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가 걸리고, 사람이 죽어도 '한 번만 걸려라'가 더 심해지는 세상

'렉카'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의 폭주를 멈추려는 의지는 필요하다.

'뻑가'라는 유튜브 닉네임으로 알려진 박 모씨에 대한 첫 변론기일이 22일 진행됐다. 방송인 '과즙세연'이 뻑가가 자신의 도박 및 성매매 허위 의혹을 사실처럼 암시하는 영상을 게시했다며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다. 뻑가 측 변호인은 "기존 뉴스와 네티즌 반응을 종합해 개인 의견을 덧붙인 형식에 불과하다"고 맞서고 있다.

뻑가는 '사이버 렉카'로 불리는 이슈 유튜브의 전형적 행태를 보여준 인물로 꼽힌다. 익명 커뮤니티에 제기된 개인들의 의혹을 검증 작업 없이 옮겨 담고, 정치와 젠더 등 민감한 사회 갈등 요소를 자극하는 콘텐츠로 채널 구독자 120만을 넘긴 바 있다. 

뻑가는 지난달 3일 신분 노출 위험을 이유로 영상재판신청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법원은 이 신청을 불허했다. 타인의 신상을 헤집으면서 거액의 수익을 취했지만, 정작 자신은 기본적 신분조차 숨기려 하는 모습이 블랙 코미디 같다는 감상도 나온다.

과거 피해자 가운데 쏟아지는 사이버불링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도 있다. 천인공노할 죄도 아니었다. 단순히 단어 하나를 잘못 썼다는 것이 몇 년 동안 언행 하나하나를 추적당하며 수십만 명의 악플 세례를 받게 된 이유였다. 

재판 결과와 무관하게 몰락은 기정 사실로 보인다. 과거 뻑가를 지지하고 옹호해온 커뮤니티 이용자들조차 돌을 던지고 있으며, 유튜브 채널은 문제 영상 다수가 삭제된 체 방치 상태다. 다만, 이 한 명이 대가를 받은 뒤에 달라지는 것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미 그와 같은 정신(?)은 더욱 힘을 키워 뿌리박혔기 때문이다.

유튜브 채널은 문제 소지 영상이 모두 사라진 채 활동 중단 상태 (자료: 뻑가 유튜브)
유튜브 채널은 문제 소지 영상이 모두 사라진 채 활동 중단 상태 (자료: 뻑가 유튜브)

■ 날조가 가득한 공격도, 자칫하면 '나락'에 보낼 수 있다

지난달 한 커뮤니티에 한 스트리머를 저격하는 과거 자료가 게시되면서 추천글로 올라간 적이 있다. 게임 스토리 중 발목이 다친 캐릭터에게 '창민이'라고 부른 영상이 있었다. 이것이 한 스포츠 스타를 조롱하는 혐칭이고, 비하 행위로 논란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당시 창민이는 '창을 쓰는 소년(잼민이)'의 줄임말로, 스트리머가 즐겨 하던 '이터널 리턴' 속 캐릭터 펠릭스가 3년 전부터 창민이라고 불려왔다. 방송 맥락상 너무나 당연했고, 아무런 비하 의미 없는 말이 절묘하게 짜깁기되어 의혹처럼 퍼진 것.

전후사정이 알려지자 법적 대응 압박을 받은 작성자는 따로 사과문을 게시했다. 그중 "사실 방송을 본 적도 없지만, 인방 플랫폼 갈드컵(팬싸움)을 일으키기 위해 글을 작성했다"는 내용은 스트리머를 포함한 시청자 대부분을 허망하게 만들었다.

비슷한 시기, 또다른 여성 버추얼 스트리머를 향한 '렉카'도 있었다. 게임 중 스토리를 이야기하다 말을 더듬어 '모부'라는 말이 잠시 나왔는데, 이것이 페미니스트들만 부모를 바꿔 말하는 말이기 때문에 관련 사상이 의심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플레이 중인 게임은 '산나비'였고, 그 시점까지도 어머니라는 존재 자체가 등장도 언급도 없었다. 전후 맥락으로도 '부녀'를 말하려다 말이 꼬인 것은 명백했다. 이런 사정 설명과 함께 스트리머의 그동안 흔적에서 완전히 정반대 성향의 언행이 다수 제시되자, 그제서야 누명을 풀 수 있었다.

토막상식: 산나비는 애초에 부모를 말할 일이 없다
토막상식: 산나비는 애초에 부모를 말할 일이 없다

■ 해피(?) 엔딩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위의 사례들처럼 명확한 반박이 가능한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이렇게 조금만 맥락을 파악하면 풀리는 의혹도, 비난이 한 차례 들끓은 뒤에야 겨우 수습이 되는 것이 커뮤니티 세계의 현실이다. 경우에 따라 완벽한 해명이 불가능한 일도 많다. 급기야는 아무 문제 없는 단어를 썼는데도 사실은 혐오 단어였다는 허위 프레임을 씌워 공격하는 사례도 존재한다.

자신이 몰랐다는 사실,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일은 매우 어렵고 부당하다. 본인이나 사정을 아는 사람들이 설명을 해도, 잘 모르는 다수에 의해 '팬들의 실드' 취급 받으며 조롱당하기 마련이다. 긴 노력을 거쳐 해명한다 해도, 조금 지나면 이미 관심이 식은 뒤다.

그동안 '렉카'를 시작하고 거기에 동참한 이들은 이미 다음 목표로 찾아 떠났고, 사실 여부에 관계 없이 낙인은 여전하다. 가끔은 사회적 불법이나 범죄를 저질렀던 방송인이 당당하게 팬을 끌고 돌아다니고, 말 하나에 누명 잡힌 사람이 더 길고 깊게 인격 말살을 당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런 일이 특정 몇몇 스트리머에게만 닥칠 일이라고 지나가기는 어렵다. 누구나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는 세상이다. 세대가 변할수록 개인 방송이 인터넷 세계를 떠돌아다니는 일은 흔해질 것이다. 이 사회에서 누구나 '잘못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해명할 방법도 없이 사회적 말살을 당할 위험이 있다는 의미다.

당시에 의혹이 터지자마자 비난을 쏟아낸 사람들은 아직도 같은 일을 찾아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비슷한 일은 쉬지 않고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분노는 탄력을 받아 더욱 큰 혐오를 만든다. 누군가의 몰락을 기대하는 방향으로 '도파민'을 추구하는 것이 현재 진행되는 악순환이다.

유튜브 등 뉴미디어는 물론, 기성 미디어도 공범이 되어가고 있다. 문제점과 근거를 확실하게 파악하지 않고 커뮤니티 속 혐오만 옮기는 일은 갈수록 많아진다. 그 대상이 기업이나 단체 혹은 공인이라면 필요한 의혹 제기일 수도 있지만, 한 개인을 향한다면 폭력적인 행위다.

■ '무지성 실더'라고 공격받더라도, 혐오 거부할 용기 가져야

지금도 인터넷 세상에는 수많은 '뻑가 후보생'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이미 그의 빈 자리를 채운 렉카 채널은 무수히 많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혐오 콘텐츠에, 더욱 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 탑승해 거대한 광기를 만들어낸다. 기다려보자는 의견은 목소리 큰 공격적 조롱에 묻힌다. 

혐오와 갈등을 부채질하면 누군가는 이득을 얻는다. 뻑가 같은 유튜버는 막대한 조회수 수익을 얻고, 매체와 사회단체에게도 달콤한 유혹이다.하다못해 커뮤니티 포인트를 벌겠다고 비슷한 갈등 글만 집중적으로 올려서 추천을 받는 사람도 넘칠 만큼 있다.

더 이상 선한 방향의 변화는 기대하지 못한다. 인터넷 문화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멀리 나아갔다. 선악 구분을 넘어 피할 수 없는 현상이 됐다. 다만 최소한의 선은 끝까지 지키려 노력할 필요가 있다. 특정 개인을 향한 의혹이 몰아닥쳤을 때, 적어도 무작정 공격은 잠시 멈추고 뒷 상황을 알아보자 말하는 노력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대중은 선하지 않지만 악하지도 않다. 한 가지 의견으로 정의될 수 없는 개념이다. 수많은 사이버불링 바깥에는 그 혐오에 참여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흔적도 있다. 똑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 시작부터 "공격을 멈춰라"고 외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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