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번영하고 호화로운 시대, 그 속에 드리운 사회 구조의 그림자

[게임플] "가장 화려했지만, 깊은 어둠이 공존한 시대"

'P의 거짓' 개발진은 '벨 에포크' 시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대중 매체에서 벨 에포크는 낭만과 미학이 가득한 서유럽 배경 속에서 곧잘 그려진다. 하지만 같은 시대를 택한 P의 거짓 속에서, 이 시대는 광기와 절규로 가득한 도시로 재탄생한다.

P의 거짓은 9월 19일 출시를 앞둔 네오위즈의 AAA급 콘솔 소울라이크 신작이다. 체험판에서 강렬한 액션으로 세계적인 기대를 끌어올렸고, 또 한 가지 정체성을 매력으로 선보였다. 고전 '피노키오'를 재해석한 잔혹동화 분위기, 그 속에서 벨 에포크 양식을 정교하게 구현한 세계관이었다.

대중적 이미지에서 벨 에포크는 낭만과 예술의 상징으로 자주 사용한다. 하지만 진지한 작품으로 나아갈수록 가장 모순적인 사회 구조를 그려내는 소재가 되기도 한다. 이 시대를 활용해 만들어진 '스팀펑크'가 바로 이런 낭만과 긴장감을 동시에 그려낸 세계관이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는 유럽의 황금기였다. 유럽은 세계의 주도권을 독점하고 이끌었으며, 이 시기를 프랑스인들은 '벨 에포크(La Belle Epoque)'라고 불렀다. 'Belle'은 아름답다는 뜻의 프랑스어 형용사,  'Epoque'는 역사적인 한 시대를 뜻한다.

특히 1871년부터 1914년까지 약 40년간을 벨 에포크의 절정이라고 일컫는다. 프랑스-프러시아 전쟁이 끝난 직후부터,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까지다.

같은 시기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도 비슷한 감성을 공유하고 있었고, 더 넓은 의미로 1815년 나폴레옹 전쟁 종결부터 1914년까지를 백년 평화(팍스 브리타니카)로 칭하기도 한다. 큰 전쟁 없이 경제, 기술, 문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전이 유럽을 수놓았다.

인류 문명에 대한 자부심이 정점에 달한 만큼 탐험과 개척을 향한 열망도 강했다. 미국 서부 골드 러시에서 인생 역전을 위한 경쟁, 남극 등 마지막 미지의 지역을 정복하기 위한 도전이 함께 이루어진 시기다.

벨 에포크는 풍요와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림자도 가지고 있었다. 제국주의와 부르주아들의 시대였다. 유럽은 제국주의와 식민지 침략으로 번영을 이뤘다. 그만큼 노동자들과 식민지의 희생을 동반하기도 했다. 수탈을 통해 빨아들인 자원이 풍요로움을 일구는 원천이 된 것이다. 

같은 시기, 세계적으로 열강 지위에 오른 국가들은 비슷한 호황을 누렸다. 일본의 '다이쇼 로망' 역시 제국주의 식민지 확장이 정점에 달했던 1910년대와 1920년대 번영한 모습을 반영했다. 강점의 역사를 가진 입장에서는 마냥 동경할 수 없는 이유다.

유럽 바깥 식민지만 어두운 것이 아니었다. 그늘은 내부에도 있었다. 노동집약적 산업 가운데 상류층과 중산층을 제외한 하위 계층은 열악한 작업 환경 속에서 고통받아야 했다. 산업혁명 직후에 비해서는 나았지만, 어린이들 역시 공장에서 혹사당하고 있었다.

당시 유럽은 인류 역사상 생활의 빈부격차가 가장 심했다.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민중의 목소리도 커졌다. 카를 마르크스의 사회주의가 높은 지지를 받았고, 프랑스 한복판에서 최초의 사회주의 정부인 파리 코뮌이 탄생했다. 이 코뮌은 결국 진압당하며 실패로 끝났지만, 역사적으로 민중 저항의 거대한 전환점이 됐다. 

벨 에포크의 종말을 암시한 대표적 사건이 있다. 바로 대부분 알고 있는 타이타닉 호 침몰 사건이다. 당시 가장 거대하고 호화로운 최첨단 여객선이었으나, 1912년 첫 항해에서 빙산에 충돌해 침몰했다. 

기술의 정수를 담았다는 타이타닉의 허망한 참사를 계기로 인류 발전을 과신하던 분위기는 빠르게 식었다. 그리고 2년 뒤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아름다운 시대'는 끝을 고하게 된다. 벨 에포크라는 명칭 자체가, 이후 전쟁과 경제대공황을 겪으며 사람들이 돌이키는 '리즈 시절'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스팀펑크 세계관은 이러한 벨 에포크의 낭만에서 출발했고, 수많은 게임과 영상물의 소재가 됐다. 산업혁명 이후 증기 중심 문명에서 철도의 발전, 과학 혁명, 세계 박람회 등의 상징물을 역동적으로 그려낸다. 그리고 대부분은 사회 아래에 잠긴 어두운 면을 갈등으로 활용한다. '바이오쇼크 인피니트'가 그런 구조를 녹여낸 대표작 중 하나다.

P의 거짓은 일반적 스팀펑크와는 조금 다르다. 벨 에포크의 빛과 어둠을 또다른 방식으로 재해석한 형태가 드러난다. 증기보다는 기계와 인형에 초점을 맞추고, 멸망한 도시 속 진실과 인간성이라는 주제를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벨 에포크는 프랑스에서 나온 말이지만, 모티브의 원천이 된 '피노키오'는 이탈리아 출신이다. 다만 피노키오 원전 역시 19세기 후반 등장한 작품으로 유사한 시대상을 공유한다. 겉 이야기는 흥미로운 동화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거짓말이 가지는 의미와 인간성의 조건 등 파고들 담론이 가득하다. 

역사에서 모든 번영과 발전은 대가를 지불하면서 진행됐다. P의 거짓이 구현한 세계는 벨 에포크의 외관은 물론, 당시 문화를 관통하는 허영과 불안을 파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광기로 가득한 도시 크라크에서 한 인형의 이야기를 기대하게 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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