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 게임에서 시작한 캐릭터 멍멍이화, '도로시' 버전 글로벌 선풍적 인기
각국 팬들의 변형 거쳐 국내 역수입, 시프트업 공식화로 새로운 확장까지
"이 귀여운데 뭔가 화나는 캐릭터는 대체 뭐예요?"
'승리의 여신: 니케' 모티브로 시작해 전 세계 서브컬처를 강타한 밈 캐릭터가 있다. '도로시'를 하찮게 SD화한 얼굴과 공허한 눈빛, 대충 그린 듯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외곽선을 가진 몸통과 2족-4족을 넘나드는 다리. 근거 없이 올라간 입꼬리까지.
'도로롱'은 해외 커뮤니티에서 먼저 돌풍이 불어온 팬메이드 캐릭터였다. 영어 명칭은 'DORO'. '니케'를 접하지 않았어도 이 캐릭터는 아는 경우가 있을 만큼 파급력이 컸다. 급기야 개발사 시프트업에서 창작자에게 정식으로 라이선스를 구매했고, '니케'와 '스텔라 블레이드'의 콜라보를 통해 PC-콘솔까지 도로롱의 깃발이 휘날리게 됐다.
"날 데려가줘doro", "고래도 잘잡아doro" 등 끝에 '도로'를 붙이는 대사로 여러가지 대사 패턴이 퍼지기도 했다. 이 정체불명의 캐릭터는 언제 어떻게 생긴 것일까. 워낙 많은 변형이 있어 과정을 모두 담기 어렵지만, 현재 알려진 기원은 뜻밖에도 '소울워커'다.
시작은 약 4~5년 전으로 추정된다. 소울워커에 낮은 성능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많은 '스텔라 유니벨'이라는 캐릭터가 있었고, 이를 한 국내 팬이 '댕댕라'라는 강아지 캐릭터로 변형해 주기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 팬의 회고에 따르면 시작은 "길드원이 스텔라가 개썰매 끄는 그림을 보고 싶다고 해서"였다.
댕댕라는 물밑에서 적지 않은 인기를 끌었고, 이모티콘도 다수 만들어지며 아는 사람은 아는 캐릭터가 됐다. 타 게임 커뮤니티에서 댕댕라를 패러디한 이모티콘도 다수 나타나기 시작한 가운데, 2023년 아카라이브 니케 채널의 한 유저가 만든 도로시 버전이 완벽한 궁합으로 특히 호평을 받았다.
시기도 적절했다. 당시 0.5주년에 등장해 최고 인기 캐릭터로 떠오른 상태였고, 본래 어둡고 입체적인 내면을 가지고 있어서 하찮은 멍멍이 모양새로 풍기는 반전 매력이 선명했다. 불과 몇 달만에 이 캐릭터는 국내를 넘어 해외까지 퍼져나갔다. 국내 호칭은 그전부터 큰 이유 없이 종종 써오던 도로시의 별칭인 '도로롱'으로 굳어졌다.
때마침 그 시점은 '니케'의 일본 및 서구권 시장 인기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시기다. 특히 서구권에서 도로롱의 파장이 컸다. 진지함, 귀여움 등 어떤 분위기의 콘텐츠를 만들든 갑자기 도로롱을 난입시키면서 발생하는 분위기 환기 효과가 확실했다.
도로롱 관련 창작물이 난무하는 가운데, 중국에서 한 팬이 "NIKKE 고수가 될 거야"라는 대사를 도로롱에 덧붙인 것도 또다른 유행 부스팅을 일으켰다. '붕괴 스타레일' 등 다양한 게임에 고수 밈이 전파됐고, 진화한 도로롱 콘텐츠들이 국내로 역수입되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도로롱 캐릭터 잠재력을 주목한 시프트업은 팬 메이드의 저작권을 직접 구매하는 강수를 뒀다. 몸통과 머리를 그린 사람이 따로 있어 별개로 찾아 구매하느라 힘들었다는 후문도 있다.
그리고 2주년 특별 방송 등장 이후 캐릭터 상품, 스텔라 블레이드 콜라보 등 도로롱 활용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만우절을 이용해 게임 안팎에서 웃음을 주기도 하고, 메신저 공식 이모티콘 역시 인기를 얻었다. 다른 캐릭터들을 도로롱과 같은 형태로 변환해 귀여운 이미지를 만드는 효과도 누리고 있다.
'니케'를 통해 탄생한 팬메이드 캐릭터는 그밖에도 다양하다. 게임 초기 최강 딜러였던 홍련을 거북이로 변형한 '홍북이'가 대표적이다. 신규 성능 캐릭터들에 밀려나면서 "살려주게나 도령"을 부르짖고, "내 갓으로 냉삼 구워먹지 말게"라며 하찮은 면모를 보여준다.
일본 유저가 '홍북이의 모험'이라는 게임까지 개발해 배포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고, 시프트업은 이것 역시 활용해 공식 굿즈를 내기에 이른다. 개발사가 팬 메이드 캐릭터를 가장 알차게 써먹는 사례다.
전 세계 단위로 서로 주고받으면서 변화하고 퍼져나가는 밈의 세계가 점차 거대해지는 분위기다. 특히 서브컬처 게임들이 글로벌 서비스로 넓게 묶이는 경우가 많아 앞으로도 이런 경향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게임사와 팬 창작의 순환도 중요해지는 시대다. 커뮤니티에 도는 트렌드를 빠르게 파악하고, 취할 것을 정확히 골라 더욱 큰 창작을 만들어내는 것이 최근 서브컬처 추세다. '도로롱'은 이제 니케를 넘어 다른 플랫폼으로 걸어가고 있다. 확장은 이제 시작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