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아카이브'에서 독립... 유사성, 미숙 대응, 유저층에 악재까지
"어른, 책임과 의무, 그 너머에 있는 당신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블루 아카이브' 속 이야기는 누구의 마음을 향한 것이었을까.

첫 기억은 '큐라레: 마법도서관'이었다.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장수하지 못했지만, 모바일 서브컬처 태동기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게임이다. 스토리는 참신함과 정신나감이 스테레오 믹싱으로 어우러졌고, 캐릭터 개성에서는 광기가 흘러나왔다. 이 개발진들은 나중에 뭐라도 해내겠구나 생각한 계기였다.

그 꽃은 7년 뒤 '블루 아카이브'에서 활짝 피어났다. 큐라레 시절 김용하 PD와 그 사단은 결국 서브컬처 종주국 일본에서 한국 게임 중 역대 최대 팬덤을 만들었다. 2차 창작으로는 코믹마켓의 역사와 기록을 모두 갈아치웠다. 메인 시나리오 작가와 기획 PD의 성공 지분은 분명 컸다. 

그들이 넥슨게임즈를 떠나 독립 스튜디오 개발을 선언했을 때 당황스럽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재능 넘치는 인재들의 자유로운 창작에 기대가 샘솟았다. 큰 회사의 제약을 넘어 본인들이 꿈꾸던 창작에 뛰어든다면 그동안 본 적 없는 그림이 탄생하지 않을까 하고.

많은 유저들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X(트위터) 계정에 퇴사 인사를 남길 때, 전 세계의 수많은 팬들이 감사와 응원의 메시지를 멘션으로 전달했다. 또한 그런 마음이었기에, 창작물이 '레드 아카이브'라는 의혹이 확인되자 여론은 차갑게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 IP 상징성이라고 직접 말한 부분을 가져가시면...

신작 '프로젝트 KV'를 공개한 디나미스 원은 블루 아카이브 핵심 개발진이 독립해 차린 스튜디오다. 그리고, 정보가 풀릴수록 블루 아카이브와 지나치게 닮았다. 폰트와 문구 배치 등 기본적 이미지 연출부터 시작해 학원, 기차와 소녀, 학생끼리의 전쟁, 주인공이 선생(스승) 등 기본 세계관을 조금 변형한 듯하다.

모두의 의심이 확신으로 바뀐 지점은 모든 캐릭터 머리에 떠 있는 고리 '헤일로'였다. 블루 아카이브 설정의 핵심을 건드리는 동시에 IP 정체성으로 불린다. 프로젝트 KV는 '륜(고리)'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헤일로를 한자 문화권 언어로 번역하면 광륜이라 사실상 같은 의미다.

차이점도 있다. 그러나 신선한 특징이 아니라 부자연스러운 대칭이다. 기독교 모티브를 불교로, 학원을 학료로, 파란 색감을 붉게, 총을 도검으로, '청춘'을 '향수'로. 마치 완전히 같거나 완전히 정반대로 대비시킨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캐릭터 소개 이미지마저 탬플릿이 흡사하다. 프로젝트 KV(왼쪽)와 블루 아카이브(오른쪽)
캐릭터 소개 이미지마저 탬플릿이 흡사하다. 프로젝트 KV(왼쪽)와 블루 아카이브(오른쪽)

퇴사한 개발진이 모여 비슷한 게임을 만드는 사례는 해외도 흔하다. 하지만 실제 기획은 비슷할지언정, 신선한 부분을 최대한 먼저 공개해 차별화를 드러내는 것이 상식적이다. 이전 회사와 동료들을 향한 예의인 동시에, 업계 및 유저에게 첫 이미지를 어떻게 새기느냐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KV는 반대다. 극초기 정보부터 특정 대상을 노렸다고 느낄 정도로 블루 아카이브와 닮아 보이게 노출됐다. 진짜 차별점을 숨긴 채 의도한 것인지, 혹은 정말로 이것이 준비한 전부인지는 모른다. 문제는 어느 쪽이라고 해도 윤리적 비판은 반드시 따라온다는 것이다.

외주 작가들마저 블루 아카이브와 똑같이 맡기고 있다. 물론 작가들 잘못은 아니다
외주 작가들마저 블루 아카이브와 똑같이 맡기고 있다. 물론 작가들 잘못은 아니다

■ "2차 창작 전문가들 아니었어?"

코믹마켓 참여 문제도 당혹감을 키운다. 1일 정보공개에서 X와 영상을 통해 부스 참가를 알렸고, 약 이틀 뒤 논란이 불거졌다. 일본 유저들에게 사과문까지 작성했다. 당연히 기업 부스 참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서클(동인) 부스였다. 대놓고 규정 위반이었다.

법인을 세운 정식 업체가 코믹마켓에 부스를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업 부스로 참가해야 한다. 하지만 첫 공개에서 바로 알아보지 못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2차 창작 역사상 최고 신화를 기획했던 인력들이 당연한 룰을 어기고 서클 부스 참가를 공식으로 홍보했을 거라고 어떻게 상상이라도 할 수 있겠나.

후속 대처도 기묘하다. 기업 부스 참여를 추진하거나 그것이 어려우면 참여를 취소할 줄 알았는데, 서클 부스 참가 신청은 그대로 유지한다. 대신 "우리 기업과 무관한 일부 스태프의 동인 활동"이라고 선을 그었고, PV에서 부스 홍보 부분만 지운 뒤 다시 게재했다. 

하지만 너무나 유명해진 게임사 소속 창작자들이 참가 멤버고, 이미 기업과 연관성이 나타나버린 이상 코믹마켓에서 신청을 받아줄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는 의문이다. 또 순수하게 동인 참가자들의 마음이 움직여서 판매와 구매가 형성되는 2차 창작 세계에서 지금의 사건만으로도 시작부터 타격이 크다고 할 수 있다.

■ 서브컬처 고객에게서 '엔터테인먼트'가 무너지는 순간

서브컬처의 정의는 다양하지만, 그중 하나로 '2차원 엔터테인먼트'가 있다. 실존할 수 없는 캐릭터에 몰입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렇기에 상상력의 범위는 더욱 크다. 독특한 인물들의 서사와 메시지는 서브컬처만이 가지는 '낭만'이 되기도 한다.

반면, 프로젝트 KV의 행보는 지나치게 세속적이다. 

넥슨게임즈 퇴사 과정부터 석연치 않았다. 장기 휴가 후 고액 인센티브 수령, 퇴사와 신작 공개가 짧은 단위로 이어졌다. 블라인드에서는 자신들이 대우를 못 받았다며 퇴사 후 합류를 종용했다는 내부 개발자들의 증언이 빗발친다. 

디나미스 원과 넥슨게임즈 모두 이 건에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으나, 개인적으로 접촉한 주변 개발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할 때 대우를 제대로 못 받았다는 주장이 내부에서 나돌았다는 것은 사실로 확인된다. 공시 전까지 그 정도로 높은 상여금인 줄 아무도 몰랐다는 말 역시 사실에 가까워 보인다.

공시 기준, 퇴사한 두 명은 넥슨게임즈 박용현 대표보다도 많은 상여금을 수령했다
공시 기준, 퇴사한 두 명은 넥슨게임즈 박용현 대표보다도 많은 상여금을 수령했다

많은 인센티브를 받은 직후 회사를 떠나 새 작품을 만드는 것은 지탄을 받을 일까진 아니다. 그저 떠나보낸 쪽에서 섭섭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다만 그 신작이 이전 작품과 지나치게 흡사하다면, 굳이 그럴 필요 없는 부분까지 비슷하게 계승한 흔적이 보인다면 도의적으로 업계와 유저의 눈빛이 차가워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서브컬처에서 유저들에게 알려진 핵심 인력, 소위 '네임드 개발자'의 이미지는 매우 중요하다. 디렉터 망언 한 마디에 게임이 가장 민감하게 흔들리는 시장이다. 앞서 말했듯, 서브컬처도 엔터테인먼트의 감성을 상당수 지닌다. 창작자들을 향한 이미지가 망가지면, 그들의 작품도 온전히 몰입해서 즐기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즉, 디나미스 원의 초기 행보는 단순히 바깥에서의 낭만적 불평이 아니다. 철저하고 냉정한 '어른'의 시각에서도 자신들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악재다. 모든 엔터테인먼트에서 평가는 머리로 하지만, '덕질'은 가슴으로 한다. 그런데 첫 장벽이 너무 빠르게 박혀버린 것이다.

'블루 아카이브' 게임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CG
'블루 아카이브' 게임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CG

 

"책임을 지는 사람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었지요. 그때의 저는 알지 못했지만, 지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른, 책임과 의무, 그 너머에 있는 당신의 선택, 그것이 의미하는 바까지도."

블루 아카이브를 처음 시작할 때 어느 기차 안에서 듣게 되는 대사 중 하나다. 그리고 1부 최종장을 앞둔 4차 PV에서 같은 말이 나레이션으로 흘러나왔다. '블루 아카이브'가 담은 메시지를 함축한 문구라고 할 수 있다. 어른의 의미, 책임과 의무, 그리고 '선택'은 앞으로도 긴 시간 동안 팬들에게 회자될 키워드다.

프로젝트 KV도 '기차역'에서 눈을 뜨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선생님 대신 스승이라는 호칭을 듣고, 노스텔지어 활극이라는 이름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시대 배경이 조금 바뀌었을 뿐 블루 아카이브와 비슷한 감성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게임 바깥 서사가 이렇게 된 이상, 몰입과 낭만을 가지고 이 작품에 뛰어들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많을까.

프로젝트 KV가 반드시 어두운 결말이 되리라 장담할 수는 없다. 결과물이 중요한 시장이다. 이전 작업물을 뛰어넘는 환상적인 게임, 캐릭터와 스토리를 만들어낸다면 결국 부와 명성을 손에 쥘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한 사람의 업계인으로 축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미 좋은 선례로는 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KV는 올해 본격적인 프로젝트를 가동한다. 과연 이 선택은 바른 의미를 가졌을까. "책임은 내가 져야만 해"라고 말해주던 선생님의 대사는 증명될 수 있을까. 적어도, 수많은 팬이 감동을 느끼고 치유받은 그 지점들이 변해버린 '색채'로 물들진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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