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퐁'부터 '파판', '디아블로', '젤다' 거쳐 '엘든 링'까지
본작 팬을 넘어 게이머 전체에게 '리스펙' 건넨 신규 DLC 수록곡
[게임플]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유튜브에 최초 공개된 BGA(백그라운드 애니메이션)를 처음 보고 들은 뒤, 잠시 멍하게 꺼진 화면을 응시했다. 그리고 다시 재생을 반복했다. 최근 오리지널 DLC마다 놀라운 점을 보여주는 '디제이맥스'였지만, 이번 연출은 특히 예상하지 못했다.
'!!New Game Start!!'는 리듬게임 '디제이맥스 리스펙트 V'에서 출시를 앞둔 DLC 'V익스텐션4' 수록곡이다. '사이터스2'의 'Mammal' 등으로 리듬게임 유저들에게 잘 알려진 'Teikyou'가 작곡을 맡았다. 지난 프리뷰 방송에서 게이머의 추억을 상징하는 3.5인치 디스켓 장면이 등장하며 기대를 모은 바 있다.
28일 공개된 게임 버전 BGA는 그 기대를 좋은 방향으로 빗나갔다. 단순히 추억 자극을 넘어 비디오 게임의 시작점, 게임 저장기기의 흐름과 함께 현재와 미래에 게임 매체가 나아가는 길까지 2분 만에 관통한 것.
음악 역시 고전게임의 8비트 감성에 현대적 전자음악이 결합된 강렬한 칩튠 사운드로, 리듬게임에 어울리면서도 듣는 즐거움을 잃지 않았다. 신곡들의 청각과 시각 표현 모두 발전을 거듭하고 있음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BGA는 '팩맨', '로그', '테트리스', '프로거' 등 게임 태동기의 대표 걸작들을 디제이맥스 도트 캐릭터로 표현하면서 시작한다. 이어 모니터에 떠오르는 'New Game Start' 메시지, 도시 시뮬레이션의 전설 '심시티'와 '퐁(Pong)'이 이어지면서 역사에 근본을 더한다.
1972년 아케이드 기기로 아타리에서 출시한 '퐁'은 대중들에게 최초로 인식된 비디오 게임 흥행작이자 모든 게임 개발의 시작점으로 꼽힌다. 이어서 수없이 찍혀나오는 3.5인치 디스켓, 퍼져나가는 '지뢰찾기' 속 지뢰들 같은 연출이 게임 시장의 팽창을 표현하고 있다.
이어서 '파이널 판타지' 초창기 시리즈의 전투 UI와 함께 디스켓 4인 파티가 전진하는 모습, 곧장 연결되는 '디아블로' 시리즈의 쿼터뷰와 배경 디자인이 불과 5초 만에 RPG의 분화와 발전 과정을 상징한다. 바로 다음 장면, 무수한 상자 속에서 튀어나오는 초록 보석은 '젤다의 전설' 시리즈 속 화폐인 '루피'다.
그밖에 수많은 장르가 애니메이션으로 스쳐 지나간다. 디스켓 친구들은 농장 게임인 '목장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토양에 씨앗을 심으며 지나가고, 퍼즐액션 '큐버트'와 플랫포머 명작 '서커스 찰리'를 넘어 탐험을 계속한다. '메이플스토리'에서 수많은 한국 유저를 괴롭혔던 인내의 숲 스테이지도 찾아볼 수 있다.
'뿌요뿌요' 세계에서 디스켓들은 공간 가득 차 버리고, 늘어나는 게임 용량을 디스켓이 감당하지 못하는 장면이 드러난다. 그리고 '봄버맨'의 폭탄에 디스켓이 숨을 거둔 뒤, CD로 저장매체가 옮겨지면서 또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게임의 한 시대가 변화하는 모습을 이렇게 담아낼 수 있다는 점에 감탄이 나온다.
CD는 그 용량과 속도에 걸맞게, 바퀴가 되어 '리볼트' 등 레이싱 게임들의 차량들과 함께 달려간다. 나선을 따라 질주하면서 '소닉' 시리즈의 링이 흩날리기도 한다. 그리고 '메탈 슬러그' 시리즈 최고 명장면으로 꼽히는 3편 후반부 우주 출격 신이 오마주된다.
시대는 계속 흘러간다. '배틀그라운드' 게임 시작 시 낙하산 포인트,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에서 나온 우주 정거장 시점 핵 폭발 장면. 동시에 스토리지가 남지 않았다는 메시지와 함께 700MB 용량이 꽉 차면서 CD가 산산조각난다. 또 하나의 시대가 끝났음을 의미하는 연출이다.
이어서 '다크 소울' 시리즈의 화톳불, '엘든 링' 황금나무와 축복 지점이 스쳐지나간다. 황금나무 아래에는 CD가 기댄 채 잠들어 있다. 수많은 랜선 단말이 하늘을 비행하면서 각자 포트에 꽂히고, 디스코드와 상점 페이지가 열리며 게임을 다운로드하는 화면이 잡힌다. 패키지에서 DL 구매로 바뀐 현 세대의 스토리다.
다운로드 종료와 동시에 수많은 단말에서 실행되는 '디제이맥스 리스펙트' 멀티플레이 장면은 본작 팬들에게 전하는 감동이기도 하다. 곡 전개가 절정에 달하면서, 화면은 '월드 오브 탱크'와 '워 썬더' 등 근현대 전쟁 소재의 밀리터리 게임들로 넘어간다.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폭파 미션을 의미하는 C4가 스쳐지나가고, VR 기기를 쓴 채 "New Game Start?" 화면을 띄우는 사람이 나타나면서 하나의 역사가 마무리된다. 초반 CRT 모니터에 나타난 같은 메시지가 겹쳐치며 절묘한 수미상관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과거 게임, 추억의 게임을 향한 오마주는 흔하다. 많은 유저의 몰입을 끌어내기에 가장 편한 장치다. 하지만 게임계의 흐름을 큰 줄기에서 되돌아보는 콘텐츠는 드물다. 지극히 방대한 분량을 압축해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리듬게임에서 '곡'은 특별한 존재다. 장르 특성상 유일무이한 콘텐츠고, 동시에 문화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소재다. 게임의 한 지점 회상이 아니라 전체 게임을 관통하는 표현을 시각과 청각으로 동시에 해낼 수 있는 위력을 지닌다.
V익스텐션4 DLC는 6월 1일 출시된다. 한때 명맥이 끊길 뻔했던 디제이맥스는 '리스펙트'를 부제로 꺼내들었고, 과거 곡들과 신곡들을 높은 퀄리티로 융합하며 되살아났다. 이번 DLC 수록곡 '!!New Game Start!!'는 그 '존중'의 의미가 한 게임을 넘어 모든 게임, 모든 게이머로 향한다는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