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온라인 게임, 글로벌 콘솔 게임 모두 나타난 공통적 현상
'쉽게, 편하게, 자유롭게'가 게임 흥행 필수 조건이 된 이유

"이제 학생이나 백수 시절처럼 똑같은 보스를 수십 시간 헤딩하고 있을 순 없어요. 우리도 나이를 먹고, 직장도 생겼어요." 

모 게임에서 난이도 완화를 원하는 목소리가 커졌을 때, 많은 공감을 받은 한 유저의 글 일부다. 한 곳에서만 벌어지는 흐름이 아니다. 어려운 게임들이 일제히 고집을 꺾어서 성공하고 있다. 최대한 쉽고 편해지는 것이 미덕인 시대다.

한때 어려운 게임으로 뜬 경우가 있었다. 흔히 떠올리는 것이 '다크소울'을 비롯한 프롬 소프트웨어의 액션 타이틀이다. 하지만 어렵기 때문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치밀하게 구조를 설계하고, 순수 재미와 클리어 쾌감까지 극대화해야 흥행 조건을 달성할 수 있었다. 

프롬 게임 역시 더욱 편한 플레이를 추구하며 성장했다. '엘든 링'이 판매량 3천만 장을 넘기며 대흥행 반열에 오른 이유다. 유저 선택에 따라 사기 무기와 영체를 이용해 누구나 어려운 보스를 처치할 수 있었고, 그러면서도 클리어 성취감은 유지했다. 

어려운 도전을 원하는 유저를 위한 선택지도 충분했다. 영체 사용 없이 일반적 무기로 플레이하면 과거 소울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기에 자유롭게 파밍이 가능한 오픈월드가 어우러져 역대 최고의 소울라이크가 탄생했다. 

'엘든 링'에 영체와 사기 무기가 없었다면 지금 정도로 팔릴 수 있었을까
'엘든 링'에 영체와 사기 무기가 없었다면 지금 정도로 팔릴 수 있었을까

온라인 게임 비중이 높은 한국 시장은 난도 하향 필요성이 더 커진다. 과거 한 게임에 종일 매달리던 시대가 아니다. 구매력 있는 유저들의 시간이 줄어들었고, 시간을 돈으로 사는 부분유료화가 많다. 시간 대비 효율이 더욱 절실해진 이유다.

'로스트아크'에 불어온 변화는 대표적 예시다. 도전 의식을 불태우는 웰메이드 레이드, 그중에서도 최상위 레이드의 '절망적인 난이도'는 언제나 큰 화제를 낳았다. 하지만 갈수록 어려운 공략과 성장에 부담을 느끼는 유저가 늘었다. 시간 투자 혹은 과금 투자가 조금씩 누적된 것.

결국 점차 쌓여온 부담이 터지면서 재화 경제가 크게 흔들렸고, 개발진은 일반 난이도 레이드는 매우 쉽게 공략하도록 방향을 바꾸면서 개편을 꾀하고 있다. 가격의 비쌈 여부보다 장기적으로 중요한 것은 결국 난이도 완화였다.

다른 국내 대표 MMORPG들도 흐름은 비슷했다. '던전앤파이터'는 매 시즌 테마가 변하지만,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흐름은 '더 쉽게'였다. 증폭 등 성장 조건이 훨씬 편해졌고, 레이드 한 번 실수로 다가오는 리스크가 과거보다 크게 줄었다. 

한때 극악 난도 보스전으로 유명했던 '메이플스토리' 역시 성장 완화와 편의성 개선이 반복되면서 쉽고 편한 게임으로 거듭난 지 오래다. 그밖에도 온라인 게임 대부분 예전과 비교할 수 없는 간편한 엔드 콘텐츠로 탈바꿈하고 있다. 하루 두세 시간 플레이도 버거운 일상 라이프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 수단이다.

일반 난이도는 더 쉽게, 신화 난이도는 더 어렵게 해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일반 난이도는 더 쉽게, 신화 난이도는 더 어렵게 해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콘솔 싱글 게임은 비교적 어려워도 살아남는 편이었다. 혼자서 진득하게 도전할 수 있고, 천천히 성취감을 얻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 하지만 상술한 프롬 게임을 비롯해, 빠르게 트렌드에 적응해 변화한 IP들이 거대한 흥행을 누리는 데 성공했다.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시리즈 전통이었던 편의성 장벽을 2018년 '월드'에서 극적으로 낮췄다. 기존 팬들 일부는 출시 초기에 "몬헌 같지 않다"고 평하기도 했지만, 눈부시게 상승한 퀄리티와 접근성은 그 모든 위화감을 덮었다. 

결국 '몬스터헌터 월드'는 누적 판매량 2,500만 장을 넘기며, 몬헌을 넘어 캡콤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게임으로 이름을 새겼다. 올해 출시한 신작 '몬헌 와일즈'는 집중 모드와 상처 등 신규 시스템으로 액션의 어려움을 다시 낮춰 역대 최하 난도를 갱신했다.

'몬헌 와일즈'의 상처 파괴는 더 이상 편하게 전투를 만들 수 있을까 싶을 정도
'몬헌 와일즈'의 상처 파괴는 더 이상 편하게 전투를 만들 수 있을까 싶을 정도

이런 추세에서, 아직도 복잡하고 어려운 구조를 유지하는 게임들은 힘겨운 모습도 보인다. 특히 오랜 역사를 자랑한 콘솔 IP 최신작들에서 많이 보이는 기조다. 

반복된 도전보다 확실한 보상을 더 추구하게 되자 상대적으로 관심이 밀려난다. '항아리류'와 같은 어려워서 유명한 게임들도 종종 등장하지만, 이런 게임들은 직접 플레이 인기보다 게임 스트리밍 발전으로 인한 콘텐츠 소재에 가깝다. 

이런 변화가 아쉽다는 의견도 종종 보이나, 전체적으로 긍정 분석이 가능하다. 세계적으로 게임을 즐기는 유저 저변이 성별과 세대를 불문하고 크게 늘어났으며, 제3세계로 분류된 권역은 더욱 상승이 빠르다. 게임 경력이 짧은 경우가 많아, 이를 친절하게 안내하고 장기적 유저로 흡수하는 성장이 자연스럽게 이뤄졌다는 해석이다.

게임 외에 즉시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도 중요한 이유다. 현재 미디어 시대에서 진행 기약이 없는 고난도 도전을 반복할 동기는 크게 없다. 시간이 가장 귀해지는 흐름에서 쉽게 나아갈 수 있는 통로는 반드시 열어둘 필요가 생긴다.

앞으로도 게임은 더욱 쉬워질 것이다. 가끔씩 모든 열정을 쏟아 이루는 성취가 그리워질 수도 있다. 이것은 업적, 칭호와 같은 명예로운 보상으로 충족될 가능성이 높다. 쉽고 편한 게임, 그 속에 어떤 만족감과 감동을 주느냐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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