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소녀 루루핑'과 '언커버 더 스모킹 건'을 탄생시킨 AI 철학
"AI 게임은 만능이 아닙니다. 점점 책을 읽지 않는 시대지만, AI를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오히려 책을 읽어야 하는 시대입니다."
2025년 넥슨 개발자 컨퍼런스(NDC 25) 2일차 세션에서, 최근 가장 뜨거운 AI 게임 개발사인 크래프톤 산하 렐루게임즈의 개발 철학이 펼쳐졌다.
렐루게임즈 한규선 PD는 'AI가 게임의 핵심 재미가 될 수 있을까?'를 주제로 강연을 실시했다. 크래프톤에서 AI 기반 게임 개발 O2팀을 이끌었으며, 현재 렐루게임즈에서 프로듀서, 시나리오 작가, 음악감독으로 일하며 새로운 게임 형태를 탐구하는 인물이다.
사명인 '렐루'의 뜻은 함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렐루 함수는 마이너스를 0으로 치환하는 특징을 가지며, 실패패 흡수해서 우상향하고 성공을 향해 나아간다는 비전을 담는다. 한 PD는 AI에서 접한 시도와 실패 경험을 바탕으로 어떻게 우상향에 성공했는지 경험을 공유했다.
렐루게임즈는 크래프톤 산하 '스페셜 프로젝트2'라는 조직에서 시작됐다. 프로젝트의 기본적인 2개 룰이 있었다. 핵심 재미가 딥러닝에서 나올 것, 딥러닝이 없으면 안 되는 게임이어야 할 것. 지금도 이 2개 룰은 지키고자 하는 핵심 가치다.
가장 먼저 접근한 방식은 입력도구 변화였다. AI를 통해 바꾼다면 새로운 경험이 될 거라 생각했다. 손가락 제스처를 이용한 입력을 넘어 한 번 제스처에 여러 의미를 담을 수 있지 않을까 했다. 비록 피로감과 유저 학습 해결에 많은 코스트가 들어 포기했지만 "앞으로 가능성이 있는 분야"라고 해석했다.
다음은 한 번의 음성에 여러 의미 담기였다. 음성으로 어디에 무슨 마법을 쓰라고 한 마디 말만 하면 그대로 발동되는 식이다. '워케스트라'라는 게임을 만들어 데모를 공개했는데, 음성인식을 향한 생소함과 짧게 자주 명령을 내리는 피로감이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생각보다 키보드 마우스에 친숙하다.
하지만, 이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PD가 새로운 제안을 했다. 한 PD는 "프로토타입을 발표하던 날 기억이 생생하다"고 회고했다. 발표 피드백으로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는다', '자극을 잊을 수 없다' 등이 나왔다. 바로 '마법소녀 카와이 러블리 즈큥도큥 바큥부큥 루루핑'이었다.
대머리 김부장이 마법소녀가 되어 주문을 외우며 싸우는 게임이다. PvP에서는 진심을 측정하는 시스템이 있어 다른 유저와 대결이 가능하다. '루루핑'은 결국 작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컨트롤러의 피로감을 거대한 도파민이 집어삼키고, 음성으로 하는 게임 중 마법소녀 소재가 가장 자연스러웠던 점이 주효했다.
다음은 게임에서 대화를 나누는 법을 고민했다. 우리는 게임 속 대화를 정해진 선택지 속에서 고른다. 하지만 NPC와 자유로운 대화가 가능하면 어떨까. 이 상상을 바탕으로 초기 '위시톡'이라는 게임을 만들었다.
플레이하면서 의문이 들었다. "근본적으로 왜 대화를 해야 할까, 또 무엇을 대화해야 할까"가 그것.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 '언커버 더 스모킹 건'이었다. 살인 현장에서 결정적 증거와 증언을 찾아내는 게임이다.
선택지는 없다. 아주 많은 증거를 살펴보면 하나같이 미완성이다. 직접 NPC에게 비어 있는 것을 질문한다. 사건과 관련 있는 질문은 예측이 가능하다. 다만 사건에 관련 없는 질문이 개발에서 문제였다. 유저가 뭘 물어볼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대응하기 어렵다.
렐루게임즈는 이것을 '할루시네이션(환각)' 개념으로 풀었다. AI에게 그럴 듯한 질문을 했는데 터무니없는 답을 내놓을 경우를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잘 활용하면, 사건과 무관한 정보를 자유롭게 나눌 수 있게 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내가 탐정이고 용의자와 대화하는데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알 수 없는 대화를 계속한다면 사건은 미궁 속에 빠진다. 사건과 관련 있거나 없는 정보가 무엇인지 유저는 알 수 없다. 그때 중요한 것이 태그다.
예를 들어 유저가 음성 복제 모델이 있냐고 물었을 때, 바로 이 태그를 인식해 의도한 대로 답변을 제공하고 중요한 것이 나왔다는 실마리를 유저가 찾도록 한다. 이런 플레이를 반복하면 로봇이 자백하는 일도 가능하다.
내러티브적으로 해야 할 과제와 질문을 던지고, 디자인 면으로는 자연스럽게 궁금증이 생기도록 한다. 결국 유저가 대화 소재를 찾고 필요성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요즘 렐루게임즈의 고민은 '사람은 어떻게 행동하는가', 그리고 'AI가 사람을 흉내낸다면 어떤 느낌일까'다. 이 고민을 반영해 개발 중인 신작이 '미메시스'다.
미메시스는 4명 파티가 미지의 공간을 탐험하는 게임이다. 그런데 동료 사이에 사람처럼 행동하다 나를 죽이는 미메시스가 섞여 있다. 내 동료인지 적인지 분간이 되지 않아 소름 돋을 때가 있고, 서로를 의심하는 상황이 공포감을 주기도 한다. 공포 코미디 협동 서바이벌 장르로 올해 3분기 출시 예정이며, 현재 데모 플레이가 가능하다.
또다른 신작은 '스케빈저 톰'이다. 오염된 세계 속에서 눈을 뜬 주인공이 지상을 탐험하고 생존하는 크래프팅 탐사 게임이다. 무한한 공간을 탐험하는 경험을 주는 것이 목표다. 스틸컷을 통해 어떤 것을 수집하고 나가야 할지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미지는 생성형 AI로 제작됐고, 올해 하반기 출시된다.
렐루게임즈가 준비 중인 플랫폼 '도넛'도 소개했다. AI 시대는 그림과 음악도 쉽게 만든다. 그럼 게임도 쉽게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는 물음에서 시작했다. 한 PD는 "지구 반대편에 일론 머스크가 '그록3'를 공개하면서 테트리스 같은 게임을 10분 만에 만든다고 한 적이 있는데, 우리는 먼저 이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고 웃으며 말했다.
또한 "딥러닝이 인간의 인식을 모두 구현할 수 있다면 '재미'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더 나아가 AI가 재미있는 게임을 생성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는 포부를 전했다. 현재 도넛은 개발 단계로, 프로토타입은 진행한 상태다.
마지막으로 한 PD는 "AI가 만능이라는 오해가 있지만, 거기에 대한 강박을 버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AI가 내놓는 결과는 신기하지만 부족한 면이 발견될 때가 있으며, 신기한 것이 곧 재미는 아니라는 의미다.
이어 "재미는 게임 디자이너가 해야 할 영역이며, 질문하는 사람에 따라 AI의 역량은 달라진다"면서 좋은 질문이 좋은 답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질문을 잘 떠올리는 게 중요하므로, 역설적으로 좋은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책을 읽어야 하는 시대"라는 생각을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