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서브컬처 분야의 역사를 총망라한 공간을 가다

서브컬처의 성지, 이 말에서 보통 떠오르는 장소는 어디일까. 1순위로 아키하바라, 다음은 이케부쿠로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본연의 의미와 역사를 되돌아볼 때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장소가 있다. 바로 '나카노 브로드웨이'다.

나카노 역은 신주쿠 지역 북서쪽에 붙어 있다. 열차로 고작 5분 거리다. 역 북쪽 출구로 나오면 일직선으로 쇼핑 구역인 거리가 이어져 있어 관광과 식사를 즐기기도 좋다. 5분만 더 길을 걷다 보면 곧장 목표 건물과 마주치게 된다.

나카노 브로드웨이는 대형 건물 단 하나를 부르는 이름이다. 그 속에 빼곡하게 소형 매장이 들어찼고, 각자 테마에 맞춰 영업을 하는 형태다. 구조만 따질 때 한국의 낙원상가를 떠올리면 얼추 비슷하다. 판매 영역이 극한으로 세분화됐다는 점이 다를 뿐.

한국에도 익숙한 일러스트레이터 '토니'의 레어템
한국에도 익숙한 일러스트레이터 '토니'의 레어템

■ 모든 것을 기록하다, 서브컬처 아카이브

아키하바라 상권은 나름대로 상품성이 있는 물건들을 진열한다. 나카노 브로드웨이 역시 기본적으로는 상품을 판다. 다만 "이런 걸 찾는 사람도 세상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기상천외한 희귀 물품을 시대를 초월해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규모는 비교적 작지만, '서브컬처 아카이브'라는 의미에 더 맞닿아 있다.

이곳을 상징하는 대표 업장은 '만다라케'다. 서적 중심의 서브컬처 프랜차이즈이며, 중고만화 서점으로 1980년 처음 차린 본점이 바로 이곳에 있다. 이후 일본 각지에 영역을 넓혔고, 나카노 브로드웨이에는 수십 개 관이 각기 다른 취향을 품은 채 운영되고 있다. 물론 그 물량도 건물 안에서 일부에 불과하다.

흔히 '오타쿠 문화'에서 떠올릴 수 있는 영역은 모두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국내에선 마니아 정도로 칭하는 수집물을 거의 다 갖췄다. 과거의 영화, 드라마, 현실 아이돌, 타블로이드지 같은 미디어 관련 상품에 RC카, 철도, 동전, 우표 등.

모든 테마를 열거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다. 판매뿐 아니라 박물관처럼 보존 및 전시를 담당하는 공간도 많다. 또한 현역 아티스트의 전시, 극히 희귀한 레어 아이템의 중고 거래까지 최대한 자유로운 활동을 겸한다.

단적으로, 인형 키워드 하나만 돌아봐도 현기증이 날 만큼 다양하다. 

애니메이션 관련 인형은 물론 1980년대 바비 인형에 일본 전통 인형, 세계 각지의 옛날 관광품, 처키 같은 호러 인형, 1990년대 유행한 고무 지우개 인형까지. 게다가 인형 뼈대에 전용 의상과 가발도 따로 판매하는 매장이 줄지어 있다.

이런 오타쿠들의 기록이, 분야별로 1970년대 이전부터 현재까지 모든 역사를 아우르면서 진열되어 있다. 가장 인상적인 곳이 3층에 자리잡은 서적 매장이다. 수백 개 책장에 만화나 거의 잊혀진 옛 잡지가 도서관처럼 빼곡하다. 

수많은 잡지 등 정기간행물이 1980년대부터 연대기로 쌓여 있다
수많은 잡지 등 정기간행물이 1980년대부터 연대기로 쌓여 있다

옆 관에는 출품 동인지나 팬아트북 같은 비공식 출간물이 작가와 기업 태그별로 정리된 모습도 살펴볼 수 있다. 4층으로 올라가면 더욱 귀한 '레어 아이템'들이 즐비하다. 옛날 애니메이션의 원화와 콘티, 대본이 전시된 곳도 한 번쯤 들러볼 만하다.

24년 전에 나온 '풀 메탈 패닉' 캐릭터 원화가 여기 왜 있는데
24년 전에 나온 '풀 메탈 패닉' 캐릭터 원화가 여기 왜 있는데

■ 일상과 서브컬처, 경계선이란 없다

상권의 부조화까지 재미있다. 이 건물은 서브컬처 관련만 입주한 것이 아니다. 1층은 일반적인 쇼핑몰과 비슷하고, 2층은 시계 등 명품 액세서리 매장이 서브컬처 숍과 섞여 자리잡고 있다. 

같은 공간에서, 명품 시계 매장과 피규어 가챠퐁이 지그재그 순서로 엇갈리는 모습은 여기서만 볼 수 있는 장관이다.

가치가 귀하다는 면에서는 시계나 서브컬처 레어템이나 공통점이 있다
가치가 귀하다는 면에서는 시계나 서브컬처 레어템이나 공통점이 있다

이런 '미친 다양성'으로 인해 방문객들, 특히 외국인으로 보이는 관광객의 모습도 극과 극이다. 누군가는 거대한 백팩에 편한 복장으로 가면라이더 용품을 쓸어담기도 하고, 그 옆에서 나이 지긋한 부부가 고액 목걸이를 둘러보고 있다.

어떤 모습으로 찾아오고, 어떤 취향을 찾아보든 자신의 답을 찾을 수 있는 장소가 나카노 브로드웨이다. 어쩌면 이것이 '오타쿠' 문화가 탄생할 시절의 분위기고, 일본이 서브컬처의 대명사 국가가 된 이유일지도 모른다.

아이돌 마스터의 성지, 남코 나카노점
아이돌 마스터의 성지, 남코 나카노점

주변으로도 다양한 서브컬처 관련 매장이 붙어 있다. 나오는 길, 남코 나카노점도 잊지 않고 들렀다. 일반적 게임 센터와 비슷하지만, 20년 역사를 자랑하는 '아이돌 마스터'의 성지로 불리기도 하는 곳이다. 

2층에 아이마스 IP를 모두 포함하는 물건이 전시됐고, 핵심 성우들의 사인과 포스터 및 방명록도 역사를 관통해 만날 수 있다. 그밖에 고전 대전액션 게임들이 모인 세기말 오락실(나카노 TRF), 어도어즈 나카노점까지 게임 센터 라인업도 탄탄하다.

코나미 신작 리듬게임 '폴라리스 코드'...에서 굉장히 익숙하고 수상한 곡이 나오고 있었다
코나미 신작 리듬게임 '폴라리스 코드'...에서 굉장히 익숙하고 수상한 곡이 나오고 있었다

■ 서브컬처의 근본을 향한 대답

서브컬처를 굳이 직역하자면 소집단 문화다. 어떤 분야는 열에 아홉은 그게 무엇인지도 잘 모른다. 하지만 열에 하나, 혹은 백에 하나 정도 사람들은 거기에 열광하고 몰입한다. 그 현상은 어디에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작품 세계를 만들어낸다. 

나카노 브로드웨이는 그 정취가 매장 하나하나 다르게 담긴 곳이다.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든 그동안 못 보던 것을 찾을 수 있고, 전혀 모르던 세계와 뜻밖의 만남을 가지기도 한다. 익숙한 경험과 낯선 경험이 공존하는 장소다.

비주류 취미를 최소 하나 이상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도쿄에 방문했을 때 나카노 브로드웨이는 반드시 한 번 들러야 하는 곳이다. '서브컬처'란 무엇인가, 그 기원은 어떻게 탄생하고 발전했을까. 이런 물음을 향한 대답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빛난다. 앞으로는 더욱 빛날 것이다.

지나가는 길이자, 또다른 관광 명소인 나카노 선 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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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램프 작품, 그중 '카드캡터 사쿠라'는 아직도 동네 애니숍에서도 보일 만큼 정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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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기 IP의 귀한 아이템도 물론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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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모델도 빠질 수 없다, 건담 외에도 수많은 로봇을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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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증식해 있는 만다라케 별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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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라는 테마 하나만으로도 서브컬처 매장 하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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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을 틈탄 리사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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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옛날 게임들이 모여 있는 세기말 오락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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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도라에몽 사랑은 어느 곳에나 확인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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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 중 근본 로봇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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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취미에 눈 뜰 것만 같았던 RC카 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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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의 조화가 어우러지는 피규어 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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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남코 나카노점 2층에서 만난 아이돌 마스터 전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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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부터 최신작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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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하나지만, 그 이상의 볼륨이 느껴진 나카노 브로드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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