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실사 촬영 게임의 '골드 디거' 표현, 젠더 갈등 이용 흔적 문제
표현 수위와 작품 해석 모두 엇갈린 반응... 핵심은?
중국의 한 인터랙티브 게임이 여성 혐오 표현을 두고 논쟁에 휩싸였다. 몇 주가 지났지만 화두는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영어권까지 번지는 모양새다.
6월 17일 스팀 출시된 'Revenge on Gold Diggers(골드 디거에 대한 복수)'는 홍콩 영화감독 출신 마크 우가 개발한 실사 촬영(FMV) 게임이다. 중국어 제목 '정감반사모의기'를 직역하면 '연애사기 방지 시뮬레이터'다. '꽃뱀'에게 마음을 바쳤다가 사기를 당한 남자 주인공이 감정 사냥꾼으로서 사기 조직 여성들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 게임은 중국 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출시 첫 주 중국 스팀 3위에 올랐으며, 오직 중국어 버전만으로 스팀 전체 기준 12위를 차지했다. 2주차에도 중국 4위를 지키면서 '배틀그라운드', '에이펙스 레전드' 등 대형 멀티 게임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러나 출시 초기부터 젠더 갈등을 자극한다는 논란이 게임을 뒤덮었다. 영어 제목인 '골드 디거'부터 문제가 됐다. 영미권에서 돈 많은 남성을 유혹해 재산만 탈취하고 버리는 여성을 가리키는 멸칭이다. 중국에서도 '노녀'라는 비슷한 표현이 존재한다.
■ "데이트 사기 여성을 다루면 여성 혐오인가"
페이 무 프로듀서는 스팀 페이지를 통해 "우리는 사랑도 증오도 가능한 다층적인 캐릭터들을 설계했고, 그들을 이해함으로써 심리학, 사회학, 커뮤니케이션학 등 여러 분야에서 생각할 주제를 던지려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과격한 멸칭 표현과 실제 게임 설정에서 설득력이 없다는 비판이 나왔다. 비리비리 등 중국 플랫폼 일부는 마크 우 감독 계정을 차단하기도 했다. 결국 영어 제목은 'Emotional Fraud Simulator(감정 사기 시뮬레이터)'로 변경됐으나, 이 게임을 둘러싼 찬반 대립은 여전하다.
게임에 긍정적 평가를 남긴 유저층은 게임을 향한 비판이 과도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한편, 오히려 제목 변경에 아쉬움을 표하기도 한다. 세상 모든 여성을 '골드 디거'라고 표현한 것이 아니며, 그런 일부 계층을 대상화했다는 이유만으로 여성 혐오나 젠더 갈등을 유발한다고 볼 수 없다는 논지다.
한 유저는 "반대로 바람둥이 남성 조직에게 여성 주인공이 복수하는 게임을 만들었다고 하면 남성 혐오가 되는가"라고 되물으면서 "무엇을 말하느냐가 중요하지, 소재나 단어만으로 혐오로 몰아가는 것은 오히려 표현과 창작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이라고 항변했다.
"흔한 로맨스가 아닌 감정을 소재로 삼았고, 복잡한 감정 흐름을 헤쳐나가며 어려운 선택을 내리는 재미로 인해 플레이할 가치가 있다"는 게임 자체 호평도 보인다. "실제 데이트 사기 피해가 급증하는 중국 사회 현실에서 사기 예방과 물질 숭배 비판 등 현실 반영 메시지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변호도 존재한다.
실제로 중국에서 연애를 빙자한 사기 범죄 피해는 2023년 20억 위안(약 3,800억 원) 규모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또한 지난해 게임 스트리머 '팡 마오(반묘, 뚱뚱한 고양이)'가 교제 중인 여성에게 거액의 돈을 요구받아 송금한 뒤, 강제 이별을 당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c초기에 알려지면서 사회적으로 젠더 갈등 논쟁이 타오르기도 했다.
■ "문제는 무엇을 말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말하느냐였다"
그러나 팡 마오 사건은 반전이 있었다. 경찰 조사 결과 여자친구 탄은 팡 마오에게 금전적으로 의지하지 않았다. 금전 거래 역시 합의 하에 서로 몇 차례 주고받았다. 오히려 유족들이 연애 사기를 당했다는 여론 조성을 주도하고 탄의 신상 털기를 유도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과열됐던 논쟁은 '믿고 싶은 대로 믿는' 분위기로 일단락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 사기 시뮬레이터'는 팡 마오가 데이트 사기 여성에 휘말려 사망한 것처럼 오마주를 남겼다. 게임 시작부터 나오는 주인공 이름을 '벤 마오(분묘)'로 설정했고, 7개 챕터 앞 글자를 이으면 "또다른 팡 마오가 나오지 않기를"이라는 메시지가 나타나도록 했다.
'골드 디거'라는 초기 표현 자체도 문제점이 선명했다. 영어권에서 특정 계층을 넘어 여성 자체를 일반화하고 비하하기 위해 활용한 이력이 많기 때문. 국내의 경우 '김치녀'와 '한남' 등의 표현이 비슷하게 대응된다.
또한 개발진의 말과 달리 남성 주인공이 여러 여성을 오가며 희롱하듯 하는 전개가 중심이 된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여성을 단순한 오락의 대상으로 소비하면서도, 감정 사기와 여성을 강제로 연결해 젠더 갈등을 자극하려는 내용이 읽힌다"는 지적이다.
■ 디지털 작품 속 언어 표현, 어디까지여야 할까
중국 내 매체 사이에서도 의견은 갈린다. 전체적으로 게임을 향한 비판이 다수다. 지무뉴스는 논평을 통해 "젠더 갈등을 관심 수단으로 삼는 것은 자멸의 길"이라면서 "게임 내용이 여성 전체를 타깃으로 삼으려는 의도가 강하고, 복잡한 사회 문제를 젠더 갈등으로 단순화해 여성을 사기의 상징으로 치환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베이징 청년일보는 게임을 옹호하고 나섰다. "단순한 사기 예방 도구를 넘어 연애 윤리를 촉진하는 혁신적 수단"이라면서 "가짜 인격, 감정 조작, 금전적 착취 등 사기의 본질을 드러내고 '성실함은 관계의 기본'이라는 윤리 기준을 강조한 게임"이라는 평을 남겼다.
'감정 사기 시뮬레이터' 속 골드 디거를 둘러싼 논란은 단순히 게임 하나에서 그치지 않는다. 현재 젠더 갈등 담론이 어느 지점에서 형성됐는지, 앞으로 디지털 작품 속 언어가 어느 선에 자리잡아야 하는지 엿볼 수 있는 상징적 사건이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확장된 세계에서 정보 세분화는 일상이 됐다. 젠더는 물론, 수많은 계층의 일반화와 혐오는 어떤 사건에서든 불이 붙을 수 있다. 한 가지 단어 사용조차 치명적 명예 훼손으로 돌아오는 시대다.
젠더를 비롯한 계층 갈등은 갈수록 깊어질 수 있다. 어쩌면 미래 그 어느 시점보다도 지금이 갈등 없는 시기일지 모른다. 어디부터가 혐오일까, 그리고 어디까지가 정당한 표현일까. 사회에서 어떤 문제를 다루느냐를 넘어, '어떻게' 다루느냐를 더욱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