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의 문화 콘텐츠 소비를 상징하는 플레이 패턴
[게임플] "방치형 게임, 그거 영세 개발사나 만드는 것 아닌가?"
이렇게 되물어오던 시절이 있었다. 실제로 그랬다. 초창기 방치형은 말 그대로 가볍게 만들어서 부담 없이 즐기는 캐주얼 게임이었다. 그럴싸한 그래픽이나 볼륨이 없더라도, 무료로 얼마나 편하고 빠르게 성장하느냐가 중요했다. 기업 입장에서 기대치도 높지 않았다.
흐름은 2020년경 조금씩 바뀌었다. 한국과 중국에서 비슷한 시기 일어난 변화다. 릴리스게임즈의 'AFK 아레나' 등 몇몇 중국 게임이 대형 방치 게임으로 글로벌에서 성과를 입증한 사례다.
국내에서 빠르게 참여한 곳은 그라비티와 네오위즈다. 그라비티는 기둥 IP '라그나로크'를 이용한 방치형 게임을 활발하게 내놓았고, 네오위즈는 '기타소녀'나 '고양이와 스프' 등 힐링 웰메이드 방치형을 자사 라인업으로 구성했다.
특히 고양이와 스프는 누적 다운로드 4천만 돌파라는 세계적인 '대박'을 쳤다. '크루세이더 퀘스트'로 유명한 로드컴플릿의 '레전드 오브 슬라임'은 1년도 되지 않아 7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
유저층이 더욱 넓어졌고, 실적 기대도 늘었다. 기업 규모를 막론하고 방치형은 매력적인 카드가 됐다. 넷마블은 자사 대표 IP '세븐나이츠'를 9월경 방치형으로 내놓는다. 게임명도 '세븐나이츠 키우기', 매우 직관적이다. 성장, 수집, 전략을 최소한의 한 손가락 조작으로 해결한다.
지난 12일, 원스토어에서는 반가운 게임사가 신작 베타테스트를 시작했다. 엠게임의 '퀸즈나이츠' 역시 방치형이다. MMORPG를 떠올리게 하는 UI 구성에 길드 커뮤니티도 존재하되, 장르 특유의 가벼운 성장은 유지한다. 방치형의 세계도 다양한 모습으로 뻗어나가고 있음을 체감하는 계기였다.
방치형은 장르보다 플레이 패턴을 정의하는 말에 가깝다. 방치형 RPG도, 방치형 시뮬레이션도, 심지어 방치형 RTS도 가능하다. 하루에 한두 번 접속해 관리와 설정만 만져두고 끄면,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재화를 얻고 성장하는 현대인의 패턴과 맞는다.
더 나아가 '방치'의 형태 자체가 게임의 콘텐츠 중 하나로 자리잡는다. 기존의 주류 장르에서도 방치형의 시스템을 따와 편의성을 갖추는 일이 잦다. '승리의 여신: 니케'나 '에버소울' 등 수집형 RPG들이 레벨 싱크로를 통해 새 캐릭터를 다시 키우는 수고를 없앴다. 접속하지 않을 때도 보상이 쌓이는 방식도 사용한다.
모바일 MMORPG에서는 '무접속 플레이'도 정석이 되어간다. 사냥 장소만 정해두면 하루에 일정 시간을 캐릭터가 스스로 플레이하도록 만드는 것. 불필요한 반복 플레이를 줄이고, 직접 조작해야 하는 시간을 줄이는 방향이 트렌드로 잡혔다.
닭이 먼저일까, 달걀이 먼저일까. 유저의 생활 패턴에 따라 방치형이 스며들자, 그에 맞춰서 플레이 패턴은 더욱 방치에 맞게 변화한다. 게임이 아닌 일을 병행하면서 동시에 여러 게임을 붙잡는 것은 현대 게이머에게 점점 흔해진다.
방치형은 게임과 다른 일상 콘텐츠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흐름 중 하나다.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등 OTT 서비스, 혹은 유튜브를 시청하면서 게임을 병행하는 유저가 늘었다. '넷플릭스용 게임'이라는 명칭이 탄생할 정도다. 시간은 한정되고 즐길 콘텐츠는 많아진 일상을 반영한다.
효율을 따지는 '멀티태스킹 게임 관리'가 늘어나면서, 트렌드를 포착한 게임들은 플레이의 집중도와 피로를 낮추기 시작했다. 바로 방치형 시스템이 점차 애용되는 이유다. 방치형 장르 역시 대중적인 유저들의 주요 선택사항으로 자리잡았다.
13일 기준 구글 인기 다운로드 순위 최상위에 '좀비킬러 키우기', '도깨비 키우기', '헌터 키우기' 등 방치형 성장 게임이 가득하다. '달토끼 키우기' 같은 전통의 강호도 여전히 한 자리를 얻고 있다. 매출 순위에서도 인기 방치형 게임은 자주 순위권에 이름을 보인다. 더 이상 소규모 게임, 비주류 게임이 아니다.
방치형 게임의 깊이는 대작 게임보다 얕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볍다고 해서 반드시 수준이 낮거나 추천하지 말아야 할 게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모두가 몇 시간 내내 게임 하나에 집중적으로 몰입할 수는 없다. 많은 이들은 적은 시간으로 성장의 기쁨을 누리려 한다. 그런 즐거움을 주는 것 또한 게임이다. 마치 뉴스 기사를 둘러보면서 유튜브를 동시에 틀어놓는 것처럼, 큰 수고를 들이지 않고 내가 해낸 것과 같은 성취감을 주는 것도 이런 게임의 미덕 중 하나다.
방치형의 문법은 이미 현대 문화 콘텐츠에서 일상이 됐다. 앞으로 더 많은 개발사에서 방치와 게임의 조합이 연구될 것이다. 방치를 토대로 자신들만의 장르를 만들어내는 융합 과정은 이제 시작일지도 모른다. 연구 끝에 어떤 새로운 게임성이 탄생할지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이 글을 쓰는 도중에도 퀸즈나이츠 베타 버전이 눈앞의 스마트폰에서 사냥을 계속하고 있다. 퇴근하고 나면 PS5의 전원을 켤 것이다. 무거움과 가벼움은 공존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지금 세상만큼이나, 게임 속 세상은 최대한 많은 즐거움을 동시에 누리도록 설계되고 있다.
관련기사
- "하이퀄리티 방치형이 온다" 엠게임 ‘퀸즈나이츠’ 사전예약
- 더 가볍게, 편하게... '방치형'은 어떻게 게임계 주류가 됐나
- 그라비티 부스, ‘라그나로크'가 '웰메이드 인디'를 만나다
- '에버소울' 시스템을 보면 '서브컬처 트렌드'가 읽힌다
- 피파 차기작 'EA FC24', 여성 선수가 '홀란드'-'음바페'와 나란히 뛴다
- '승리의 여신: 니케', 스페셜 아레나 문제 "이렇게 개선됩니다"
- "수치심이 몰려온다..." 화제의 게임 '맞춤법 용사' 속 의무론-공리주의
- '가장 오래된 공포' 러브크래프트의 세계는 어떻게 게임이 됐나
- [인터뷰] 퀸즈나이츠 "방치형 본질은? 무과금도 풍성한 성장 체감"
- [인터뷰] 세븐나이츠 키우기 "대표 IP, 대중적 트렌드와 만났다"
- 이제 '방치형'으로 세나 하자... '세븐나이츠 키우기' 9월 6일 출시
- 'AFK: 새로운 여정' 연착륙?... MAU 22만 명 감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