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서구권 틀에 맞추고, 반대 성향을 비난하는 것이 '다양성'일까
올바름에 정답을 강요하는 행위는 올바를 수 있을까.
서구권 게임에서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은 이제 경전과 같다. 인종, 민족, 성 정체성, 종교 등에서 편견을 없애고 다양성을 추구하자는 취지다. 게임은 물론 영화, 드라마 등 미디어 전반에서 다양한 인종 출연은 의무처럼 변했다. 급기야 오랜 역사를 이어온 캐릭터들의 인종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일도 빈번하다.
PC와 언PC, 두 진영으로 나뉘어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논쟁은 깊어졌다. PC가 마땅히 인류가 지향해야 할 길은 맞다. 하지만 그것이 작품 평가의 척도가 되는 분위기도 깊어졌다. 오히려 자유로운 표현을 탄압하고 엄숙주의로 흐르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파리 올림픽 개회식은 PC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였다. 파격적인 형식 속에서 다양한 성 정체성을 과감하게 표현했으나, 난해할 뿐 깊이를 느끼기 힘들었다. 역으로 "LGBTQ를 우스꽝스럽고 선정적으로 다루는 것도 하나의 편견 아니냐"는 의문이 들게 했다. 탄소 중립을 선언하면서 에어컨 미설치, 채식 강요로 선수단에서 논란이 나오기도 했다.
정치적 올바름은 과해서가 문제가 아니다. 올바름은 지나칠 때 해로운 개념이 아니다. 지금 경계하게 되는 모습은, '올바름'이 희미해지고 정치만 남는 현상이다.
■ 올바름과 다양성, 왜 철저하게 서구권 관점에 집중됐을까
유비소프트의 출시 예정작 '어쌔신 크리드: 섀도우스'는 일본 전국시대 배경을 다룬다. 시리즈 최초 동아시아 세계관이다. 그러나 남성 주인공이 흑인 사무라이 '야스케'로 결정되면서 논란을 낳고 있으며, 일본 내 발매 취소 청원이 10만 명을 넘기면서 참의원까지 개입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는 이전까지 그 세계관을 대변하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디자인했다. 야스케가 실존 인물이긴 하지만 역사 중심이 아닌 예외 사례고, 일본인을 넘어 아시아 입장에서 공감을 얻기는 힘들다. 그동안 PC 속에서도 자행되어온 '아시안 패싱' 현상에 쌓여온 감정이 터지는 것은 당연했다.
여기에 디렉터가 매체 인터뷰로 "일본인이 아닌 '우리'가 몰입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이유를 들면서 철저하게 서구권 시각의 올바름 강요가 아니냐는 의혹에 방점을 찍었다. 다양성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취사 선택한 다양성이라고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 반대 성향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 '다양성'일까
가장 유명한 사례도 빠질 수 없다. 2020년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2'는 많은 유저들이 공감할 수 없는 스토리 전개로 원성을 샀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디렉터의 SNS를 통한 망언들이었다. 비판하는 이들을 '소수자 혐오'로 규정했고, 다른 게임계 관계자들도 합세해 대립 구도를 만들면서 분노는 더욱 커졌다.
그밖에도 이해할 수 없는 내용에 반론을 제기하는 유저들에게 "교육 수준이 낮다"고 말하거나 '지능 부족'을 암시하는 이미지를 업로드하는 등, PC를 내세운 창작자들에게서 나타난 반대 의견 비하는 많았다.
나의, 혹은 우리 편의 메시지만 올바르다고 감히 누가 말할 수 있는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이미 올바르지 않은 길로 들어선 것이나 다름이 없다. 현재 서구권 게임계가 구현하는 PC는 언제나 다양성을 먼저 강조한다. 그러나 어느 때보다도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 지금 나타난 형태이기도 하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PC와 어긋난 작품에 가하는 비판도 점차 몰이해가 심하다. 중세 유럽이 배경인 '파이널 판타지 16'에 왜 유색 인종이 없느냐며 60점을 준 매체가 있었고, 가상 세계를 표현한 '스텔라 블레이드'에 비현실적인 외모라고 비판한 미디어는 왜 캐릭터가 '반드시' 현실적으로 못생겨야 하는지를 설득하지 못한다.
한 대작 게임은 중동 지역에 판매하기 위해 해당 지역 버전에 LGBTQ 표현 요소를 전부 삭제했다. 시장 공략을 위해 얼마든 굽힐 수 있는 PC다. 그럼에도 혐오를 담은 것도 아닌 그저 자유로운 표현에 통제적인 발언이 쏟아진다. 일반 유저들이 아니고 관계자 일부가 그렇다는 것은 조금 무서운 일이다.
■ 진짜 '올바름'을 되찾을 때가 왔다
게이머들은 단순히 PC가 많다고 해서 비난하고, 언PC하다는 이유로 찬양하지 않는다. 비주얼이 만능인 것도 아니다. '에이펙스 레전드'처럼, 캐릭터 얼굴마다 개성이 폭죽처럼 터져나간다고 해도 재미가 있다면 흥행과 평가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다.
PC는 그 자체로 악이 아니다. 다양성 고찰이 수준 높게 이루어지면 작품을 풍부하게 만드는 재료가 된다. '발더스 게이트3'는 수많은 PC 요소가 함축됐지만 클래식 RPG의 역사를 새로 쓴 걸작이다.
하지만 매너리즘에 빠져버린 PC는 재미도 해치고 있다. 올해 출시한 '수어사이드 스쿼드: 킬 더 저스티스 리그'는 아캄버스 최악의 평가를 받았다. 원더우먼 띄우기 등 무리한 시도로 망가져버린 스토리가 대표적인 원인이다. '콜 오브 듀티: 뱅가드' 역시 노골적으로 PC 요소를 투입한 부분들이 스토리 혹평이 쏟아지는 촉매가 됐다.
진정으로 '다양성'을 존중하는 올바름이 완성되길 바란다. 게임을 창작할 때 최우선은 게임의 재미, 그리고 메시지의 완성도여야 한다. 작품의 본질을 향한 존중이 사라지면 올바름은 사라지고 정치 활동이 된다. 정말 존중해야 할 다양성을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이제는 치열하게 돌아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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