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지식 전혀 없어도, 서브컬처 관심 없어도 'OK'
열정과 낭만으로 채워진 실화 기반 스포츠물을 보고 싶은 당신에게
"실패할 수 없는 이야기, 최고의 퀄리티로 순항했다."
스포츠가 감동을 주는 이유는, 픽션을 뛰어넘는 실화가 거기 있기 때문이다. 그 실화를 바탕으로 최근 즐거운 볼 거리를 선사한 신작 애니메이션이 있다. 사이게임즈픽처스가 제작한 TV 애니메이션 '우마무스메 신데렐라 그레이'가 29일 1쿨 완결을 눈앞에 뒀다.
우마무스메 신데렐라 그레이는 일본에서 사회 현상을 일으킨 명마 '오구리 캡'의 이야기를 다룬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다. 올해 4월 18권 만에 800만 부 판매를 넘길 만큼 선풍적 인기를 끈 만화다. 한국은 넷플릭스 독점 방영으로 매주 일요일 5시 공개됐다.
일본은 물론이고, 국내 서브컬처 팬들도 관심이 높았다. 카카오게임즈를 통해 서비스하는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게임으로 인해 익숙한 IP다. 또, IP 중에서도 그중에서도 가장 검증된 기본 스토리라인을 가졌다. 애니메이션 품질 역시 훌륭하다. 만족도가 보장된 것이다.
■ 사전 지식이 전혀 없어도 좋고, 알수록 더 흥미로운
'신데렐라 그레이'는 우마무스메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 채 봐도 이해에 지장이 없다. 실제 경주마들의 행적을 고증해 의인화했다는 기본 정보만 알면 된다. 순수하게 '달리기'라는 스포츠를 테마로 하기 때문에 불편한 점도 없다.
하지만, 아는 만큼 더 재미있게 시청할 수 있다. 오구리 캡이 어떻게 수천만 개 인형이 팔리는 국민적 인기마가 됐는지, 당대 함께 뛴 말들은 어떻게 묘사됐는지 등 파고들 거리는 무궁무진하다. '우마무스메' 팬들에게 콘텐츠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우마무스메는 언제나 동명의 원본마 행적을 그대로 따라가며 그 속에서 낭만과 감동을 풀어낸다. 그중 '신데렐라 그레이'만이 가진 특징이라면, 정식 캐릭터가 되지 못한 주변 경주마들은 다른 이름을 써서라도 최대한 실제 서사와 같이 기여하도록 한다는 것.
예를 들어 1화 프롤로그에서 '골드 시티'가 등장하는 짤막한 레이스 신은 1987년 일본 더비다. 이 더비에서 6마신 차로 대승한 메리 뷰티의 실제 경주마 이름은 '메리 나이스'로, 이름 변화에서 짐작할 수 있듯 공식 우마무스메 캐릭터화가 되진 않았다.
모든 것이 동일하진 않다. 중앙과 지방의 극단적 대비를 위해 순서를 조금 바꾸기도 했다. 1987년 일본 더비가 열린 시점은 5월 31일이다. 오구리 캡은 이보다 먼저인 5월 19일 데뷔전을 치렀다. 하지만 화려한 더비에 붙여 먼지 날리는 카사마츠 시골 풍경을 보여주면서, 흙투성이인 채 출발한 오구리 캡의 극적 여정을 강조한다.
■ '일본의 사회문화 현상'이었던 한 경주마의 감동 실화
오구리 캡은 일본에서 경마를 스포츠 문화의 장으로 바꾼 '슈퍼 호스', 혹은 아이돌 호스로 불린다. 작은 지방에서 빈약한 혈통으로 태어나 중앙까지 진출해 강자들을 꺾어나가는 소년만화 스토리를 실화로 연출했다.
마지막 레이스까지 각본 없는 드라마를 연출하면서 1980년대 후반 국민적 신드롬을 일으켰다. 인형 판매량이 수천만 개에 달할 만큼 일본인들은 성별과 세대를 초월해 이 경주마에 열광했고, 당시 쌓은 기반은 '우마무스메' IP가 탄생하는 데에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신데렐라 그레이는 이런 오구리 캡의 일대기를 실제 스토리 이상으로 각색했다는 평가다. 이번 애니메이션은 그중 카사마츠 지역 이야기부터 '타마모 크로스'와의 혈투를 메인으로 한 파트를 분할 2쿨로 편성했다.
더 많은 분량이 만화 원작에 남아 있고, 이후 각색과 연출도 날로 우상향하고 있어 후속 제작도 충분히 가능하다. 원작 만화는 이제 오구리 캡 커리어의 최후반부를 다루고 있고, 올해 완결이 유력하다.
예정된 스토리로 짐작할 때, 아리마 기념이 열리는 12월 근방이 완결 시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애니메이션 2쿨 역시 올해 4분기에 재개해 12월 끝날 수 있다. 우마무스메는 콘텐츠 공개 시기를 가장 핵심인 실제 경기와 최대한 맞추기 때문에 충분히 합리적인 추측이다.
■ 각종 TMI - 오구리 캡은 왜 먹보인가
애니메이션 초반 카사마츠 라이벌로 등장하는 '후지마사 마치'의 실제 경주마 이름은 '마치 토쇼'다. 오구리 캡이 지방 데뷔와 함께 처음 만나게 되는 강적이다. 친구로 비중 높은 벨노 라이트, 노른 에이스 등도 다른 이름의 추정 원본마가 있지만 중요한 정보는 아니다.
중앙 편으로 전개되면 게임 등 다른 미디어에서 익숙할 수도 있는 상대들도 등장한다. 슈퍼 크릭, 메지로 아르당, 야에노 무테키, 사쿠라 치요노 오 등 같은 세대 경주마들이 비중 있는 캐릭터로 다뤄진다. 물론, 가장 중요한 상대는 선배 세대이자 회색 털 라이벌이었던 타마모 크로스다.
오구리 캡의 어린 시절도 실화를 어느 정도 반영했다. 실제로 "달릴 수 있는 것만으로 기적"이었다. 망아지 시절 앞발이 심하게 굽어져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한 적이 있었기 때문. 엄청난 먹보인 점도 어릴 적 어미젖을 제대로 먹지 못해 주변 잡초까지 다 뜯어먹을 만큼 먹기에 집착한 원본마 특성을 고증한 것이다.
호평일색인 원작 만화를 어떻게 영상화할 것인지는 방영 전부터 많은 추측이 오갔다. 1쿨 완결을 앞둔 시점 평가는 '무리수를 두지 않았다'는 점에서 준수하다. 이미 원작이 훌륭했고, 대사나 연출 대부분 거기에 기반해 끌어가고 있다.
어설프게 압축하지 않고 꼼꼼하게 따라가는 점도 호평이다. 예상대로 2쿨 완결이 타마모 크로스와의 최종전이라면, 만화책으로 불과 8권까지 분량을 20화 이상으로 치밀하게 풀어낸 것이다. 만화는 이미 20권을 넘어서고 있기에 앞으로 더 할 이야기는 넉넉하다.
신데렐라 그레이는 그간 주로 사용하던 '프리티 더비'라는 부제가 빠져 있다. 즉, 미소녀물의 분위기를 완전히 뺐다. 그야말로 모든 표정을 일그러뜨린 채 달려나가는 캐릭터들에 이입할 수 있다. 서브컬처 외 대중적 시청자들에게도 부담 없이 추천할 수 있는 이유다.
우마무스메 IP 연계는 점점 탄탄해지고 있다. 게임 역시 한국 서비스 3주년 기념 이벤트가 한창이다. 카카오게임즈 운영은 완전 정상화에 성공했고, 매 주년마다 더 큰 규모로 팬 페스티벌을 열면서 성원에 보답하고 있다. 신데렐라 그레이 마케팅도 적극적으로 발 맞춘 결과, 구글 매출 10위권에 근접하면서 또다시 역주행에 성공하고 있다.
열정과 낭만이 있는 스포츠 스토리를 좋아한다면, 이 기회에 우마무스메 세계의 즐거움에 발을 담가보는 것은 어떨까. 알수록 빠져나오기 어렵고, 불편할 점도 없다. 어떤 곳보다도 속도감과 카타르시스로 가득한 서사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