략이 달라질 정도로 크다.
공격 모션, 회피공격 시 모션, 차지 공격 방식, 공격 속도와 거리, 속성 부여, 페이블 아츠 효과와 발동 속도, 회피의 가드의 효율 차이 등. 다 떠올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것들이 조합에 따라 세부적으로 컨트롤된다. 누군가 P의 거짓 전투는 어떤 느낌이냐 묻는다면, 답변이 불가능하다. 모두가 다른 답을 내릴지도 모른다.
큰 소개가 없었지만 생각보다 보스전에서 큰 변수는 '연마제'다. 화염, 전격, 산성 속성을 부여해 공격한다. 물론 상대에 따라 효율이 다르다. 연마제는 별바라기에 들르기 전까지 단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다. 보스 공략에서, 이 연마제 사용 타이밍을 언제로 잡느냐도 전투 흐름을 완전히 바꾸는 매개체다.
적의 공격은 각 패턴에 따라 효율을 극대화하는 상대법이 존재한다. 피하기, 퍼펙트 가드, 전략적으로 안전하게 가드 후 때려서 리게인, 경우에 따라 락인을 해제한 뒤 구르기도 효과적이다. P의 기관에 이중 회피도 있어, 날쌘 플레이를 추구한다면 큰 도움이 된다. 자기 스타일에 맞춘 세팅 후 패턴에 따라 받아치는 대전의 재미는 일품이다.
■ 스토리, 우선 한 마디만... "자신감의 이유 있었다"
P의 거짓에 높은 평가를 할 때, 핵심 요인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스토리에 대한 설명은 꼭 필요하다.
후반부 어떤 장면을 설명하려고 해도 치명적 스포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전투에서 느껴지는 전율, 각 장면과 장면에서 나타나는 내러티브의 전율이 동시에 존재한다.
정식 출시일까지 세부적인 스토리와 엔딩 노출에 대한 자제 요청이 있었다. 그리고, 이해할 수 있었다. 엔딩은 최대한 늦게 노출하려 하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다른 엔딩을 보기 위해 플레이를 누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유저들이 어느 정도 플레이를 진행한 뒤 스토리 관련 추가 리뷰를 선보일 예정이다. 훌륭한 액션을 가진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세계관과 스토리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은 분량으로 소화하게 될지 모른다.
■ 지극히 근접한 대신, 아직은 '그림자'를 밟고 있다
단점과 한계도 분명 존재한다. 후반부터 등장하는 특정 종류의 일반 적들이 갈수록 조금 지루해질 때가 있다. 각자 처음에는 색다른 공격 방식으로 놀라게 하지만, 이들이 반복해 등장하는 구간이 긴 편이다. 반면 후반 몇몇 적은 굉장히 매력적인 디자인과 패턴을 가졌는데, 오히려 아주 짧은 구간에서만 잠시 보이고 더는 등장하지 않아 의아하기도 하다.
무게 시스템은 조금 더 다듬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소지품과 관계 없이 장착한 장비만 무게가 적용되는 점은 매우 좋은데, 스왑용 무기를 함께 장착하면 결국 무게가 늘어나니 보통 하나만 넣은 채 싸우다가 비전투 때 따로 바꾸게 된다.
무기 스왑의 재미와 무게 패널티 중 하나는 포기하게 되는 현상이다. 물론 무기 하나로 싸우다가 내구도가 0이 되어버리면 비상이지만, 틈틈이 갈아줄 여유조차 없었다면 어차피 그 전투는 망했다고 봐야 한다.
P의 기관도 캐릭터 성장 방향이 극적으로 바뀌는 느낌은 아니다. 가드와 회피 중 한 쪽 스타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의미 정도만 있다. 시스템 자체는 가능성이 있는데, 괜찮아 보이는 옵션이 정해져 있어 디테일이 아쉽다. 단 회차 플레이에서 또 다르게 활용될 가능성은 남아 있다.
가장 근본적으로 이야기해야 할 부분은 역시 '오리지널리티'다. P의 거짓은 프롬 소프트웨어가 만든 길을 철저히 따라간다. 그런 게임들 가운데 최고의 퀄리티를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다만 뼈대가 되는 성장 및 강화 방식, 게임 진행 패턴과 전투의 기본 흐름은 여전히 프롬의 길을 그대로 따라간다.
'인왕' 시리즈가 소울라이크 기반 속에서 파밍 RPG로서 체계를 결합해 색다른 동기부여를 만들고, '렘넌트2'가 매력적인 보상 패턴으로 소울 루트슈터를 변주한 사례가 있다. 반면 P의 거짓에서 창조한 시스템들은 풍부한 선택지를 부여한다는 점에서는 큰 의미가 있지만, 결국 게임의 기본 구조를 바꾸진 못한다.
서문에 적은 결론 가운데 "프롬 게임을 가장 가까이 밟았다"는 것은 감동과 만족을 뜻하는 좋은 의미다. 다만 결국 '그림자'를 밟았다는 표현은 그런 이유에서 나왔다. 그림자에서 벗어나 또다른 빛이 되기에 아직은 한 걸음 모자라다. 콘솔 패키지 첫 도전작으로 충분히 빛나는 성과지만, 기대 이상으로 좋은 게임이 나왔으니 오히려 더욱 욕심을 내게 된다.
■ 총평 - 비록 외길이지만, 소울 액션의 발자국을 달려나가다
엔딩까지 플레이 타임은 38시간이 찍혔다. 켜둔 채 식사하거나 씻으면서 쉰 시간도 많기 때문에 순수 플레이는 36시간 정도로 보인다. 숙련자 기준 30시간 이상이라는 사전 정보는 맞았고, 장르 중에서 준수한 볼륨이다.
소울라이크 장르 팬이라면, 특히 액션의 그 맛을 느끼고 싶다면 P의 거짓은 프롬 게임에 가장 근접한 퀄리티를 보여줄 게임이다. 특히 무기 조합을 통한 공략, 그로기와 페이블 아츠로 엇갈리는 타이밍 싸움은 유저 취향에 따라 최고로 꼽을 가능성도 있다.
그래픽 퀄리티, 스토리 플롯과 내러티브는 이견 없이 소울라이크 최고점이다. 전투 본연의 재미도 짜릿하고, 레벨 구성 역시 준수하다. 아트워크와 세계관 표현 및 연출도 만족스러우며, 미처 자세히 적지 못했지만 음악도 소울의 그 감성과 퀄리티다. 이런 식으로 각 요소를 뜯어보면 더 바랄 것이 없는 게임이다.
단, 소울라이크 바깥의 유저 영역으로 뻗어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P의 거짓'만이 가진 게임 방향성이 모자란 것도 사실이다. 피노키오가 인간이 되기 위해 나서는 이 잔혹동화에서, 한 인간만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는 마지막 과제는 남았다.
프롬이 빛낸 무대 위에서 멋진 안무를 그렸고, 열정과 퀄리티를 통해 아름다운 인형극을 완성시켰다. 그 무대를 넘어 자신만의 공연장을 만들어낼 재료는 모두 갖추고 있다. 네오위즈와 라운드8 스튜디오가 내놓을 다음 도전을 기대하기에 충분한 이유다.
관련기사
- "행복한 9월"... 한국 게이머들, 즐길 거리 몰아친다
- 낭만, 그리고 어둠... 'P의 거짓' 속 '벨 에포크'는 어떤 시대였을까
- [체험기] 'P의 거짓', 마지막 남은 의심도 걷어냈다
- P의 거짓 "벨 에포크 그림자 위, 잔혹하게 그린 동화"
- [시연기] 'P의 거짓'... 이건 진짜다
- 'P의 거짓' 외신 호평 빛난 요소는? "보스전과 최적화"
- 'P의 거짓' 엇갈린 평가? 해외 기준은 '기대 이상'
- 'P의 거짓'이 더 궁금하다고요? 기자가 답하는 Q&A
- 'P의 거짓' DLC 혹은 차기작? 쿠키 영상에 등장한 '그 이름'
- P의 거짓, 스트리머 '샷건' 치게 만든 최악의 보스는?
- 'P의 거짓' 스팀 리뷰 1,500개 '긍정 90%'... 해외 팬 마음 잡았다
- 이것만 알면 당신도 클리어, 초보자 위한 'P의 거짓' 3대 팁
- [시선 3.0] 'P의 거짓', 한국 게임의 '새로운 일상'을 바라며
- "이것도 '디맥' 노래였어?" P의 거짓 속 놀라운 편곡들
- "P의 거짓, 어렵다고요?" 보스 쉽게 잡는 핵심 원칙 3가지
- 'P의 거짓' 네오위즈, 글로벌 콘솔 '교두보' 완성하다
- 'P의 거짓' DLC 개발 착수... 유력 출시 타이밍은?
- 게임계 '알짜배기' 이야기꾼들, 네오위즈로 '어셈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