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유저에 첫인상 남기는 시작점, 수천 번 본 유저에게는 '감성 트리거'
화면과 음악이 함께 오래도록 새겨내는 '정체성'
[게임플] 처음 해보는 게임의 실행 버튼을 누른다. 업체 로고가 지나간 뒤, 아름다운 이미지와 BGM이 어우러지는 화면이 나타난다. 이 타이틀 화면이 바로 우리가 만나게 되는 게임의 첫인상이다.
온라인 게임에서는 로그인 화면이라고 흔히 부른다. 즐겨 하는 게임일 경우 수백, 수천 번을 스쳐 지나가게 될 장면이다. 서버 대기열이 걸리는 게임은 이 화면만 몇 시간을 지켜봐야 할 수도 있다. 게임의 추억을 되돌아볼 때도, 타이틀 이미지와 음악이 빠질 수 없는 이유다.
큰 조명을 받진 못하지만 실상 가장 중요한 한 장면이다. 타이틀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겨야 처음 플레이하는 유저가 호감을 가진 채 게임을 이어나간다. 오래 플레이한 유저도, 게임을 잠시 쉰 유저도 그런 한 컷을 트리거 삼아 다시 접속 버튼을 누를 수 있다.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장엄한 연출의 타이틀, 컴백 아이돌의 티저 영상 연출도 같은 심리 조건에서 만들어진 설계다. 시쳇말로 '뽕맛'이라고 하는 그 감정, 게임뿐 아니라 모든 엔터테인먼트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조건이다.
로그인부터 각인되는 이미지는 온라인 게임 시작부터 있었다. '바람의 나라'와 '메이플스토리'는 몇번 플레이하지 않은 유저라도 오프닝 음악의 멜로디를 쉽게 흥얼거릴 수 있다. 시각 이상으로 인간의 뇌리에 깊게 기억되는 것은 청각이다. 접속하고 처음 마주하는 음악은 그 게임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모든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초창기에 특히 큰 파괴력을 보인 게임은 '라그나로크 온라인'이었을 것이다. 이전 게임보다 더욱 발전한 로그인 화면 배경 아트워크와 함께, 신비로운 메인 테마가 귀를 강렬하게 자극했다. 온라인 게임의 감성 퀄리티가 한 단계 발전하는 순간이었다.
로그인 화면 중요성은 비단 한국 게임뿐이 아니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가 서비스를 시작할 때, 첫 화면과 음악은 유저들을 아제로스의 세계로 빨아들이기 충분했다. 오리지널 시대 로그인 테마 'Legend of Azeroth'는 'WoW'라는 게임의 시작을 알린 상징으로 지금까지 기억되고 있다. 물론, 당시 극한의 대기열을 상징하기도 한다.
최초의 연출에 대한 연구가 이어지면서, 게임들의 첫 화면 구성 능력은 점차 발전했다. WoW도 예외는 아니었다. '리치왕의 분노' 확장팩에서 아서스 테마곡과 함께 입체적으로 날아와 포효하는 신드라고사는 시리즈 최고의 로그인 연출로 회자된다.
MMORPG 장르에서 특히 중요한 로그인 키워드는 '설렘'이었다. 화면에 진입한다는 것은 어디론가 떠나는 탐험, 누군가와의 대결을 의미했다. 과거 '마비노기', 최근 '로스트아크'가 시기별로 테마를 바꿔가면서 이런 감성을 신비롭거나 웅장하게 표현해낸 대표 게임으로 기억된다.
장르가 분화되면서, RPG 외 장르 게임들도 타이틀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일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 경우 캐릭터나 특정 장면을 연계하는 기법이 잦다. 그중에서도 '리그 오브 레전드(LoL)'의 타이틀 발전 과정은 환골탈태를 넘어 재탄생 수준이다.
신규 캐릭터나 스킨에 감성이 꽂힐 수 있게 테마를 구성했고, 연출 역시 하나의 작은 시네마틱이 될 정도로 큰 성장을 보였다. 역대 LoL 로그인 화면 중 최고로 꼽고 싶은 연출은 루시안 챔프 출시 테마다. 어두운 배경을 연출과 나레이션으로 정리하고, 쌍권총 무기에 맞는 캐릭터 등장으로 폭발시킨 기법이 탁월했다.
모바일에서도 서브컬처 게임은 로그인 화면이 중요했다. 감성과 매력을 중요하게 여기는 계열이기 때문이다. 또 워낙 다양한 게임이 경쟁을 벌이는 만큼, 첫 타이틀부터 '우리는 이런 느낌을 가졌다'라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주는 것이 중요했다.
그 방면에서 전통적으로 특출난 게임사가 사이게임즈였다. 과거 '그랑블루 판타지'는 하늘과 구름과 비공정을 아름답게 조합한 화면과 테마곡으로 정체성을 전달했다. 타이틀 이미지는 지금도 수많은 래퍼런스로 참조할 정도다.
'프린세스 커넥트! Re:dive'는 타이틀 음악이 '치트키'로 꼽혔다. 인트로부터 뿜어져나오는 브라스 파트에, 풀 애니메이션으로 재생되는 밝은 모험담이 게임 정체성을 한 방에 알렸다. '우마무스메' 역시 풀 3D 레이스 장면과 빠른 오프닝 테마를 배치시켜 게임 시작부터 퀄리티와 속도감에서 차원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최근 가장 뜨거운 게임사 호요버스의 로그인 테마도 강하다. '원신'에서 유려한 조명으로 교차시키며 연출한 로그인 화면의 신비로운 분위기, '붕괴: 스타레일'의 은하열차와 잔잔하게 고조되는 음악도 첫인상에 들인 공을 짐작하게 만든다.
사실, 최근 몇년 사이 가장 뇌리에 남는 타이틀은 PC 온라인도 모바일도 아니었다. 콘솔 게임에 있었다.
'모여봐요 동물의 숲'을 실행할 때 내가 스스로 만든 섬의 전경, 그 속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동물 친구들의 모습. 평화로운 음악과 함께 떠오르는 타이틀 로고. 다음 날도 이 세상을 만나러 오고 싶게 만드는 아름다운 장치들이었다. 그런 섬세한 표현 능력이 결국 게임을 오래 기억하고 게속 머물게 만든다.
이제는 첫 번째 화면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두가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조금씩 연출 기법이 공식화되는 느낌도 든다. '이렇게 게임을 표현할 수도 있다'는 연출을 자주 보고 싶다. 단순히 화려하거나 웅장한 것이 아니라, 유저의 감성에 꽂히는 방법은 여전히 많다.
오늘도 게이머들은 수많은 게임을 실행하고, 각자 다른 화면과 음악을 통해 그 세상을 플레이하기 시작한다. 앞으로 어떤 타이틀이 떠오르고, 또 가장 오랫동안 트리거 역할을 해줄까. 게임이 사라져도 기억은 남는다. 그 기억의 중심에는 모두가 로그인하던 그 화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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