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적이면서도 기이하고 격렬한 이야기, 완벽한 연출 센스로 완성
액션과 스토리의 절묘한 균형... 모든 성향의 유저가 만족할 '작품'

[게임플] 시원한 사슬 액션 플레이만큼, 스토리 연출이 격렬하게 요동쳤다. 

원더포션이 개발한 '산나비'는 한국 인디 게임 가운데서도 이례적으로 관심을 많이 받아왔다. 네오위즈의 지원과 퍼블리싱도 있지만, 그보다는 순수하게 게임 자체의 재미로 정면돌파한 사례로 꼽힌다.

초기 설정부터 관심은 컸다. 매력적인 조선 사이버펑크 도트 아트, 사슬로 스윙하고 적을 꿰뚫는 액션, 흥미로운 이야기 소재와 스토리텔링까지. 이어 데모와 얼리액세스를 거치면서 발전해가는 모습도 화제를 늘리는 요인이 됐다. '압도적으로 긍정적'이라는 스팀 유저 평가 역시 이를 반영한다. 

그 산나비가 오랜 기다림 끝에 11월 9일 정식 출시됐다. 기존 PC와 더불어 닌텐도 스위치에서도 판매에 나섰다. 지난 8월 파이널 베타에서 보여준 파격적 전개와 연출은 아름다운 결말로 마무리될 수 있었을까. 결말까지 지켜본 결과, 기대하고 상상해온 그 모습은 충분히 매력으로 흘러넘치고 있었다.

■ 격정적인 이야기, 감각적인 연출을 만나다

사전 플레이는 PC 플랫폼으로 진행했다. 우선 기술적인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 우연히 잘 넘어간 것일지도 모르지만, 얼리액세스 때 종종 나오던 버그도 고쳐진 듯하다. 

이야기 발단은 굉장히 왕도적이다. 퇴역 군인인 주인공은 하나뿐인 딸과 함께 행복한 여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끔찍한 사고가 그들을 덮쳐오고, 주인공은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간 '산나비'에게 복수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추적에 나선다. 그렇게 도착한 마고특별시 속에서 기이한 사태를 맞이하며 스토리 톱나바퀴가 세차게 굴러간다.

내러티브를 대표하는 연출 기법은 텍스트를 통한 완급 조절이다. 더빙이 없다는 한계를 극복하기에 가장 적절한 방식이다. 대사 출력 타이밍과 속도, 크기, 색깔, 음영 등으로 말하는 이의 어조와 뉘앙스를 표현한다. '카타나 제로' 등 몇몇 게임에서 적극 활용한 바 있는데, 산나비는 게임을 진행할수록 자기만의 스타일로 연출을 소화해낸다.

보스전 하나하나가 이야기 전개와 연결되는 구조는 플레이 몰입을 높인다. 챕터1 빈민가부터 시작해 상업지구, 공장, 최상층으로 영역을 옮겨가면서 그 과정에서 마주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을 상대해야 한다. 각 챕터마다 완전히 다른 배경과 특수한 기믹이 들어가면서 보스전 역시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스토리가 급변하는 전환점마다 연출도 일품이다. 화면 페이드인과 페이드아웃, 색감 표현과 이펙트가 정성스럽게 어우러진다. 놀람과 공포, 슬픔 등 유저 감정을 이끄는 사운드도 내러티브와 액션에서 엄청난 역할을 한다.

스포일러 없이 후반부의 전개, 마지막 엔딩까지 풀리는 이야기를 설명하기란 불가능할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원하지 않는 내용일 수도 있지만, 이 스토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면 수많은 감정이 쏟아져내려오는 결말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사이버펑크 특유의 파격적 소재와 인간에 대한 주제 의식은 성공적으로 녹였다. '사이버펑크: 엣지 러너' 후반부를 감상할 때와 비슷한 울림이 있다. 한국적인 정서도 일부 묻어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 가운데 금마리는 여러 의미에서 오랫동안 잊지 못할 캐릭터가 되지 않을까 싶다. 

■ 속도감, 손맛, '쫄깃함'을 다 챙긴 사슬 액션

사슬 액션은 지나치게 어렵거나 길다고 나온 부분을 완화한 흔적이 보인다. 다만 파이널 베타까지 플레이해본 입장에서 이미 경험한 파트는 부드럽게 넘어갔기에, 게임을 완전히 처음 접하는 유저 관점에서 난이도를 주관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난이도 옵션을 폭넓게 설정해뒀기에 누구든 원하는 대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전투 스크린샷을 찍을 때는 쉬움으로 바꿔 플레이해봤는데, 체력이 아예 깎이지 않아 누구든 클리어에 문제가 없겠다는 확신이 들게 한다. 반면 베테랑 난이도는 일반 전투 구간에서도 체력 관리가 매우 신중해야 하기 때문에 각별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베타 시절 조금 지루하게 느껴졌던 일반 적 상대 구간도 밀도가 굉장히 올랐다. 불필요한 부분을 깔끔하게 제거했고, 주인공 설정에서 부자연스러웠다고 느낀 흐름도 개연성 있게 정비됐다. 선형적 구조에서 하나씩 사슬 액션이 추가되고, 그것을 사용하게 만드는 레벨 디자인도 준수하다.

보스전은 말할 것 없이 최고 퀄리티를 자랑한다. 후반으로 갈수록 재미는 더욱 살아나며, 베타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챕터5는 보스전만 반복해 플레이하고 싶을 만큼 처절한 연출과 재미를 선사한다. 물론 이야기와 어우러지는 몰입도 함께 절정에 달한다.

■ 중반 플레이 밀도, 많이 좋아졌다. 그래도 약간은 아쉽다

당연히 완벽한 게임은 아니다. 인력의 한계 때문인지 구간마다의 경험이 균일하지 않은 약점은 있다. 공장 파트는 많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템포가 느려지기도 한다.

초반 긴박한 공포감은 게임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강렬하나, 전투가 아예 없는 구간의 한계는 보인다. 2개 개체 조종 기믹이 대표적이다. 산나비 템포에 어울리는 퍼즐은 아니었다. 스토리 때문에 필요하다는 것은 이해해도, 특유의 속도감을 해치지 않고 만들 만한 아이디어는 없었을까. 

스토리 면에서는 개발 초창기 만들어진 대사 몇몇이 요즘 감성과 조금 맞지 않는다는 점, 이야기 전개가 정체되는 중반 구간의 밀도 문제를 들 수 있다. 단서가 깔리고 풀려나가는 맛을 느끼기 힘든 구간이 존재한다. 다행히 후반 절정과 결말은 다시 만족스럽고, 중간 과정에도 정성을 갈아넣은 연출 덕에 지루함을 느낄 틈은 많지 않다.

■ 총평 : 한국 소규모 게임의 새로운 대안

개발 경험이 전혀 없는 젊은 개발자 5인이 모였다. 첫 출발로 이 정도 결과물은 믿기 힘들 만큼 놀랍다. 단순히 처음치고 잘했다는 의미를 넘어서, 내러티브의 무게감은 지금껏 즐겨본 모든 한국 인디게임 중 가장 강하다.

무엇보다 액션과 스토리의 균형을 잘 잡아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 속에는 한땀한땀 정성껏 그려낸 도트 아트도 제 역할을 한다. 주인공의 심리, 도시 속 기묘한 탐험과 싸움, 산나비와 얽힌 근본적 진실에 접근하는 과정까지. 게임 속 플레이가 유저 흥미와 감정선을 끊임없이 건드린다. 

시작은 여러 유명 게임들의 래퍼런스였다. 하지만 개발사 원더포션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독창적인 액션, 세계관, 감성을 얹으면서 게임 전체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향후 나올 무료 DLC와 차기작도 기대가 모일 수밖에 없다.

까다로운 성취감을 원하는 액션 선호 유저, 게임 속 좋은 이야기를 원하는 유저 모두 각자 난이도를 선택해 큰 만족감을 느낄 게임이다. 한국 인디 게임에서 오래 기억에 남을 '작품'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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