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채널 '던플릭스', '던.잘.알' 등 스토리 소개 영상 제작 중
쉽게 소비되는 스토리 복기, 추가 콘텐츠 위한 지반 다지기 작업 나서
[게임플] 넥슨의 ‘던전앤파이터(이하 던파)’가 최근 게임의 세계관과 세세한 이야기를 전하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게임 스토리 기반 콘텐츠가 꾸준한 관심을 받는 지금, 던파는 왜 굳이 직접 나서서 이런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일까?
지난 11일, 던파의 스토리 채널 ‘던플릭스’가 세상에 공개됐다. 던파와 대표적인 OTT 서비스 ‘넷플릭스’를 합친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던파의 스토리와 관련된 다양한 영상 콘텐츠를 제공하는 채널이다.
사실 던파는 이전부터 꾸준하게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를 제작해 왔다. 인기 TV 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의 형식을 빌려 던파의 스토리를 소개하는 ‘던파 잘 알려드릴게(이하 던.잘.알)’을 비롯해 게임 내 캐릭터들의 설정을 활용한 오디오북 등을 선보인 바 있다.
개발사가 직접 나서서 게임의 스토리를 정리하고 소개하는 던파의 이와 같은 행보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상당히 이례적이다. 전 세계에서 셀 수 없이 많은 게임이 출시되어 서비스되고 있지만 이와 같은 행보를 걷는 게임은 일부에 달한다. 그도 그럴 것이 스토리 역시 하나의 중심 콘텐츠로서 게임을 구매하는 이유가 되는 패키지 게임에선 이와 같은 행보를 기대하기 어렵다. 소위 ‘유튜브 에디션’으로 게임이 소비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미 많은 게임이 콘텐츠 제작을 제한하고 있지 않던가.
결국 이와 같은 행보를 걸을 수 있는 것은 라이브 서비스 중인 온라인 게임인데, 이들 역시 이런 선택을 하기는 어렵다. 이들에게도 스토리는 유저들의 게임플레이를 유도하는 장치다. 특히 ‘메이플스토리’나 ‘로스트아크’ 같은 국내 유명 MMORPG는 게임의 메인 스토리를 층층이 위로 쌓아 스토리를 향유하고자 하는 유저들이 일정 수준까지 성장하도록 유도한다. 그 수준에 달하지 못한 이들에겐 게임의 스토리는 남 얘기일 뿐이다.
그렇기에 유튜브에선 스토리 관련 콘텐츠가 “차고 넘친다.” 게임의 스토리 소개를 전문으로 하는 채널의 구독자 수는 100만 명에 육박하며, 간단한 검색만으로도 각종 게임의 스토리 정리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누가 시키지 않아도 유저들이 직접 나서서 게임의 스토리를 소개하고 있으니, 게임사가 굳이 나설 이유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던파는 직접 나서서 스토리를 유저들에게 소개한다. 그런데 이런 콘텐츠가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던.잘.알 콘텐츠만 봐도 기획 단계부터 시작해 영상의 촬영 장소와 출연진 섭외, 영상 촬영 및 편집에 이르기까지 던파가 콘텐츠 제작에 상당한 비용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물어야 하는 것은 그 이유다. 감히 추측해 보자면, 첫 번째 이유는 “사람들이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아는 정보를 굳이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전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게임을 접하지 않은 유저들은 게임의 스토리를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문제는 게임을 하고 있는 유저들 중에도 스토리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는 판단이 내부적으로 있었을 것이라는 게 기자의 추측이다.
온라인 게임의 인게임 스크립트가 주는 무게감은 패키지 게임의 그것과 다소 차이가 있다. 돈을 주고 구매하는 패키지 게임에선 스크립트 역시 돈을 주고 구매한 상품이지만, 누구나 무료로 접근할 수 있는 부분유료화 온라인 게임에선 중심 콘텐츠에 덧붙은 부산물처럼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개발자가 열심히 준비한 스크립트가 ESC 혹은 스페이스 바 입력 한 번에 스치듯 사라지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던파 내 세계 ‘아라드’는 18년의 서비스 기간 동안 세계관 전체를 뒤흔드는 대사건들을 수 차례 겪여왔다. 기존 세계관을 완전히 바꿔버린 ‘대전이’ 업데이트, 그리고 이를 모두 평행 세계의 사건으로 돌리고 기존의 세계관을 원복하는 ‘오리진’ 업데이트 등으로 세계관과 설정이 바뀌면서 경험의 간극이 발생했다. 가뜩이나 스토리를 놓치고 지나가는 경우도 많은데, 세계관 변화로 혼동이 발생하니 결국 게임사가 팔을 걷고 나서게 됐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어쩌면 새로운 흙을 쌓기 위해 지반(地盤)을 다지는 작업 과정일지도 모른다. 이 위에 쌓일 흙은 다가오는 ‘선계’와 그 이후에 이어질 콘텐츠일 수도, 던파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게임일 수도, 혹은 둘 다일 수도 있다. 이렇게 새로운 콘텐츠를 쌓기 위해선 기존의 세계관이 탄탄한 토대가 되어줘야 한다. 다소 부족하게 확립된 세계관 위에서 콘텐츠를 쌓고 IP를 확장했다가 설정이 붕괴됐다는 비판을 받은 사례는 두말할 것도 없이 많고, 이들을 답습할 이유는 없다.
실제로 최근 개발사 네오플의 채용 공고에서 ‘AK’과 ‘오버킬’이라는 이름이 눈에 띈다. 전자는 ‘아라드 크로니클: 카잔(이하 아라드 크로니클)’, 후자는 ‘프로젝트 오버킬’로 두 게임 모두 던파의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네오플의 신작이다. 아라드 크로니클은 사도 ‘오즈마’와 그의 벗 ‘카잔’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으며, 프로젝트 오버킬은 작중 인물들은 동일하지만 기존 던파와는 다른 스토리라인을 선보일 것으로 보인다. 즉 현재 던파의 세계관 정립 콘텐츠는 곧 출시될 게임의 내러티브를 강화하면서, 동시에 이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는 데 사용할 수 있음을 고려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정리하자면, 던파의 이번 행보는 온라인 게임 특성상 쉽게 소비되는 인게임 스크립트를 복기시키는 작업이면서 동시에 이후 추가될 콘텐츠를 위해 지반을 다지는 작업으로 보인다. 이번 던파의 시도는 18년이라는 서비스 동안 쌓인 방대한 이야기들을 일말의 오해와 추측 없이 유저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이번 시도를 바탕으로 보다 많은 게임들이 자신만의 연대기를 차곡차곡 쌓아가 유저들에게 선보일 수 있기를 한 사람의 게이머로서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