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주년 기념 영상, 넥슨이 한 소녀에 담고 싶었던 그림은
소녀가 문 안쪽을 뛰어 넘어간다. 먼지 쌓인 CRT 모니터에서 다람쥐를 잡고 퀴즈를 풀다가, LCD 모니터 속 축구장을 달려나간다. 아이패드에서 아로나의 고래를 쫒아다니고, 닌텐도 스위치 속을 헤엄치다 PS5에서 계승자들과 날아오른다. 한 게임사의 30년을 관통하는 모험이다.
넥슨의 창립 30주년이 다가왔다. 1994년 12월 26일 처음 게임계에 '넥슨'이라는 이름이 새겨졌다. 단칸방에서 시작한 이 게임사는, 2024년 시가총액 20조원의 국내 최대 게임사가 됐다.
넥슨은 지난 19일, 이 기록을 기념한 '파란소녀의 모험' 영상을 공식 유튜브에 공개했다. 자사를 대표하는 게임을 1분 44초 영상에 담았고, 그동안의 역사와 모든 플랫폼에 걸친 발자취를 한 소녀의 걸음걸이에 담았다. 게이머들에게도 화면 하나하나 담긴 추억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 파란 소녀는 넥슨 초창기 로고에 나타나던 그 캐릭터다. 흰 바탕 속에서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발돋움을 준비하고, 달려 들어가는 순간 소녀가 녹색으로 바뀌며 '띠리링' 솟아오르는 효과음과 함께 완성되는 넥슨 로고.
넥슨 브랜드디자인팀의 지난 9월 설명에 따르면, 파란 소녀가 들어가는 문은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는 포털을 상징한다. 유저들이 넥슨 게임을 통해 더 나은 재미를 경험할 수 있는 매개체다. 파란 소녀는 그 또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될 유저나 미래 세계에 해당한다.
사실, 옛날 로고의 속뜻을 지금 우리가 확신하기는 힘들다. 파란 소녀는 게임을 시작하는 모두에게 각자의 의미가 있을 것이었다. 젊은 게이머에게는 처음 그것이 누가 어떻게 플레이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게임과 어울리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그 소녀의 모습과 소리는 하나의 알람이었다. 학생 시절 지루한 공부 시간이 끝나고, 게임 시간이 시작되는 순간을 상징하는 소녀였다. 그 시절 '큐플레이'와 '마비노기'는 현실을 잠시 떠나 가상의 누군가를 만나는 공간이었고, 소녀가 넘어가는 문은 마치 그 공간을 넘어가는 듯했다.
"넥슨 사옥 유리창 하나쯤은 내가 사줬어."
어린 시절 게임을 함께 한 친구들과 만날 때, 넥슨 이야기가 나오면 반드시 누군가 말하는 대사다. "난 이제 회의실 하나는 지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주변을 숙연하게 만드는 친구도 있다. 크고 작음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모두 시간과 열정을 넥슨 게임에 바친 시기가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왜 다른 게임사보다 유독 넥슨이었을까. 한창 그 게임들을 하던 시기에는 이유를 알 수 없었고, 굳이 생각하지도 않은 의문이다. 하지만 30년을 돌이켜보면 감이 잡힌다. 감성에 가장 가까이 있었고, 하나의 감성에만 안주하지 않았다.
'바람의나라'로 그래픽 MMORPG 역사를 연 넥슨은 '퀴즈퀴즈'와 '크레이지 아케이드'로 소셜 파티 게임에 먼저 뛰어들었다. 초기에 고전 오락실 감성 정도로 치부되던 '던전앤파이터'를 거액에 인수했고, 콘솔 게임 개발에도 일찌감치 뛰어들었다.
특정 시기는 실패작만 연속으로 나오기도 했지만, 간혹 사고를 치기도 했지만, 결국 넥슨만큼 모든 분야에서 시도를 멈추지 않는 곳은 없었다. 수익성이 없어 모두가 외면한 어린이재활병원을 국내 최초로 설립하는 등 사회공헌에도 앞장섰다. 그것은 故김정주 창립자가 가진 뜻이었고, 동시에 한 기업의 지향점이었다.
어디든 문을 열고 뛰어들어간다. 그 결과 넥슨은 홀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업계 찬바람이 불고 초창기 경쟁자들이 휘청이는 가운데서도 성장을 거듭했다.
'던파'는 PC에 이어 모바일까지 실적의 기둥이 됐다. '데이브 더 다이버'는 글로벌 게임계의 극찬을 받으며 메타스코어 90점대 금자탑을 세웠다. '블루 아카이브'는 서브컬처 종주국 일본의 동인 역사를 바꿨다. 또 '퍼스트 디센던트'를 거쳐 '퍼스트 버서커: 카잔' 등 많은 대작이 내년 글로벌 콘솔 시장 공략을 앞두고 있다.
게임계는 내일이 다르고 모레 또 다르다. 30년을 커나간 기업이라도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미래가 확실하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흔들리더라도 다시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는 충분하다. 지금도 넥슨은 모든 플랫폼에서, 모든 장르에서 경험과 센스를 쌓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파란 소녀는 지금까지 길을 두고 망설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많은 유저들은 함께 다양한 경험을 하고, 함께 울고 웃으며 걸었다. 그리고 추억 너머에서 새로운 미래를 본다. 이제 곧 31년차, 넥슨이 열고 들어갈 다음 문이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