셧다운제, 4대중독법 이어 질병코드 찬성 주도하는 이해국 교수
"낙인 되돌리기 힘들어"... 관찰 연구 나올수록 '게임 중독' 부정에 무게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 여부 논쟁에 다시 불이 붙었다.
게임계는 물론 게이머 사이에서도 반발이 여전하다. 간신히 폐지한 '게임 셧다운제' 시절처럼 한국만의 기형적 중독 프레임이 되살아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공교롭게도, 셧다운제 연구를 주도한 인물이 게임 질병코드 찬성론을 주도하고 있다.
제10차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10) 초안은 2025년 10월경 마무리 예정이다. 초안이 나온 뒤 일부 수정 과정을 거쳐 2030년 최종 개정, 2031년 시행된다. 2025년이 사실상 최종 분수령이라는 의미다.
정부는 아직 고민 단계다. 2019년 WHO의 질병코드 등재 결정부터 보건복지부는 국내 등재 찬성, 문화체육부는 반대 기조를 유지해왔다. 정신의학계와 게임 문화업계 사이의 대립, 전문가간 견해 차이도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
이달 여의도에서 열린 공청회는 이런 간극을 상징하는 자리였다. 찬반 대표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흔치 않은 토론으로 기회를 모았으나, 서로 좁혀질 수 없는 인식 차이만 확인했다는 평가다. 특히 게임을 소재로 다루는데도 관련 지식을 보강할 관계자 참여가 없었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게임 질병코드 관련 논쟁, 혹은 게임 중독 명명은 해외에서 관심 많은 주제가 아니다. 'ICD-11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를 키워드로 영어권 미디어를 찾으면 유의미한 화제가 전혀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료가 소수 나오지만, 대부분은 바로 한국과 중국에서의 논쟁을 전하는 내용이다.
실제로 게임 중독을 현상으로 규정하고 강도 높은 치료를 주장하는 곳은 한국과 중국 등 몇 개 국가에 불과하다. WHO가 정하는 ICD는 절대적 전문성이나 강제성을 갖추지 않는다. 서구권은 각국의 의료 체제나 실정에 맞춰 개별 도입을 정한다. 반면 국내는 KCD에 ICD 내용을 그대로 등재하는 원칙을 고수해왔다.
옥스퍼드 대학교 앤드류 쉬빌스키 인간행동기술학 교수는 7월 게임이용장애 세미나에서 "성인 중에 반 정도는 소셜미디어와 스마트폰 등 여러 기술에 중독되어 있지만 이것을 중독으로 진단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라며 "영국의 경우 ICD-11 도입에 20년이 걸릴 만큼 시간이 오래 드는데, 더 많은 연구 없이는 부정적"이라고 전했다.
게임이용장애 등재 찬성 측은 "게임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문제 있는 사람을 치료할 수 있는 안전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을 정립했다. 그러나 핵심 인물 및 단체의 과거 이력이 업계 불신을 키운다.
이해국 가톨릭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과거 게임 강제 셧다운제, 게임을 마약 등과 같이 관리하는 4대중독법 도입을 전면에서 주도하고 토론에 나선 바 있다. 법안 공청회 당시 "게임을 빼느니 마약이 빠지는 것이 낫다"는 발언으로 지탄을 받기도 했다.
2010년 여성가족부가 셧다운제 근거 마련을 위해 발주한 연구 용역도 이해국 교수가 맡았다. 가톨릭대 산학협력단을 통해, 셧다운제가 5,600억 원의 사회적 비용을 절감한다는 결론을 산출했다. 연구기간 단 30일 동안 내놓은 결과다.
당시 보고서 내용은 특별한 의학적 지식과 연구를 활용한 것이 아니었다. 통계 자료에서 가상 상황을 대입한 추산으로 이루어졌으며, 전체 인터넷 중독 통계를 게임과 구분하지 않고 그대로 계산에 반영해 논리적으로도 구멍이 뚫려 있다.
일시적 뇌 변화가 아닌 장기적 관찰 연구를 진행한 경우 게임 질병코드 반대론에 힘이 실린다. 한덕현 중앙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연구가 대표적이다.
2023년까지 무려 3년에 걸쳐 진행한 게임이용자 임상의학 코호트 연구에 따르면, 게임과몰입 위험군으로 분류된 이용자라고 해도 아무 치료 없이 3년 내 모두 위험이 사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밖에 2011년 네덜란드에서도 단 1년 만에 실험자 50%가 자연 치유됐다는 보고가 나온 바 있다.
약물 등 강력한 치료를 하지 않아도 뇌에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속속 나오는 가운데, "게임중독 의학적 치료"를 강조하는 정신의학계의 움직임에 불신이 나온다. 보건복지부가 2015년부터 5년간 170억 이상 예산을 투입해 추진했던 '게임 디톡스 사업'도 허술한 연구와 학계 이익 챙기기 의혹으로 비판을 받았다.
셧다운제는 2011년 시행되어 청소년 보호 효과 없이 게임계만 타격을 입는 대표적 악법이었다. 폐지하기까지 11년 가까운 노력이 필요했다. 같은 인물들의 주도 아래 똑같은 일이 반복되고, 또 이를 바로잡기 위해 수많은 비용을 소모해야 할 수도 있다는 점에 업계 우려가 커진다.
게임계 한 관계자는 "순수하게 연구를 위해 질병코드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게임 중독을 내세우던 인물과 단체들이 지금까지 보인 행위는 이미 순수함과 거리가 멀었다"면서 "제대로 된 근거 연구 제시도 없이 의료 사업부터 준비하려는 모습부터 멈춰야 논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