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공포를 눈으로 목격하고 싶다면 '스콘'과 '쇼어'
러브크래프트 세계관을 이야기로 녹인 '암네시아'와 '크툴루의 부름'

[게임플] "인간이 느끼는 가장 강력하고 오래된 감정은 공포이다. 또한 인간이 느끼는 가장 강력하고 오래된 공포는,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이다."

후대 호러 장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H.P. 러브크래프트(이하 러브크래프트)’는 특이하게 그 이름 자체로 장르가 되는 인물이다. 해외에서는 크툴루 신화를 포함한 장르의 색채를 띠는 작품들을 ‘러브크래프트류(Lovecraftian)’라고 부른다.

크툴루 신화가 러브크래프트 사후 후대 작가들로 정립된 만큼 일반적으로 ‘러브크래프류’는 크툴루 신화보다는 조금 더 넓은 의미로 사용된다. 하지만 두 개를 정확히 나눠 서로 구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성경으로 비유하자면 러브크래프트를 ‘모세’로 후대 작가들은 그의 뒤를 이어 주석을 단 선지자들로 볼 수 있다. 일부 극단주의자들은 두 개를 분리하여 다른 장르로 보려고 하지만 대부분 실패한다. 현대에 와서 성경을 구약과 신약으로 따로 나눠서 볼 수 없듯이 말이다.

많은 매체에서 이미 시도한 것처럼 게임계에도 수많은 ‘러프크래프류’ 게임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스스로 러브크래프트 장르를 표방하기도 하고 유저들에 의해 러브크래프트 장르라 일컬어지기도 한다. 의도가 어쨌든 그들은 대부분 러브크래프트에게 영향을 받았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러브크래프트 장르를 반으로 뚝 잘라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많은 작품이 대부분 두 가지 형식을 기준으로 러브크래프트의 세계를 표현하려 한다. 바로 시각적 구현과 내러티브 구현이다. 

이 역시 임의대로 구분한 것이지 이분법적으로 나누기는 어렵다. 러브크래프트를 포함해 많은 작가가 그랬듯 이미지와 이야기 전반에 미지의 공포를 구현하려 했기 때문이다.

 

■ 미지의 공포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스콘'과 '쇼어'

2022년 10월 출시한 ‘스콘’은 프로토타입 단계에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2016년 공개된 첫 트레일러로부터 6년 뒤 내놓은 스콘은 팬들에게 'H.R. 기거'와 '즈지스와프 벡신스키'의 작품을 토대로한 아트워크로 꽤 좋은 평가를 받았다.

전투와 퍼즐은 최악이라는 평가를 피할 수 없었지만, 1인칭으로 바라보는 악몽 같은 세계만으로도 훌륭한 게임으로 기록됐다.

게임은 상당히 불친절하며 대사도 어떤 맥락도 없이 플레이어를 내팽개친 뒤 움직이고 상호작용하길 기대하고 있다. 이런 불친절함 또한 의도된 장르적 맥락이나 게임으로 즐기기엔 부족하다는 평가다.

이야기 또한 불친절하다. 수 많은 해석으로 유저들의 흥미를 돋운다는 평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설득력이 높은 이야기는 아니다. ‘스콘 디럭스 에디션’은 해당 장르의 많은 팬에게 여전히 회자되는 아트워크로 가득하다. 장르 팬이라면 소장 가치가 있다.

스콘이 미지의 우주와 황폐한 세계를 보여준다면 ‘쇼어’는 미지의 바다를 배경으로 한다. 유저는 이곳에서 실종된 딸을 찾는 주인공이 된다. 과정에서 압도적이고 거대한 우주적 존재는 물론 여러 크리쳐들과 대면하게 된다.

쇼어는 크툴루 신화의 이종족들 표현을 중점에 둔 게임이다. 바다와 미지의 섬뿐만 아니라 우주와 지하 세계에 대한 표현도 섬세하다.

스콘과 마찬가지의 이유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는데, 퍼즐과 탐험의 과정 간 힌트를 거의 제공하지 않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게임 중반으로 갈수록 이는 심해진다.

무력한 주인공과 불친절한 전투 방식으로 유저는 잦은 죽음을 경험해야 한다. 로그라이크 장르가 아닌 공포 장르에서 이런 과도한 재시작은 그다지 환영 받지 못한다. 괴물이 등장할 때마다 점프 스케어를 유발하는 연출 방식 또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비주얼 구현만큼은 스콘과 마찬가지로 훌륭하다고 평가받는다. 압도적인 존재들의 등장은 가히 황홀하며 경외심을 일으킨다. 2022년 VR로도 출시됐으나 특유의 게임성에는 변함이 없어 유저들에게 외면받았다.

 

■ 이야기로 풀어낸 '크툴루의 부름: 지구의 음지', '암네시아: 더 다크 디센트'

2005년 출시된 ‘크툴루의 부름: 지구의 음지’는 러브크래프트류 FPS 어드벤쳐 게임의 원조 격에 가깝다. 영국의 스튜디오 Headfirst Productions이 개발을 맡고 베데스다 스튜디오가 퍼블리싱했다.

러브크래프트의 ‘인스머스의 그림자’를 재해석한 게임답게 러브크래프트 장르의 내러티브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탐정 '잭 월터스'는 인스머스의 이교도 건물에 들어가 알 수 없는 존재들을 보게 되고 기억을 잃는다. 이후 그는 아캄 정신병원에서 6년간 치료 생활을 마치고 다시 탐정으로 복귀한다. 게임은 이후 벌어지는 기괴한 일들을 그리고 있다.

굉장히 하드코어한 난이도를 자랑한다. 특유의 조작감은 물론 의외의 복병인 퍼즐들과 긴 텍스트로 유저를 괴롭힌다. 캐릭터 상태를 알 수 있는 UI는 전무하며 조준점이 없어 가늠쇠 조준이 필수인 부분 등 불편함 투성이다.

2005년 당시의 고전적인 그래픽과 표현력으로 디스토피아적 세계가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압도적인 존재나 기괴한 몬스터 표현은 거의 없으며 그래픽의 한계로 이종족의 모습이 꽤 우스꽝스럽게 그려지고 있다. 

주인공 잭 월터스의 ‘기억상실증(Amnesia)’과 이종족, 가족과 혈연에 대한 이야기들이 등장하며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공포를 잘 표현했다. 러브크래프트 작품에 대한 애정이 있는 유저에겐 꽤 흥미로운 작품이 될 것이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암네시아: 더 다크 디센트(이하 암네시아)’에도 펼쳐진다. 2010년 출시돼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끈 암네시아는 게임성은 물론 이야기적인 측면에서도 호평받았다. 출시 13년이 지난 지금도 공포 게임 시리즈 중 가장 자주 언급되는 게임으로 손꼽힌다.

‘암네시아’는 의도적으로 무력감을 느끼게 만들고 저항할 수 없는 공포를 선사한다. 미지의 존재의 공포를 시각적으로 크게 구현하지 않으면서 표현되지 않는 것들로 공포를 유발하고 있어 러브크래프트 장르의 핵심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게임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또한 이야기의 중심으로 다가갈수록 불가사의한 힘, 종의 기원과 단절 등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 러브크래프트 장르를 충실히 따라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 러브크래프트와 인디게임 ‘Iron Lung’, ‘I live under your house’

영화에서 호러 장르가 훌륭한 감독들의 초기 등용문이 되듯 인디 게임 개발자들도 비교적 개발 환경이 편한 호러 게임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2022년 출시된 Iron Lung은 David Szymanski라는 한 인디 개발자가 만든 게임이다. 현재 스팀 평가 6,000개가 넘으며 매우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별과 행성들이 사라진 미래, 우주에는 소행성과 생명이 없는 달들만 남았다. 우주 정거장과 우주선에 남은 자들만 살아남은 인류는 새로운 자원을 찾고 있다. 유저는 피로 가득 찬 달에서 좁은 잠수함 ‘아이언 렁’에 탄 주인공을 플레이하게 된다. 좁은 잠수함에서 해저를 탐험하는 일을 맡은 주인공은 이번 임무를 무사히 마치면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다.

게임은 단순한 조작만을 요구하며 낡고 좁은 잠수정 내에서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한다. 유저는 사진 촬영만으로 외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폐쇄적인 상황에 내몰린 주인공을 조작하는 유저는 녹슨 잠수함이 언제 부서질지 모른다는 공포와 괴물의 습격을 걱정하며 두려움에 떨게 된다.

'암네시아'와 마찬가지로 특별한 시각적 구현 없이도 미지의 공포, 무력감, 소외, 단절들을 잘 표현했다. 게임은 1시간 내외의 볼륨을 제공하며 짧은 시간 동안 호러 장르의 정수를 제공한다.

스팀에 등록된 또 다른 인디 게임 ‘I live under your house’는 2D 비주얼 노벨과 3D 1인칭 두 가지 모델을 결합했다. 유저는 게임을 크리쳐의 시점에서 진행하게 되며 등장하는 여성과 사랑에 빠진다. 주인공은 인간과 괴물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하면서 러브크래프트 장르의 이종족 교배라는 주제를 뒤섞고 있어 흥미롭다. 게임은 30분 내외의 플레이 타임을 제공하며 호러 장르라기보다는 내러티브에 집중한 비쥬얼 노벨에 가깝다. 역시 소외와 단절에 대한 이야기가 핵심 소재로 다뤄진다.

한국어 지원을 하지 않아 긴 영어 텍스트의 압박이 심하다. 직선적인 플레이를 제공하며 즈지스와프 벡신스키에게 영감을 받은 아트워크들로 가득 차 있다.

이 외에도 러브크래프트에 영향을 받은 수많은 게임들이 스팀 페이지에 가득하다. 이토 준지와 러브크래프트를 절묘히 결합한 인디게임 '월드 오브 호러' 또한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소울 류 걸작 '블러드본' 역시 러브크래프트에 대한 헌사로 가득한 게임으로 평가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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