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의 게임 이용 장애 진단 기준 논란 존재... 국내에서도 대안 마련 중
게임, 희생양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활용될 방안 마련 필요
[게임플] 한국콘텐츠진흥원과 게임문화재단이 공동으로 주최한 2023 국제심포지엄 ‘게임 문화 “Game on Culture”’가 17일 막을 올렸다.
서울에 위치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17일부터 18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심포지엄은 게임 이용 장애에 대한 과학적 검증을 연구하고 게임을 하나의 고정된 틀이 아니라 의학과 인문학, 사회학 등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행사에 참여한 조현래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은 환영사를 통해 “이번 국제심포지엄이 예술성, 창의성, 오락성, 여가성, 대중성이라는 문화적 요소를 모두 갖춘 게임을 의료와 교육, 예술, 스포츠 등 여러 관점에서 조망해 게임의 문화적 가치를 재발견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번 심포지엄에는 미국과 호주, 덴마크 등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석학들이 참가해 발표를 진행한다. 발표에 앞서 연사들과 함께하는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Q. 실제 게임 문제로 병원을 찾는 환자들에게 WHO의 게임 이용 장애 진단 기준을 적용했을 때 의사들의 반응은 어떤가? 또한 이 과정에서 과잉 및 오진될 가능성은 없는지?
블라단 스타서빅(시드니대학교 정신의학 교수): 알다시피 논란의 여지가 많은 영역이다. 게임 이용 장애 혹은 인터넷 게임 장애(IGD)에 대한 진단 기준과 정확성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많다. 진단 기준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또 이것이 정당성을 가지고 있냐는 부분 역시 논란이 있다.
따라서 과잉 및 오진될 가능성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러한 논란 위에서는 모든 게임을 많이 이용하는 사람이 게임 이용 장애를 겪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장애를 겪는다는 진단을 받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Q. 최근 한국 검찰이 흉기 난동 및 살인 사건의 원인으로 게임 중독을 꼽았다. 정말 게임 중독이 살인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는지?
한덕현(중앙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게임중독을 직접적 원인으로 지명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사건의 본질을 아는 것이다. 본질은 게임을 흉내 내서 사람을 죽였다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정신보건에 대한 관리가 허술해 환자 혹은 환자 아닌 사람이 제대로 관리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가해자가 게임을 했다는 작은 요소가 확대하여 해석된 점은 정신과 의사로서 아쉬운 일이며,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국민들이 무서워하지 않는 사회가 여태껏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본질이 맞춰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Q. 게임을 수업에 활용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 시선으로 인해 겪은 어려움은 없었는지, 있다면 이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궁금하다.
김정수(원곡초등학교 교사): 현재 기능성 게임을 어떻게 활용해야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지 연구하고 있다. 이런 연구들이 계속 누적된다면 학부모와 교사들의 게임에 대한 인식도 좋아질 것이라 기대한다. 실제로 연구를 해보니, 학습에 어려움을 갖고 있는 아이들에게 게임을 통한 교육이 특히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와 같은 연구가 확장되면 인식 개선뿐만 아니라 새로운 교수학습 모델까지 만들어 내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Q. 현재 유럽에선 게임 이용 장애 분류에 대해 어떤 논의가 이뤄지고 있나? 또한 이번 WHO의 시도가 글로벌 게임 산업에 미칠 영향은 어떻다고 생각하는지?
에스펜 올세트(코펜하겐IT대학교 게임학과 교수): 유럽에 매우 많은 나라가 속해 있고, 나라마다 정책이 달라서 포괄적인 답변은 어렵다. 다만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경우 게임 중독에 대해 크게 우려하지 않는다. 특정 사회적 문제를 논할 때 게임을 연관시키는 경우가 거의 없다.
오히려 사회적으로 즐길 거리가 많지 않은 요즘, 게임은 일종의 문화로서 즐길 수 있는 매체로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Q. 게임이 예술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많은 사람이 동의하지만, 일부는 게임이 어째서 예술이냐 반문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에서 게임은 어떤 속성 때문에 예술로 구분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쥬노 킴(왕립덴마크예술학교 시각예술학과 교수): 최근 예술은 창의성이 강조되는 분야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 어떤 분야도 예술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예술을 논하는 데 있어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점과 비판적인 사고로 정해진 규칙에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점이다. 게임은 이러한 작용을 가능케 하는 플랫폼으로서 기능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게임 예술과 예술로서의 게임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게임이 어떻게 사회에 퍼지고 배포되는지가 이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어떤 경제적인 기준이나 사회적 상황을 봤을 때 게임이 어떻게 대표되는지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e스포츠는 일반적인 스포츠와 달리 종목을 만든 소유주의 저작권 문제를 겪는다. e스포츠가 스포츠로 나아가기 위해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가? 또 스포츠에 비해 e스포츠의 룰은 자주 바뀌는데, 이로 인해 발생하는 공정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있는가?
김기한(서울대학교 체육교육과 교수): e스포츠는 스포츠와 100% 같지 않다. 스포츠적 요소가 많이 두드러지는 것은 사실이나, 그런데도 이 둘은 구분될 수밖에 없다. 가장 큰 차이가 IP의 존재 여부다. e스포츠가 발전하기 위해선 스포츠 연맹과 함께 IP 소유자가 협력하는 게 중요하다. IP홀더가 있다는 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 역시 e스포츠의 생태계를 이끌어가는 주체라는 점이 중요하다.
또한 스포츠의 공정성은 표준화된 룰이 있고 이 룰을 모두가 따를 때 발생한다. 반대로 공정하지 않다는 것은 그 룰을 서로 납득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단순히 업데이트로 인해 룰이 자주 바뀐다고 해서 공정성의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주 룰이 바뀌더라도 양측 모두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룰이 마련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한국에도 질병코드 등록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를 위해 준비 중인 대안이 있는지?
조현래(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 WHO가 게임 이용 장애를 질병화 한 이후 한국에서도 이에 대한 논의를 계속 진행하고 있으며, 한국콘텐츠진흥원과 문체부는 현재 관련 코호트 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문제가 있는 걸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 문제가 있다면 그 원인과 결과가 무엇인지 정확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사건의 희생양을 만들기는 쉽지만 희생양을 만든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듯 문제에 대해 정확히 판단할 필요가 있으며, 관련 이슈들을 객관적으로 정리하며 논의가 나아가길 바란다.
이미 게임은 세상에 등장했으니 이를 어떻게 긍정적으로 활용하고 만들어 갈지 고민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를 희생양으로 삼아버리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왜곡된 정책만 발생하는 문제가 생길 것이다.
Q. 최근 한국에선 묻지마 살인 사건에 대한 원인을 게임으로 지목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해외의 입장은 어떤가?
블라단 스타서빅: 살인이나 자살 등 끔찍한 사고의 원인을 게임 중독으로 규명하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 작업이다. 사고의 뒤엔 다른 여러 원인이 분명히 존재한다.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고, 이를 분석해 보니 복잡하게 얽힌 원인이 배후에 있었다. 이를 단순히 게임을 원인이라 치부하는 것은 쉬운 원인을 찾기 위한 안일한 시도다.
에스펜 올세트: 최근에는 거의 모든 아이들이 게임을 한다. 이제는 오히려 게임을 안 하는 게 비정상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시점이다.
최근 미국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에 대한 여러 연구가 있었는데, 가해자들 대부분이 게임을 즐기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의 공통점은 시를 읽고 글을 쓰기를 좋아한다는 점인데, 이를 근거로 문학이 범죄를 야기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쥬노 킴: 스웨덴은 고등 교육 과정에서 게임을 활용한 교육이 이뤄지며 거의 모든 학생들이 게임을 즐긴다. 스웨덴 정부가 게임이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교육 과정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게임과 폭력을 연관 짓는 것에 대해 첨언하자면, 폭력을 가한 청년들의 대부분이 사회적 만족을 찾지 못한다. 특히 사회적인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이 관계를 맺지 못하거나 사회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만족감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원인을 찾자면 이런 부분에서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