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선택창'부터 '마지막 재회'까지, 유저 여정 되걸어
함께 한 유저들에게 추억과 감동 선사해

[게임플] 전 세계 각지의 다양한 풍정(風情)들을 아로새긴 듯 다채롭게 표현된 테마, 압도감을 넘어 경외감으로 전율케 만드는 광시곡. 그 날 선 소리가 새긴 자국은 18년 가까이 이 게임을 잊지 못하게 만들었다.

‘던전앤파이터(이하 던파)’가 18년의 서비스를 음악으로 되짚는 오케스트라 콘서트 ‘던전앤파이터 심포니’를 지난 17일 롯데콘서트홀에서 개최했다. 지난 18년간 수 차례 게임을 오갔던 한 마리 철새 같은 기자도 추억을 쫓아 그 곳으로 향했다.

공연장은 문자 그대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현장엔 연령과 성별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스치듯 지나가며 들은 대화에선 먼 지방에서 공연을 보러 왔다는 말도 들을 수 있었다. 긴 시간 쌓아온 던파 IP가 가진 저력을 다시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좌석은 무대 정면 기준 우측으로, 트롬본과 호른, 성악대와 제법 가까웠다. 공연 중 연주자들의 표정 변화도 보일 정도였다. 그렇다고 해당 악기들의 소리가 크게 들리는 불상사는 없었다. 다만 다른 부분에서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을 뿐.

2시가 지나니 공연이 시작됐다. 모험의 시작을 알리는 내레이션이 지나고 매번 게임을 켤 때마다 들었던 그 음악이 공연의 장대한 서막을 열었다. ‘캐릭터 선택창’에서 시작해 ‘세리아의 방’, ‘엘븐가드’ ‘헨돈마이어’와 ‘웨스트코스트’로 이어지는 흐름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모험가들의 여정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2nd Impact 업데이트 이전 사운드를 기억하는 기자에겐 마법과 과학, 기술과 모험이 모두 모인 항구 도시의 정취를 담아낸 ‘웨스트코스트’ 넘버가 인상에 남았다.

이어지는 넘버는 던파의 초창기를 상징하는 기타 리프가 담겨진 대표곡 ‘백야’, ‘샐로우 킵’, ‘미망의 탑’, ‘추격 섬멸전’의 메들리였다. 원곡의 기타 리프는 다른 악기의 연주로 대체되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조금 아쉬웠다. 다만 긴박하게 흐르는 멜로디가 특징인 ‘미망의 탑’은 이번 공연에서 굉장히 신비스러운 분위기로 재해석됐는데, ‘사신 드레이퓨스’와 그가 만든 미지의 공간인 미망의 탑의 특징을 잘 살렸다.

이후에는 ‘스톰패스’, ‘쇼난’, ‘체스트 타운’과 ‘히링 제도’ 등 이야기의 주역으로 성장해가는 모험가들의 여정을 되걸은 끝에 대마법사 마이어를 마주했던 ‘기억의 도서관’의 OST를 끝으로 1부는 막을 내렸다.

이어지는 2부는 모험가들에게 닥친 본격적인 시련을 다룬다. 더 오큘러스: 부활의 성전 속 ‘진실의 제단’과 추방자의 산맥 중 ‘소멸의 안식처’, 대마법사의 차원회랑 중 ‘문의 주인, 카론’ 등 모험가들을 연단된 칼날로 벼려내는 가혹한 시련을 대표하는 OST가 서두를 차지했다.

특히 이번 공연에선 ‘소멸의 안식처’ 원곡의 파이프 오르간 사운드를 금관악기의 깊은 울림으로 표현했는데 그 울림이 주는 무게감이 상당했다. 기타 리프의 부재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꽉 채워진 구성은 관객들에게 강렬한 전율을 선사했다.

그렇게 연단된 칼날은 끝내 세계관 내 신적 존재 ‘사도’를 향한다. 불을 먹는 안톤에서 시작해 폭룡왕 바칼까지 이르는 사도와의 결전을 표현한 곡 중 가장 좋았던 곡은 안톤의 테마곡 ‘검은 바다’다. 바다를 건너 서서히 다가오는 종말의 그늘과 비장한 결의로 이를 막는 모험가들, 뒤이어 호른과 팀파니로 표현된 경보음으로 고조되는 위기와 마침내 승기를 거머쥔 모험가들의 송가로 마무리되는 탄탄한 구성은 그 치열했던 전투를 다시금 떠올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2부의 마지막은 천계인들이 투쟁을 통해 얻어낸 자유를 담은 ‘Liberation’과 최근 펼쳐진 선계의 새로운 풍경을 다룬 ‘청연’이 장식했다.

끝으로 함께 해준 관객들을 위해 보내는 헌사인 앙코르는 던파 OST 중 가장 많은 인기를 누리는 두 곡 ‘고통의 마을, 레쉬폰’과 ‘마지막 재회’로 꾸며졌다. 깊게 드리운 죽음을 담아낸 원곡을 새로운 분위기로 표현한 ‘고통의 마을, 레쉬폰’은 다소 아쉬웠지만, 가장 좋아하는 곡인 ‘마지막 재회’와 함께 했던 원곡 가수들의 열창을 들었을 때는 진한 감격이 차올랐다.

이번 공연으로 음악이 가진 힘을 다시금 실감했다. 전혀 다른 악기와 전혀 다른 소리로 표현된 그 선율 하나가 담임 선생님 성함조차 떠올리지 못할 정도로 기억 깊은 곳까지 침잠했던 학창 시절의 기억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아마 많은 관객들이 이와 같은 경험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공연이 끝나고 저마다의 소감을 전하며 돌아가는 이들의 표정은 밝았다. 그만큼 던파가 선사한 추억의 깊이가 상당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개인의 차이는 있겠지만, 적어도 기자에게는 던파와 함께한 18년의 세월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드는 최고의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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