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피코6', 게임도 함부로 누르다 큰일이 날 수 있는 선택지에 대하여
게임 속에서도 함부로 할 수 없는 플레이를 전 국민이 목격했다.
3일 밤 벌어진 충격적 소동이 가시지 않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돌발적으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비상 계엄을 선포했다. 45년 만에 발동한 계엄이다. 국회의 빠른 소집 및 대처로 약 3시간 만에 계엄이 해제됐으나, 이후 파장은 계속될 전망이다.
계엄사령부 포고문에는 국회 및 정당 활동 금지, 집회와 시위 금지, 언론과 출판물 검열 등 국가비상사태 쓰일 조항이 보여 더욱 충격을 준다. "영화나 드라마, 게임에서나 보던 일이 난데없이 나타나 두렵고 혼란스럽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계엄령과 대통령을 향한 논란이 폭발하면서 콘텐츠 업계 전체가 분주해진다. 게임도 빠질 수 없다. 게임 유통사 다이렉트 게임즈는 '트로피코6' 82% 할인을 금일 타임딜로 내걸기도 했다.
'트로피코'는 게이머 사이에서 유명한 정치 경영 시뮬레이션 시리즈로, '독재자 시뮬레이션'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중남미 배경 어느 섬나라의 통치자가 되어 정권과 자신을 지키고 국가를 발전시키는 게임이다. '계엄령'은 이 게임에서 절대 쉽지 않은 시스템 중 하나다.
■ 어떤 상황이라도 모두가 등을 돌리게 되는 선택지
시리즈마다 난이도 차이는 있었으나, 기본적으로 트로피코에서 계엄령을 선포해 이득을 보는 일은 매우 어렵다. 2019년 출시한 최신작 '트로피코6'는 계엄령에 따른 대가가 더욱 크다.
계엄령은 세계대전 시대부터 사용 가능하다. 게임 플레이 중 활용하기 가장 좋은 효과는 '선거 무시'다. 계엄 발동 순간, 일정이 잡혔거나 진행 중인 선거는 즉시 취소된다. 또한 계엄령이 유지되는 동안 선거가 발생하지 않는다.
트로피코에서 유저의 플레이를 게속 이어나갈 수 있게 하는 콘텐츠가 연임 선거다. 한 번이라도 선거에 패배하면 곧바로 추방당하며 게임 오버가 된다. 어떤 '술수'를 쓰더라도 계속 선거를 이기고, 연임을 되풀이하며 종신 독재자의 삶을 누리는 것이 유저의 생존 목표다.
그러나 잔혹한 효과가 가득 차 있다. 시행 비용부터 만만치 않고, 우호도는 군국주의자만 오를 뿐 그밖의 모든 세력이 크게 깎인다. 관광객 평가도 0단계 기준 30%나 감소한다. 트로피코 속 국가는 관광 수입 의존도가 크기 때문에, 계엄령 활성화가 길어지면 민심과 경제 파탄은 순식간이다.
치안이 올라 범죄 발생이 줄긴 하지만 크게 보면 이득은 미미하다. 자유 역시 크게 깎이고 반란군 확률이 증가하기 때문에 결국 총체적인 어려움이 닥친다. 갈수록 늘어가는 반군을 상대해야 하고, 급기야 자신의 군대도 등을 돌리게 되는 비참한 결말을 보기 쉽다.
■ 최후의 수단, 혹은 셀프 하드 모드
그렇기 때문에 유저들이 계엄령 카드를 만지작거릴 때는 보통, 지지율이 바닥을 기면서 선거에서 살아남을 각이 보이지 않을 때다. 그마저도 경쟁자 비방이나 암살 등 먼저 가능한 권모술수를 모두 시도한 뒤, 어떤 방법도 소용이 없을 때 고려하는 '최후의 수단'이 계엄령이다.
정반대 이유로 계엄령을 쓸 때도 있다. 숙련된 유저의 콘셉 플레이다. 모든 인프라와 지지율을 완벽하게 구축한 다음, 진정한 독재 폭군 플레이를 즐기기 위해 사용하는 경우다.
그래도 반란군이 등장하고 불을 지르는 테러를 겪는다. 또 열강들의 호감도를 관리하기 어려워져 대규모 침략을 겪기도 한다. 심심해진 게임에 일부러 긴장감을 불어넣고, 파멸적인 전투에 도전하기 위한 '자체 하드모드'라고 할 수 있다.
■ 게임은 현실의 일부만 담는다, 하지만 일부를 담는다
그밖에도 계엄령을 콘텐츠로 쓰는 게임은 몇 있다. '슈퍼파워2' 계엄령은 선거 중지와 함께 잠시 정치 안정도를 올리는 효과도 있어 무정부 상태에서 유용하다. 단 이것은 정복 위주의 세계대전 플레이라는 슈퍼파워 시리즈 특성에서 나온 허용이다. 그마저도 계엄령을 장기간 유지하면 정치 안정도는 급감한다.
트로피코 시리즈는 독재하기 매우 어려운 독재 게임이다. 국민을 위하고 전력으로 봉사할 때 가장 장기 통치를 유지하기 쉽다는 모순을 가진다. 그래서 아쉽다는 의견도 있지만, 어쩌면 현실 정치와 가장 맞닿은 교훈을 전하는지도 모른다.
게임은 현실을 소재로 비현실을 즐기는 유희다. 당연히 현실과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현실의 본질을 어느 정도 반영하기도 한다. 게임에서도 계엄령은 엄청난 준비와 각오가 필요한 버튼이다. 현실은, 더더욱 말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