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곡의 성격을 초월한 오케스트라 편곡... 전율과 박수로 화답
유저들의 추억을 향한 '존중', 감동으로 되돌아오다
[게임플] 20년을 뛰어넘어 나르비크의 파도 소리를 다시 들었다.
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로비에 커다란 판넬이 세워졌다. '테일즈위버 디 오케스트라', 20주년을 맞이한 '테일즈위버'의 첫 단독 오케스트라 공연이었다.
이제는 게임음악 마니아들에게 친숙한 안두현 지휘자가 지휘봉을 잡았고, 장르를 넘나드는 공연으로 호평을 받아온 '아르츠심포니오케스트라'가 60인조 편성의 풀 오케스트라 연주를 맡았다. 기타와 같이 기존 클래식 공연에서 보기 어려운 세션도 함께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테일즈위버는 두 가지 의미에서 깊은 울림을 가진 게임이다. MMORPG 성장기, 모험의 낭만과 이야기를 내세우면서 많은 게이머의 어린 시절 추억을 물들였다. 또, 훌륭한 음악으로 아직까지도 곳곳에서 BGM이 들려오며 감동을 만들어내는 게임이기도 하다.
당연히, '전현직 모험가'들은 앞다투어 공연에 모였다. 2천 석이 넘는 좌석은 매진된 지 오래였다. 관람객들이 로비 판넬에 줄지어 서서 기념 사진을 찍었고, 오후 5시 모두가 질서정연하게 자리에 앉아 모험의 첫 음계를 기다렸다.
■ 오케스트라 선율 속에서 들려온 '나르비크의 밤'
공연은 1부와 2부로 나뉘어 총 100분간 이어졌으며, 앵콜 연주가 추가되면서 실제 시간은 더욱 길어졌다. 1부는 '여정의 시작'과 '모험'을 테마로 모두의 추억을 나누는 자리, 2부는 지금의 테일즈위버와 모험가들이 서 있는 자리를 표현했다.
첫 곡은 당연히 'Tales are about to be weaved', 테일즈위버의 로그인 테마다. 첫 여정을 시작한 모든 이들이 가장 먼저 들었을 곡이다. 짧은 연주 뒤 이어진 에피소드1 테마곡 '발현(Apparition)'은 공연 초반부터 분위기를 휘어잡았다.
'발현'은 신비롭고 잔잔한 피아노 연주로 초반을 장식하고, 급반전하면서 모험의 시작을 힘차게 알리는 전자음이 매력적인 곡이다. 그 후반부에서 휘몰아치는 오케스트라 편곡은 상상을 뛰어넘는 짜릿한 기분을 전달했다.
1부는 감성의 극치를 담은 'The Good Old Days', 원곡 이상으로 행복감을 주는 'Money, Money, Money' 등 올드 유저들에게 친숙한 곡을 재현하는 느낌으로 진행됐다. 그 가운데서도 모두가 아는 명곡 'Second Run'은 심혈을 기울여 편곡했다는 것이 짐작될 만큼 강렬한 화음으로 완성됐다.
1부 후반 'Good Evening, Narvik'에서 감성은 최고조에 달했다. 테일즈위버를 대표하는 도시 나르비크의 밤을 수놓는 곡이다. 언제 들어도 감성을 울리는 피아노 선율에, 인게임 밤 시간 나르비크에서 들려온 파도 소리가 연주와 함께 들려왔다. 유저의 추억 키워드를 세심하게 살피고 끄집어낸 이 연출은 가슴 먹먹한 감동으로 되돌아왔다.
■ 테일즈위버의 현재, 오케스트라의 충격과 함께
1부가 원곡들의 느낌을 최대한 살렸다면, 2부는 오케스트라 편곡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굵직한 대표곡들인 'Third Run'과 'Reminiscence'로 시작한 연주는 1부보다 더욱 격정적인 협주를 이뤘다.
테일즈위버 대표 캐릭터들, 그리고 지역들을 훑어올라가는 가운데 기대 이상으로 귀에 스며든 선곡들도 있었다. 티치엘 시크릿 챕터 테마곡인 'Fortuna Eclipse'가 예시 중 하나였다. 잔잔하고 조금 슬프던 곡이 처절한 관현악으로 새로 소화되면서 상상하지 못했을 만큼의 환상적인 편곡이 만들어졌다.
세트리스트를 보며 개인적 기대를 가진 곡 중 하나는 리체 프롤로그 챕터 테마 'Adenium'이었다. 비교적 최근 곡이라 대중적인 인지도는 다소 적지만,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강렬한 기승전결로 평가가 높다. 이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오케스트라의 웅장함이 더해지면서 흡족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밖에 고전적인 편곡으로 정통 판타지 감성을 생생히 전달한 'Evergreen Haven'도 인상적이었고, 바다 주변에서 자주 들리던 'Fortune Message'는 밝고 경쾌한 모험 분위기를 최대한 살렸다. 그와 동시에 이상하게 가슴 한 켠이 찡해지기도 했다. 20년 뒤에 다시 들려오는 모험의 시작은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든다.
■ 유쾌하고 신나는 곡인데, 가슴 한 켠이 먹먹해지는 기분
곡 연주를 마칠 때마다 힘찬 박수가 쏟아졌고, 마지막 곡이 끝난 뒤 안두현 지휘자와 연주자들이 차례대로 인사할 때 박수와 환호는 절정에 달했다. 안두현 지휘자는 "유저분들이 기억하시는 컴퓨터 음악의 빠른 템포를 최대한 재현해드리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며 연주자들에게 공을 돌렸다.
앵콜곡은 두 곡이었다. 하나는 이미 연주한 곡 'Reminiscence', 마지막 하나는 예고에 없었던 곡이었다. 나르비크 낮 시간 테마곡인 'MOTIVITY'가 경쾌한 협주로 울려퍼졌다. 가장 많은 추억이 깃든 나르비크의 밤과 낮이 연결되면서 마무리의 감동은 더욱 커졌다.
다양한 세션이 자기 자리에서 완벽한 연주를 해냈지만, 지금껏 들어본 오케스트라 중 피아노의 존재감이 가장 압도적이었다. 테일즈위버 곡들의 정체성을 담은 악기였다. 잘개 쪼개진 원곡들의 빠른 백그라운드 사운드를 구현해낸 정성이 엿보였다.
■ 원작, 원곡, 그리고 모험가들을 향한 존중을 담아
원작 소설 '룬의 아이들'을 향한 헌정도 있었다. 1,2부 엔딩은 'Prelude~Blooded', 'Nocturn For Eltibo'가 장식했다. 각각 '룬의 아이들 블러디드(3부)' 헌정곡, 렘므 왕국 수도 엘티보의 테마곡이었다. 그 시절 함께 모험했던, 지금도 꿈을 함께 꾸는 모험가들을 위한 존중도 깊은 여운으로 남았다.
단순히 추억의 곡 재현에 의존했다면 이 정도의 만족감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2부를 중심으로 오케스트라로서의 완성도가 절정에 달했고, 테일즈위버 역사 중후반에 등장한 매력적 곡들도 자리를 빛냈다. 2003년의 시간을 2023년으로 끌어올리고,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함께 들려주는 시간이었다.
'테일즈위버 디 오케스트라'는 성원에 힘입어 6월 6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앙코르 공연을 실시한다. 테일즈위버 세계에 한 번이라도 빠져본 적이 있는 유저라면, 혹은 OST에 깊은 인상을 가져본 리스너라면 후회하지 않을 100분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