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영역을 확장하며 영향력을 주고 받는 이별
주변과 업계, 팬들에게 신뢰는 잃고 상처만 남아버린 이별

모든 삶에서, 어떻게 만나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헤어지느냐다. 서브컬처 팬들은 10년 전 아름다운 이별을 알고 있다. 그리고 현재 최악의 이별을 지켜보고 있다.

'해묘(海猫)'는 하이퍼그리프 종치샹 프로듀서의 닉네임이다. 과거 동인 개발팀인 미카팀에 합류해 선본 네트워크에서 '소녀전선' 아트 디렉터를 맡았고, 핵심 캐릭터와 UI 및 세계관 아트를 디자인하면서 게임 정체성 구축에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하지만 소녀전선 출시 직전, 해묘는 후임 디렉터(LIN+)에게 자리를 맡기고 돌연 회사를 나왔다. 그리고 요스타 출신 개발자들과 함께 '하이퍼그리프'를 차렸다. 전도유망한 게임 출시 직전에 디렉터급이 퇴사하는 일은 드물다. 소녀전선이 글로벌 흥행에 성공한 후 이런 정보를 뒤늦게 접한 유저들 사이에서 여러 추측이 흘러나올 만했다.

하지만 약 10년에 걸친 이야기를 종합하면, 해묘의 독립은 온전히 자기가 꿈꾸는 세계관으로 게임을 만들고 싶어서였다. 그 결과 또다른 서브컬처 흥행작 '명일방주'를 탄생시켰고, 신작 '명일방주: 엔드필드' 프로듀서도 맡아 올해 출시를 앞두고 있다.

한국 '명일방주' 출시 간담회 당시, 요스타 요몽 대표(왼쪽)와 참석한 해묘 프로듀서(오른쪽)
한국 '명일방주' 출시 간담회 당시, 요스타 요몽 대표(왼쪽)와 참석한 해묘 프로듀서(오른쪽)

■ 우중과 다른 영역을 구축한 해묘, 대립 아닌 동반자로

명일방주는 소녀전선으로부터 3년 뒤 출시됐다. 일부 아트 인원이 겹쳐 초기 화풍에서 소녀전선이 조금 떠오르기도 했지만, 기본 세계관과 설정은 물론 플레이 방식도 전혀 다른 디펜스 장르였다. 독자적 감성을 통해 소녀전선과 완전히 다른 팬층을 형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성공은 글로벌로 뻗어나갔다.

해묘 프로듀서, 그리고 소녀전선 총책임자인 선본 네트워크 우중 CEO와의 관계도 자주 입에 오르내린다. 전 직장 대표와 퇴사자의 사이지만, 단순 친분을 넘어 최고의 친구로 만남을 이어나가고 있다. 사무실 역시 근처다.

자기 게임의 굿즈를 선물해 각자 웨이보에 선물 받았다는 인증을 하거나, 소녀전선 첫 아트북 표지 그림을 해묘가 그려주기도 했다. 소녀전선 차기작 뉴럴 클라우드 캐릭터 '임호텝'은 해묘와 엄청난 공통점으로 인해 사실상 오마주 캐릭터라는 정설이 나오기도 한다.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면서 함께 커 나가는 모습이다.

각국 블루 아카이브 행사에 늘 함께 자리하던 김용하 총괄PD와 박병림 PD
각국 블루 아카이브 행사에 늘 함께 자리하던 김용하 총괄PD와 박병림 PD

■ 동반자일 수 있었지만, 무너져버린 관계

넥슨게임즈 '블루 아카이브'에서 박병림 PD의 독립 역시 표면적으로는 긍정적 도전으로 읽혔다. 김용하 총괄PD와 10년 가까이 한솥밥을 먹으며 고난을 헤쳐나간 사이다. 자기가 원하는 게임을 만들겠다는 명목으로 독립 법인을 차렸다. 양주영 시나리오 디렉터, 김인 아트 디렉터 등 쟁쟁한 인재들도 함께였다. 

김용하 총괄의 당시 반응 역시 일견 애틋했다. 매체 인터뷰에서 '장송의 프리렌' 스토리를 예로 들며 "행선지가 갈라졌을 뿐, 모두가 소중한 동료이며 앞으로도 기회가 있으면 함께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응원을 전했다. 한국판 우중과 해묘의 관계가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가 나온 이유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프로젝트 KV'는 첫 공개와 동시에 블루 아카이브의 지나친 복제품이란 반응을 얻으며 개발이 중단됐다. 넥슨게임즈 시절 자료 무단 반출 혐의로 경찰 압수수색이 이어졌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내부 직원들의 폭로, 익명 관계자들의 증언 역시 충격적이었다. 방향도 대체적으로 일치했다. 잘못된 소문을 통한 동반 퇴사 종용, 재직 시기 계획적인 독립 작품 준비, 유저층도 함께 빼오려는 계획 등. 디나미스원 핵심 3인방의 행보는 함께 성장하기 위한 이별이 아닌 갈라먹기 시도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 거대한 가능성과의 이별

지금 소녀전선과 명일방주는 각자 다른 방향에서 거대한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우중 CEO는 '소녀전선2: 망명' 운영으로 글로벌 재도약을 꾀하고, 해묘 프로듀서는 신작을 통한 명일방주 IP 확장으로 열광적 팬덤을 키워내고 있다. 중국 서브컬처 업계는 두 갈래의 활로를 함께 연 것이었다.

반면 블루 아카이브는 잘못된 이별로 인해 모두에게 상처만 남는 흐름으로 가고 있다. 넥슨게임즈 MX 스튜디오는 조직 재정비로 인해 고생해야 했고, 경찰 정보가 맞다면 내부 기밀 자료도 빼앗겼다. 박병림 대표를 비롯한 퇴사자들은 디나미스 원에서 이미지와 신용을 모두 잃었다. 

만약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관계로 이탈을 준비했다면, 그리고 블루 아카이브를 넘어 자신들만의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했다면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한국 서브컬처 게임계도 두 배 이상 풍성해지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지 않았을까. 

디나미스원은 설립 소식부터 일본 팬들에게 뜨거운 관심사였다. 그러나 누구보다 유리하게 시작할 수 있는 위치는 잘못된 계획과 행동으로 인해 날아갔다. 다른 개발자들의 독립 아이디어 발현 역시 위축될 위기에 처했다. 이런 대형 사태가 터지면 서브컬처 관련 투자도 한번 더 고려할 수밖에 없다. 

책임을 가져야 하는 위치였다. 법적 문제 이전에 인간과 인간 사이 신뢰는 지켜야 했다. 그 위치에서 저지르는 잘못된 이별은 본인과 주변뿐 아니라 업계 전체에 큰 손실을 미친다. 한국 서브컬처 팬들은 어쩌면, 하나의 거대한 가능성과 이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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