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 확장은 사업 이전에 팬 서비스다"
굿즈 특징과 구성 비율, 국가별 행사 차이, '도로롱'의 의미까지
"한국 게임사는 보통 사업 내 운영 조직이 있죠. 반면 중국은 운영 내에 사업 조직이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2025년 넥슨 개발자 콘퍼런스(NDC 25) 현장에서, 시프트업 유형석 디렉터가 '승리의 여신: 니케'의 성공적인 IP 구축기를 전격 공개했다. 평소에 말하던 게임 개발을 넘어, 게임 외 분야에서 2년 반 동안 IP를 확장해온 과정을 생생하게 담았다.
'니케'는 시프트업의 체급을 바꾼 IP로 불린다. 2022년 출시해 글로벌 전반에서 고르게 성과를 냈고, 글로벌 서브컬처 게임 대표작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한국 개발 게임 중 굿즈 산업으로 흑자를 내는 희귀한 게임이기도 하다.
'니케'는 어떻게 해외 시장에 IP를 뿌리내렸을까. 유형석 디렉터가 말하는 경험담과 조언을 요약해 담았다.
■ "필수(라이트) 상품은 행사 전체의 절반을 넘지 않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한국에서 글로벌 굿즈 산업에 노하우를 보유한 곳은 드물다. 굿즈 상품에서 제작과 유통에 이해도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아크릴 스탠드의 경우 단가가 상대적으로 낮다. 많은 소비자가 즐겨 찾아 범용성도 있다. 산업적 리스크가 가장 적은 상품이다.
오프라인 행사에서 모든 굿즈를 아크릴 스탠드로 하자는 제안도 있었다. 유저들에게 기분 좋은 경험이 되도록 다양한 상품을 제공하겠다고 설득하려면 이해도가 필요한 것이다.
포토 카드, 캔뱃지, 키링 같은 상품도 접근성이 매우 높아 판매량으로 수익을 얻을 수 있으며 리스크가 낮다. 하지만 이런 상품 비율이 너무 높으면 팝업스토어 등 행사장에서 구성이 빈약해 보일 수 있다. 어떤 곳을 가도 볼 수 있기 때문. 그래서 데스크 패드, 머그컵, 음반, 키캡 등 제작 난이도와 접근성이 보통 수준인 미들급 상품을 함께 배치해 풍성함을 더하는 것을 추천한다.
또 다회차를 고려해 행사 의미를 살리는 하이라이트 상품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필수, 미들, 하이라이트 상품을 각각 50, 40, 10% 비율이 이상적이었다. 행사에 따라서는 미들급 상품도 하이라이트 급로 구성하기도 한다. 특정 이벤트와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자리잡는 행사가 여기에 해당한다.
■ "유형석 가챠 부적, 아직 무사한가요?"
필수 상품 중에서도, 판매 수량만 따진다면 아크릴 스탠드는 빠지지 않는다. 과거 피규어 시장의 일부 지분을 가져왔다고 판단 중이다. 특히 SD캐릭터를 이용한 아크릴 스탠드가 상품성과 범용성이 뛰어났다.
또 '니케'는 디오라마 아크릴 상품에 게임 뷰와 비슷한 구성이 가능했고, 다른 게임에 비해 굿즈가 풍부해 보이게 할 수 있었다. 우리 게임에 어울릴 만한, 우리만의 굿즈를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TCG 분야도 의외의 성과였다. 레드 후드 카드는 1800만원에 중국에서 거래되기도 했다. IP 확장 전략과 맞물린 카드 출시, 니벨 아레나의 기획력 등 카드 제작사들의 전략이 빛났다. TCG 시장에 이해도가 있고 우리 IP를 함께 이해해주는 업체를 선별한다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 자리를 빌어 업체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유형석 디렉터 본인의 캔뱃지도 가챠 부적으로 뜻밖의 수요가 생겼다. 제작 과정에서 몇 번이고 거절했지만, 에이전시에서 삼고초려를 해 시험삼아 제작했다. 누가 아저씨 굿즈를 좋아하겠느냐 생각했는데, 필그림보다 빨리 품절되어 놀랐던 일화가 있다. 가챠가 안 될 때마다 상당수는 밟히거나 버려지지 않았을까 걱정이 된다.
■ "비인기 캐릭터 굿즈도 '어느 정도'는 일부러 챙겨야 하는 이유"
국가에 따라 굿즈 소비 방식은 다르다. 일본에서 '이타백'은 자주 볼 수 있는 가방이다. 좋아하는 캐릭터 포토카드나 캔뱃지로 꾸미고 내부에 캐릭터 인형을 넣어 들고 다니면서 현장에서 같은 팬들에게 소개하고 자랑하는 문화다.
그래서 일본은 라이트 상품 재판매율이 다른 국가보다 높다. 이 현상을 보고, 소외받는 캐릭터가 없도록 라이트 상품은 더 많은 캐릭터에 제작 기회를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최애를 누구든 자랑할 수 있는 문화를 형성하기 위해서다.
기본적으로는 수요에 따라 인기가 높은 캐릭터 생산 집중이 당연하다. 개발진이 직접 나서서 비인기 캐릭터도 최소한의 라이트 굿즈는 확보될 수 있게 노력하고 있다. 물론 무턱대고 모든 캐릭터 굿즈를 한 행사에서 다 팔 수는 없다. 어느 시점에 어떤 캐릭터 굿즈를 어떻게 판매할 것인가를 계획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어떤 리소스를 활용해 만들지 고민도 해야 한다. 동일한 리소스는 희소성이 떨어질 수 있다. 스포츠 타올에 들어간 이미지가 머그컵에 동일하게 들어간다면 둘 다 사기는 애매하진다. 여러 리소스를 최대한 활용해 굿즈를 만드는 것을 권장한다. 또 비용이 좀 들더라도 신규 리소스를 제작해 신선함을 제공하는 것도 훌륭한 방법이다.
■ 국가별 문화 차이, 굿즈와 행사 방식도 달라야
굿즈를 제작했다면 배포하고 판매할 오프라인 행사를 고민하게 된다. 행사장은 국가에 따라 문화적, 지리적 특성이 더 반영되어야 한다.
일본은 게임 외 IP 확장이 매우 활발한 나라다. 일상적인 가게에서도 다양한 서브컬처 콘텐츠와 광고를 볼 수 있고, 그만큼 축적된 노하우도 많다. 이미 인프라가 형성된 만큼 IP 이해도가 높은 에이전시만 찾으면 행사가 매우 수월하게 진행된다.
한 번은 교토에서 진행한 행사 중 스탬프 랠리가 있었다. 그곳에서 캐릭터 옷태를 재현한 마네킹을 선별하거나, 캐릭터 등신대가 이곳에 서야 하는 당위성을 부여하는 등 디테일을 챙기는 모습에 많은 영감을 받았다. 단순한 행사 속에서도 스팟 사이를 이동할 때 디젤의 티켓을 보여주면 전철을 태워주는 등 소소한 요소가 유저를 행복하게 했다.
일본은 행사 방식도 다양하다. 2.5주년 버블 에어리어 행사도 일본 방식에 착안해 한국화를 해봤는데, 규모가 작은 행사를 국내에 찾기 힘들어 호불호가 갈리더라. 아직 국내에선 시기상조인가 생각하기도 했다. 성우 낭독회나 팬미팅, 연극 등 다양한 행사가 벌어지는 모습이 부러웠다. 한국에서도 인프라가 빨리 형성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행사 수량이 많다 보니, 한 행사만의 테마와 콘셉트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좋다. 바니걸 같은 테마나 봄철, 겨울 등이 대표적이다. '니케'는 특정 스쿼드 테마 운영도 가능할 것이다.
한국은 아직 인프라와 노하우가 많은 편이 아니다. 그만큼 IP 홀더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고, 직접 볼 거리나 즐길 거리가 많은 쪽이 효과적이었다. 행사 성격은 일본에 비해 제한적이지만, 오프라인 행사장까지 이동 시간이 짧아 단일 행사 효과는 우수하다.
또, 일본에 비해 아직은 대중적 게임 인식이 보수적인 편이다. 식음료나 편의점 등 일상 생활 밀착형 콜라보는 신규 리소스나 SD 리소스를 활용해 구축하는 것을 추천한다.
미국과 유럽 등 서구권 역시 노하우가 많지 않다. 인프라뿐 아니라 거리 문제도 제한이 있는데, 온라인을 중심으로 밈을 생산하고 노는 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에 이를 활용하는 것이 유효하다. 밈이 될 만한 콘텐츠를 집중 생산하는 것이 좋다.
최근 니케의 MLB 경기장 콜라보처럼 야구 중계와 연계한 것도 적합한 콜라보 아니었나 싶다. 또 애니메이션 전문 대형 행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권한다. SF나 몬스터, 음악 중에서는 EDM이나 락 선호도가 높아 이를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동남아시아 지역은 권역 내 이동이 쉽지 않아 국가별로 나누어 오프라인 행사를 여는 것이 좋다. 2차 창작 특징은 코스프레 의상 표현이 상대적으로 개방적이라는 것. 이를 활용하면 동남아만의 IP 구축에 강점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 우리도 여러 방법을 고민 중이다.
■ 한 서비스 종료 게임이 마지막까지 서사를 담은 법
행사에서 고려할 만한 효과적인 방법은 '서사' 담기다. 니케 역시 많은 신경을 쓴다.
니케는 이벤트 1부와 2부가 나뉘는데, 스토리 하이라이트가 나오는 2부 후반부 시점에 행사 개최가 가장 효과적이었다. 너무 빠르거나 늦으면 아직 분위기가 올라오지 않았거나 여운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일정이 여의치 않으면 더 범용적인 테마를 가지고 진행하는 편이 좋았다.
일본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오프라인 이벤트는 '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걸즈' 서비스 종료 기념 행사였다. 모든 이벤트 연혁이 통로에 적혀 있고, 모든 캐릭터의 의상과 참여 이벤트 및 명대사가 적혀 있었다.
하이라이트에 들어서면 모든 캐릭터를 한 곳에 세워놓고 마지막 공연을 하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유리 구두를 두고 서비스 시작과 종료 시점이 함께 적혀 있다. 엄청 즐겨 플레이한 것은 아니었지만 한국에서도 이런 감성을 표현하면 좋겠구나 싶었다.
음악도 이야기를 담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 '니케'는 이제 오리지널 OST만 500곡을 넘는다. '코스모그래프'의 음악 스타일이 서구권에 효과적인 마케팅이 되면서 스토리에 맞는 BGM을 살리는 효과를 가진다. 라이브 스트리밍 등 팬서비스를 가지며 진행하고 있다.
팬들을 위한 퍼포먼스도 챙겼다. 인공위성에 영상을 띄우거나, 물속에서 드로잉을 하거나, 샌드아트로 명장면을 표현하는 등. 처음은 폭죽이나 드론쇼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우주 다음엔 어딜까 하는 부담스러운 상황까지 왔다. 하지만 지휘관들이 좋아하는 만큼 꾸준히 팬서비스를 계속할 것이다.
2차 창작이 필요한가 묻는다면 먼저 '도로롱을 보라'고 말하고 싶다. 나중에 니케가 어떤 게임인가 묻는다면 도로롱 나오는 게임이라고 설명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밖에도 2차 창작은 서브컬처 IP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 "IP 확장, 한국 게임의 사업 우선주의부터 다시 생각해야"
개발진이 IP 관리를 위해서는 많은 노고가 필요하다. 예상한 것보다 1.5배 인력을 갖추는 것을 권장한다. 신경 쓰지 않은 채 확장한다면 세게관이나 IP가 붕괴할 수 있다.
IP의 확장은 사업 이전에 팬 서비스다. 게임 완성은 프로그래머, 첫인상은 아티스트, 확장은 기획과 내러티브가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 한국 기획자는 업무 바운더리가 상당히 제한되어 있다. 업계와 회사 차원의 투자가 잘 이뤄질 수 있으면 좋겠다.
한국 게임계의 특징 중 하나가 IP 확장이라는 표현을 후속작에만 쓰는 것이다. 이 역시 매력적이지만, IP 확장을 시도한다면 브랜드 소비가 아닌 생산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사업 내 운영 조직이 있고, 중국은 운영 내 사업 조직이 있다. 뭐가 먼저인지 어려운 문제지만,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 애정하기 때문에 지갑을 여는 '페이 투 러브'에 대한 이해와 노하우를 잘 축적해, 한국에서도 성장과 BM 중심이 아닌 좋은 게임들이 잘 개발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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