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3와 동시 제작해 절반으로 나뉘어 공개
'게임을 계속하느냐, 멈추느냐'의 치열한 대립
장점은 여전하지만, 세계관의 깊이는 글쎄
전 세계가 열광한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두 번째 시즌이 26일 오후 5시에 공개됐다. 시즌 1의 우승자였던 ‘성기훈 (이정재 분)’이 다시 게임에 참가한다. 그가 다시 게임을 하는 이유는 곧 ‘오징어 게임’이라는 시리즈의 새로운 이야기 자체를 대변하려는 듯하다.
이 이야기는 참가자들이 ‘게임을 하는 이유’를 은밀하게 탐구한다. ‘게임에 참가하는 이유’와는 조금 다른 맥락이다. 캐릭터들로 하여금 계속 움직이고, 게임에서 이기고 싶도록 만드는 원초적인 동기 자체를 투영한다. 누군가에게는 재물욕, 누군가에게는 생존 본능,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정신적 쾌락인 그 제각각의 이유가 한 데 모인 이야기가 바로 ‘오징어 게임’이다.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오징어 게임 2’ 내용 전반에 대한 강력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양복남, 딱지남… 공유가 맡은 오징어 게임의 영업책을 부르는 별칭은 많다. 시즌 1에서 특별 출연에 가까운 짧은 비중이었지만 상당한 임팩트를 남겼다. 그랬던 그가 어떻게 돌아올지도 많은 이들의 관심사였다. 여전히 딱지를 칠까? 그렇다. 여전히 기계적인 태도만을 유지할까? 아니다.
그에게 ‘딱지치기’는 게임이 아니라 업무로 보인다. ‘게임’은 일반적으로 놀이다. 행위의 목적에 개인의 유희가 있다. 하지만, 딱지남은 업무를 하면서도 유희를 느낀다. 아버지를 총으로 쏴 죽였다고 회고하며 “이 일이 내 적성에 맞는구나”라고 말하는 그에게 있어 오징어 게임은 차라리 신념과도 같은 것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그가 가진 선민 사상은 ‘빵과 복권’이라는 개인적인 놀이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오직 자신의 놀이를 위해 빵 100개와 복권 100장을 사고, 남은 빵을 모조리 짓밟으며 희열을 느끼는 그에게서 사람들은 불쾌함을 느낀다. 마치 ‘딱지치는 기계’와도 같았던 그의 인간상을 처음으로 엿보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기훈과 대면해 진행하는 러시안 룰렛은 많은 시청자들이 꼽는 시즌 2 최고의 명장면 가운데 하나다. “너도 다른 놈들과 같은 쓰레기야. 운이 좋아서 폐기 처리를 면한 쓰레기”라는 대사는 딱지남이 가진 사이코패스적 선민사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성기훈에 대한 주최 측의 일갈과도 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기훈은 주최 측의 도발에 넘어가지 않는다. 그는 확률을 다루는 게임에 따르고, 딱지남을 상대로 승리한다. 딱지남에게 게임은 일종의 법칙이다. 자신이 항상 게임을 이긴다는 우월감에서 희열을 느껴왔던 그였지만, 게임에서 패배하는 순간에도 자신의 법칙을 거스르지 않고 승복한다.
기훈은 그렇게 다시 456번이 되어 오징어 게임에 참가하게 된다. 그가 다시 게임에 참가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게임을 멈추기 위해서다. 기훈은 참가자들이 게임 주최 측의 장기말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다시금 장기말이 된다.
게임을 멈추기 위해서 게임을 한다는 역설적인 동기를 이해하는 참가자들은 그리 많지 않다. 오징어 게임 2’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게임을 계속할 것인가, 게임을 멈출 것인가”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는 멈추는 쪽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이번 오징어 게임에서는 아예 한 게임이 끝날 때마다 투표를 진행한다. 게임보다도 이 투표의 비중이 더 크게 다뤄진다. 감독이 초점을 맞춘 주제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이는 대목이다. 눈 앞에서 다른 참가자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면서도 게임을 그만두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보며 기훈은 절망한다.
빵을 포기하고 복권을 선택하던 1화의 노숙자들처럼, 참가자들은 계속해서 ‘O’를 선택한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그 게임을 계속 하는가? 더 많은 돈? 지금까지 살았으니, 다음 판에서 살아남을 거라는 안일한 희망?
6화와 7화의 시점에 다다르면 이미 그 이상의 무언가가 그들을 움직이고 있다. 진짜로 사람들이 죽고, 그 대신 내가 살면 그만큼 상금이 올라가는 데스 게임 그 자체에 희열을 느끼는 것이다.
반면 프론트맨이자 001번 참가자 ‘오영일(본명 황인호, 이병헌 분)’은 성기훈의 안티테제다. 참가 번호부터가 1번과 456번으로 노골적이다. 그는 게임이 계속 진행되길 바라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저 판돈을 더 키우고자 하는 다른 참가자들과 다르게, 주최 측이자 진행요원들의 대장이다.
우리는 그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그가 게임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더 정확히는 그가 게임을 진행하고, 주최하는 프론트맨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다면 그는 왜 게임에 참여했을까? 시즌 1의 ‘오일남’처럼 재미를 위해서? 아니다. 그는 게임이 계속되도록 유도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지난 번 우승자인 성기훈을 게임에서 내보내려고 남몰래 기회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기훈의 행동이 게임에서 벗어나 총기 반란으로 이어지자, 참가자가 아닌 프론트맨으로 이를 저지한다.
사실 기훈은 그리 영민한 인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답답한 인물에 가까웠다. 오죽하면 시즌 1의 상우가 그런 말을 했을까. 그랬던 그가 몇 년 사이에 오징어 게임 주최 측을 완벽하게 상대할 수 있는 인물이 됐을 리는 없었다.
그럼에도 마지막 선택이 의아하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차라리 자살 행위에 가까운, 무모한 작전이었을 뿐더러 “대의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평소 기훈이라는 캐릭터가 보여준 인간성에서 벗어나는 작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친구 정배를 잃고 어떻게 될까. 반란에 참여한 참가자들이 모두 죽었을 때, 그만 특별 대우를 받으며 다시 게임에 참가할까? 프론트맨에게 납치되어 강제로 게임을 관람하게 될까? 전의에 불타서 복수를 다짐할까? 모든 걸 포기하고 절망에 빠질까? 벌써 수많은 궁금증이 떠오른다. 별 수 없이 내년에 공개될 시즌3를 기다리게 된다.
공개된 게임들은 오히려 전편보다도 더 잘 짜였다는 인상을 받았다. 첫 번째 게임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그대로였던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이미 게임을 경험해 본 기훈이 재참가해서 게임을 이끄는 모습을 담기 위해서다.
반면 새롭게 등장하는 두번째 게임 ‘5인6각 근대5종’은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우리나라의 놀이를 컴팩트하게 담아냈다. 실제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게임이지만,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응원하는 운동회를 연상케하는 연출도 이 게임의 백미였다.
그런가 하면 세 번째 게임인 ‘짝짓기 게임’은 가장 영리한 게임이었다. 어느 정도 무리가 형성된 참가자들이 의도적으로 찢어지고, 또 다른 참가자들과 만나면서 관계성을 형성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그야말로 서사를 쌓아가는 빌드업 단계에 최적화된 게임이었다. 문제는 이 게임이 7부작 시리즈의 5화에 등장했다는 것이다.
오징어 게임 1편은 게임이 시작하고 끝나는 한 사이클을 모두 담아냈다. 시청자들 역시 성기훈이 게임에 참가하기 전의 모습부터 우승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함께 지켜봤다. 반면 이번 2편은 그렇지 않다. 예상된 일이었다.
시즌 2와 시즌 3를 함께 촬영하고 제작한다는 사실은 당초 공개된 정보였다. 이번 오징어 게임 2는 필연적으로 ‘클리프행어’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하지만 이야기의 최종장으로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이라기에는 지나치게 거칠게 절단됐다는 것이 시즌 2의 마지막 에피소드인 7화가 끝나고 든 첫 느낌이었다. 이야기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회차를 대뜸 다음 시즌을 위한 결말로 던져 놓으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마치 원래 14부작인 한 편의 드라마를 기계적으로 반절 뚝 잘라 놓은 듯했다. 우리는 7개의 에피소드 안에서 ‘기-승-전-결’을 모두 목격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 2’는 1화부터 6화까지 시청자의 멱살을 잡고 끌고 가다가 마지막에 갑자기 급격하게 방향을 바꿔버린다. 시청자들이 깊어진 세계관과 캐릭터들에 빠져들기에는 다소 짧은 시간이었다.
몇몇 인물들은 시청자들이 애정을 느끼기에는 뻔하거나, 과하다. 반전은 지나치게 예상이 되고, 또 다소 작위적이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여기서 너무나 실망한 나머지 시즌 3가 나와도 절대 보지 않겠노라고 다짐할 정도인가? 아니다. 아마 시즌 2를 마지막까지 본 대부분의 시청자라면, 시즌 2에 대한 개인적인 호/불호와는 별개로 시즌 3 역시 끝까지 챙겨볼 것이다.
전편의 장점이었던 속도감과 몰입감은 여전하다. 쉽사리 ‘넘기기’나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기 어려울 만큼 집중해서 보게 된다. 커진 스케일은 체감이 한 눈에 된다. 호평 일색이었던 음악 역시 더 발전했다.
무엇보다 '게임' 자체의 신선함이 여전히 살아있다. 작품 속 등장하는 게임들이 단순히 참가자들의 머릿수를 줄이기 위한 편의적인 도구가 아니라, 창작자의 의도가 투영된 장치라는 점 역시 전편에 이어 이번에도 가장 큰 매력이다.
‘참가자들이 게임을 하는 이유’는 곧 ‘오징어 게임’이라는 시리즈가 가진 이야기의 목적이다. 서로 다른 이유들이 모여 나아가는 곳에 결말이 있을 것이다. 그 이유들은 지극히 개인적이기도 하면서, 또 지극히 본능적이다. 그게 이 이야기가 가진 장점이다. 러닝타임 내내 우리가 가진 인간성을 끊임없이 건드리면서 나아간다.
아직 살아남은 참가자들이 있다. 그들은 오징어 게임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여전히 ‘그들이 이 게임을 하는 이유’를 궁금해 한다. 그들의 끝은 어디일까? 그리고 참가자들과 또 다른 차원의 인물들, 기훈과 프론트맨이 ‘이 게임을 계속하는 이유’ 역시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
게임은 계속될까? 아니면 멈출까? 벌써 시즌3의 일곱 개 에피소드를 기다리게 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