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빌의 힘을 걸고 펼치는 카즈야와 진의 부자 최종 결전
"대체 어디까지 가는 거냐"는 의문 속, 그저 용서하게 만드는 정서와 연출

"진과 카즈야 싸움 수준 실화냐, 가슴이 웅장해진다. 진짜 철권은 전설이다."

'뇌절'이라는 유행어는 이제 게이머들에게 친숙한 일상어다. 한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사용하던 기술 이름이지만, 1절과 2절을 넘어 같은 패턴을 끝도 없이 반복할 때 핀잔을 주는 의미로 정착됐다. 

한편으로는 재미를 주기 위한 또다른 기법이기도 하다. 이제는 누가 봐도 끝이 나겠지 싶은 시점에 상상도 못한 한 걸음을 더 보여주면서 상대의 허를 찌르는 것. 특히 B급 감성을 살리고 싶을 때 효과적이다. "뇌절을 극한까지 하면 예술이 된다"는 말도 나올 정도다. 

1월 26일 출시된 대전격투 게임 '철권8'은 스토리 모드에서 이런 매력을 십분 살렸다. 전작들에 이어 미시마 가문을 중심으로 다루며, 헤이하치를 죽이고 세계 정복을 향해 달려가는 미시마 카즈야를 아들 카자마 진이 막아서는 싸움을 그린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를 죽이겠다며 주먹질하는 철권 시리즈의 일상적 풍경이다. 

대전격투에서 메인 스토리는 잠시 즐기고 지나가는 모드에 불과하다. 하지만 게임 평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라이트 유저가 확실하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이고, 새로운 타이틀의 적응 과정이기도 하다. 

※ '철권8' 메인 스토리 핵심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철권8의 메인 스토리는 3시간 정도 분량이다. 얼핏 많지 않아 보이지만, 장르 기준 많은 편이고 전작에 비해서는 크게 늘어났다. 출시 전부터 개발진이 이번 스토리 모드에 큰 자신감을 보인 만큼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느냐가 관건으로 꼽혔다.

각국의 대표 캐릭터들이 철권 토너먼트를 펼치며 무난하게 흘러가는 듯했던 스토리는, 카즈야가 본격적인 데빌 각성 계획을 진행하면서 분위기가 치솟기 시작한다. 이제 그냥 데빌로는 별 감흥이 없으니, 아자젤을 흡수해 '트루 데빌 카즈야'까지 등장한다. 수많은 소년만화의 클리셰가 소용돌이치는 흐름이었다.

진이 내면의 데빌을 극복해내면서 연출도 극에 달한다. 카즈야가 지구에 던지는 거대 구체를 진이 어머니를 떠올리며 엔젤 진으로 각성해 받아내고, 그 여파로 우주까지 떠오르는 장면은 세상 가장 진지한 사람이라도 웃음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게 만든다. 

드래곤볼을 극한의 래퍼런스로 삼은 것 아니냐 싶다가도, "그것도 반다이남코 소유였지"에 생각이 닿는 순간 모든 것을 수용하는 경지에 이른다. 엔젤 진과 데빌 카즈야가 나루토와 사스케의 가슴이 웅장해지는 연출을 펼치는 순간에는 이미 생각을 그만 둔 뒤다.

뇌절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승화하는 분기점
뇌절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승화하는 분기점

이 뇌절 예술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종반부에서도 핵심 줄기만은 놓지 않는다. 철권 유저들의 낭만을 뒤흔드는 팬서비스가 대미를 장식한 것. 

대체 이게 말이 되나 싶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경지에 다다른 연출력이 유저를 압도한다. 진과 카즈야가 가진 데빌의 힘이 모두 부딪혀 사라지고, 순수 인간으로서 맨손 격투를 펼치는 것이 최종전이다. 이 역시 정통 클리셰지만 철권 시리즈의 과거를 아우르는 연출과 겹치면서 의미가 깊다. 

과거를 부정하지 않기로 결심한 진이 예전에 버렸던 미시마류(풍신류)를 다시 꺼내들고, 이와 동시에 '철권3' 메인 BGM으로 음악이 바뀌면서 당시 기술로 펼치는 싸움은 유저를 소름 돋게 한다. 어머니에게 배운 카자마류 사용으로 다음 스테이지가 이어지는 점도 그동안의 서사를 종결짓는 감동을 부여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현기증이 날 때까지 싸움을 반복하지만, 혼돈 속에서 피어나는 한 송이의 감동이 더욱 심금을 울리는 법이다. 연출 센스와 함께 섬세한 그래픽, 화려한 이펙트가 어우러지면서 만족감은 더하다. 엔젤 진의 디자인 등 보기 힘든 요소도 몇 개 있지만 이 정도면 감성적으로 용납할 만하다.

철권 시리즈 역시, 다른 대전격투 장르와 같이 스토리를 보기 위해 플레이하는 게임은 아니다. 그러나 장르 특성을 감안해도 전작 '철권7' 스토리 모드는 너무하다는 혹평을 받은 바 있다. 볼륨도 빈약했고 흥미로운 전개와 기억에 남을 장면도 없었다. 

반다이남코 스튜디오는 철권8에서 그 점을 만회하고 싶었던 듯하다. 스토리 자체의 수준이 높거나 촘촘한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막 나가기를 주저하지 않는 전개와 압도적 연출력, 시리즈 전체를 향한 존중을 정성스레 엮으면서 뜻밖의 카타르시스를 만들어냈다. 뛰어나다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강렬한 스토리 모드였다.

철권8은 현재 스토리뿐 아니라 장르 본질인 멀티플레이 대전에서도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훌륭한 비주얼과 대전 연출을 자랑하며, 신규 핵심 요소인 히트 시스템이 빠른 템포를 만들어냈다. 

초보를 위한 가이드와 조작성도 발전해 또다시 부담없이 즐겨볼 만한 대전격투 게임이 탄생했다. 시작부터 강렬한 스토리로 화제를 만들어낸 철권8이 새 물결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일단 개발진의 각오와 정성, 퀄리티는 합격점에 충분히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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