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가능성이 엿보이는 심리스 월드와 새로운 이야기
그 속에 숨겨진 콘텐츠, 얼마나 채우느냐가 관건
[게임플] TL의 광활한 월드와 이야기는 유저에게 방랑과 모험을 요구한다.
2000년대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판타지 장르의 시각화가 성행했다. 상상과 판화로만 그려졌던 판타지 세계가 눈앞에 나타났다. 영화 산업과 함께 판타지 장르의 시각화 작업을 주도한 것은 게임 산업이었다.
게임계는 기존의 판타지를 융합시켜 새로운 판타지를 창조했다. 게임과 판타지 장르의 결합은 모두가 예상한 대로 대성공이었다. TRPG에서 MMORPG라는 새로운 세계가 열리며 게이머들은 시각화된 판타지 장르 세계에 열광했다.
또 하나의 자신인 캐릭터로 기믹을 만들기도 하고 세계의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조직을 규합하고 적대적 상대를 정복하기도 했다. 광활한 대륙을 정처없이 떠돌며 유랑하러 다니고 남들이 발견하지 못한 무언가를 찾아내기에 혈안이 된 유저들도 많았다. 그야말로 신대륙의 발견이었다.
과거 엔씨는 한국 게임 업계에서 게임과 판타지 장르의 융합을 이끈 개척자 중 하나였다. 리니지와 리니지2를 시작으로 아이온과 블레이드 앤 소울로 그 방점을 찍었다. 최근 엔씨가 보여준 행보는 ‘리니지’ 시리즈의 부활에만 집중됐었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데 미진한 모습을 보인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신작 TL은 플레이 내내 과거 엔씨가 보여줬던 스토리텔링에 대한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방대한 대륙과 뼈대 있는 이야기는 유저들에게 다시 모험을 촉구할 만한 설득력이 있었다.
게임 시작과 함께 보여준 수려한 시네마틱 연출은 스토리에 대한 기대를 고조시켰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오가는 퀘스트 구성과 풀 더빙으로 이뤄진 컷신과 나레이션은 이야기의 몰입감을 높인다. 또한 맵 곳곳에 숨어 있는 일지와 이야기들을 찾는 재미와 방대한 대륙을 모험하는 일은 매우 흥미로웠다. 특히 심리스 월드로 구성된 대륙은 원한다면 바다 깊은 곳까지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아름답게 디자인된 협곡과 사막의 구석구석을 탐험하며 광석을 채집하는 등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베타테스트 기간 제한된 레벨과 제한적으로 열린 월드맵 때문에 확인할 수 있는 퀘스트와 이야기의 숫자는 적었다. 하지만 현재 오픈된 월드맵에서도 지역별 고유한 색깔을 볼 수 있어 본편에서 진행될 이야기들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갈고리를 이용해 순간적으로 높은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이동방식은 탐험의 재미를 더했다. 또한 가장 맘에 드는 장치는 비행 이동 시스템이었다. 높은 곳에 올라서서 뛰어 내린 후 독수리로 변신해 라슬란의 전경을 즐길 수 있었다.
아쉬운 점도 있었다. 수영으로 바다를 건널 수 있을 정도로 오픈된 월드였지만, 맵의 구석 부분으로 갈수록 사용할 수 있는 갈고리 액션이나 상호작용 가능한 콘텐츠가 적어졌다. 월드의 방대함에 비해 내용물은 조금 빈약했다.
메인 스토리의 경우 레벨 제한과 다소 더딘 진행으로 초반부 이후 더 많은 이야기를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조금씩 힘을 잃어간다는 유저 평이 있어 초반부 흡입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중후반부 촘촘한 플롯 설계가 필요해 보인다.
TL은 과거 엔씨의 시작점을 다시 보여주는 게임이다. 이번 베타 테스트로 새로운 이야기와 대륙을 설계해 판타지 장르를 개척하던 엔씨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TL이 BM과 ‘리니지 라이크’로 잊혀진 소프트 파워의 엔씨를 다시 왕좌에 앉힐 수 있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