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대기업 승인 구조와 안전제일 개발... 매너리즘에 빠진 게임계
매년 'AA 게임'이 가져오는 혁신, 새로운 흐름에 동참할 때

프랑스 신생 스튜디오가 내놓은 한 게임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 '클레르 옵스퀴르: 33원정대'가 극찬과 함께 GOTY 후보로 떠오르면서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있다. 

샌드폴 인터랙티브는 직원 30여명에 불과한 작은 개발사다. 스튜디오를 설립한 기욤 브로슈 CEO가 유비소프트 출신이라는 것은 이제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브랜드 개발과 내러티브 기획에서 활동하던 그는 회사를 나온 뒤 2019년부터 '33원정대' 기획을 시작했다.

브로슈 CEO는 미디어 인터뷰에서 "이와 같은 오리지널 IP와 독창적인 캐릭터, 세계관을 가진 프로젝트는 대형 게임사에서 수십 년 걸려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 구조 특성상 승인조차 받지 못할 수 있고, 승인되더라도 개발 지연이 계속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 외면하고 있었던 'AA 게임'의 창의력이 필요했다

결국 그는 직접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퍼블리셔 케플러 인터랙티브를 비롯한 각종 투자사와 손잡아 창의적인 게임을 현실로 만들었다. 단순한 인디 개발 구조를 넘어, AA 게임 포지션에서 동료들과 자유로운 아이디어를 끈끈하게 주고받은 결과다.

'33원정대'의 성공은 초반 서구권 게임계의 자랑으로 꼽혔다. 하지만 조금씩 시간이 흐르면서, 자랑은 경종으로 바뀌고 있다. 현재 서양 게임이 고전하고 있는 이유의 핵심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AA 게임은 한동안 메이저 게임계에서 '플랜 B'로 꼽혔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장점이 있었다. 기민하게 아이디어를 실현하고 정체성을 지키면서 게임 본연의 재미를 살릴 수 있다는 것. AAA 게임들이 보수적인 시스템으로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비판과 대비된다.

AA 게임의 창의력은 최근 올해의 게임(GOTY) 수상 흔적으로도 나타난다. 2023년 GOTY를 싹쓸이한 '발더스 게이트3'는 대기업의 AAA 프로젝트와 거리가 멀었다. 2024년 GOTY 다수를 수상한 '아스트로봇'을 개발한 팀 아소비 역시 약 60명 개발진이 참여했다.

'33원정대'를 개발한 샌드폴 인터랙티브 직원들
'33원정대'를 개발한 샌드폴 인터랙티브 직원들

■ 중규모 게임 혁신, '게임에 미친 사람'들의 창작이 중요

반면 북미 유럽 글로벌 게임사들이 내놓는 대형 프로젝트 평가는 최근 수년간 기대 이하에 머물렀다. 대표적인 사례는 유비소프트다. 최근 대형 신작마다 새로운 반응을 얻는 데 실패한 반면, 유비소프트를 떠나 독립한 핵심 개발자들은 '33원정대'와 같이 매력적인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중규모 게임의 혁신이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거대한 프로젝트가 기존 시도를 반복하고, 안전한 수익 구조를 선택하는 흐름이 반복되면서 유저들의 피로감은 커졌다. '순수 재미', 혹은 독창성을 지키는 게임이 주목을 받는 현상은 앞으로 더욱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그만큼 결정권자의 최신 감각은 더욱 중요해진다. 순수하게 게이머로서 아이디어를 판별하거나, 그런 감각을 가진 인재들의 의견을 존중할 안목이 필요하다. 결국 돌고 돌아, 게임을 잘 알고 즐기는 사람이 흥행작을 만들어낼 가능성은 높다.

■ 더 이상 '안전'만으로 발전할 수는 없다

이는 국내 게임계에도 해당하는 교훈이다. 한때 대형 게임사마다 사운을 건 대규모 RPG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그중 상당수는 안정적인 국내 수익을 거뒀으나, 해외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는 게임은 없었다. 독창적인 매력 부족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반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출발한 'AA' 게임들이 글로벌 흥행을 거듭하면서 새로운 대안으로 자리잡고 있다. 네오위즈의 'P의 거짓', 크래프톤 '인조이' 등은 출시 직전까지 개발자가 100명을 넘지 않았다. 메타스코어 90점대와 500만장 판매 쾌거를 달성한 넥슨 민트로켓 '데이브 더 다이버'는 불과 20여명 팀원이 모여 만들어냈다. 

복잡한 결재와 승인 과정을 생략하고, 관련 게임에 진심인 사람들이 디렉터 중심으로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창의력을 반영한 것이 핵심 비결로 꼽힌다. 지금 글로벌 시장의 격변 흐름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중소 규모 프로젝트에 더 힘을 실을 필요가 생긴다.

'안전한 선택'만으로는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워지는 시대가 됐다. 글로벌 확장이 필수가 된 지금, 국내 게임계가 바라볼 방향도 선명해지고 있다. 시대를 선도하는 무기는 언제나 열정과 도전이었다. 그 열정을 결과물로 만드는 재능을 가진 곳이 어디가 될까. 그것은 앞으로 미래를 가를 결정적 분기점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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