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티마 온라인, 마비노기, 블소...
그밖에 수많은 가상공간에서 겪어온 게이머들의 '첫 교류'

[게임플] MMORPG는 게임을 넘어 사람과 사회의 이야기를 담는다.

1990년대 중반, MMORPG가 '그래픽 머드게임'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할 때부터 각광받은 이유가 있었다. 유저들이 실시간으로 같은 공간에서 이동하고 대화를 나눈다. 상대방 아바타의 행동을 직접 보면서 교감한다는 것은 당시 파격적인 경험이었다.

여기서 중요해지는 것은 '사람이 모이는 지점'이었다. RPG 대부분은 예나 지금이나 성장하고 싸우는 플레이가 기본이 된다. 즉, 굳이 성장을 멈추고 시간을 죽이면서 눌러앉아야 모여서 대화 나누기가 가능했다. 그래야 하는 '이유'가 필요했다. 

가장 먼저 기억에 남는 것은 '울티마 온라인'이었다. 놀라운 자유도로 등장한 MMORPG였던 만큼 캠핑 스킬까지 따로 존재했다. 나무를 캐서 모닥불을 만들고 불 붙이는 일에 성공하면 자신과 근처 다른 유저들에게 버프가 돌아가는 시스템이었다. 모닥불로 마크해놓은 위치에 빠른 이동도 가능했다.

캠핑에 숙달된 유저가 모닥불을 피우면, 근처로 자연스럽게 다른 캐릭터가 하나 둘씩 모였다. 가만히 앉아 있기엔 심심했으니 자연스럽게 악기 연주나 대화가 벌어졌다.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가 형성되는 과정이었다. 

'울티마 온라인' 속 캠프파이어
'울티마 온라인' 속 캠프파이어

왜 수많은 오브젝트 중에서도 모닥불이었을까. 오직 효율만 원한다면 불꽃 그래픽을 어렵게 처리할 필요 없이 거대한 돌을 하나씩 세워도 괜찮았다.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결국 RPG 속 판타지 라이프의 목적은 '낭만'을 향해 갔기 때문이다. 

그 낭만을 최대한도로 올린 게임으로는 '마비노기'가 있었다. 모닥불에 둘러앉아 할 수 있는 콘텐츠를 무수하게 파생시켰다. 직접 악보를 만들어 악기를 연주하고, 다른 유저들과 합주를 실시하면서 놀기도 했다. 불필요한 아이템을 태우다 보면 보상을 받거나 정령을 불러낼 수도 있었다.

밤 시간 던바튼에서 모닥불을 피우면 음악 연주나 식사가 열리는 모습은 흔했다. 유저뿐 아니라 GM들도 찾아와 실시간으로 이벤트를 열고 소통하던 기억도 아직까지 남아 있다. 마비노기의 캠프파이어는 낭만을 넘어 정교한 '소셜' 시스템이었다. 

'마비노기 영웅전'에서도 모닥불은 휴식과 만남을 상징했다. "모닥불에 앉는 것이 엔드 콘텐츠"라고 말하는 유저가 있을 정도. 버프 제공도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전투 사이 감정적 휴식이었다. 게임 플레이가 노동이 되지 않게 만드는 수단이기도 했다.

'블레이드 앤 소울' 속 모닥불
'블레이드 앤 소울' 속 모닥불

그밖에도 수많은 MMORPG에서 모닥불은 만남의 공간이었다. 엔씨소프트의 '블레이드 앤 소울'은 모닥불을 사람이 모일 수밖에 없는 마을과 던전 입구에 배치했다. 활용처도 함께 만들었다. 모닥불 앞에서 무기 수리가 가능하도록 기능을 넣은 것이다. 

유저들은 던전 파티를 구할 때 자연스럽게 모닥불 앞에 모였다. 던전과 마을을 오가다가도 수리를 위해 모닥불에 앉았고, 그 안에서 대화가 만들어졌다. 닉네임이 눈에 익기 시작하면 사람은 친근감을 느낀다. 교류가 생기는 '트리거'가 만들어진 것이다.

서비스 종료된 '테라'는 전투를 계속할수록 컨디션이 나빠져 모닥불에서 잠시 쉬어야 하는 시스템이 존재했다. 컨디션을 채운 뒤 모닥불에 부적을 태워 강력한 버프를 얻기도 했다. 역시 필요에 의해 사람들을 서로 마주치게 만드는 지점이었다.

모닥불을 중심으로 이미지를 자극한 미출시작 '마비노기 모바일'
모닥불을 중심으로 이미지를 자극한 미출시작 '마비노기 모바일'

유저를 자연스럽게 소셜로 유도하는 일은, 어쩌면 게임사의 운영 편의에서 비롯됐을지도 모른다. MMORPG에서 시간이 남고 "그래서 이제 뭐 함?"이라는 여론이 나오기 시작하면, 유저가 다른 게임으로 이탈할 위험이 생긴다.

매번 개발을 통해 새로운 콘텐츠를 공급하는 속도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사람 사이의 이야기는 스스로 무한히 만들어낼 수 있다. 그것을 유도하기 쉽다는 장점이 바로 MMORPG가 오랜 시간 주류 게임으로 생존한 비결이기도 하다.

사람간의 만남은 유저들에게도 소중한 자산이었다. 자기 캐릭터의 숫자를 늘리는 일 외에도 중요한 가치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사람인 이상 무한히 사냥이나 노동은 불가능했기에, 잠시 숨을 돌리는 시간으로도 사용할 수 있었다.

(이미지: 마비노기 공식 유튜브)
(이미지: 마비노기 공식 유튜브)

'마비노기' 18주년 여름 업데이트를 앞두고 과거 기억이 떠오르게 된다. 장수 MMORPG들은 신규와 복귀 유저를 적극 환영하기 마련이다. 그곳으로 유저가 돌아가는 이유는, 보통 거기서 만난 사람과 그 시절 자체가 그립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모닥불과 음악은 당시 유저 스스로가 만들어내던 이야기의 매개체가 되곤 한다.

'메타버스' 키워드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시대다. 메타버스는 현실과 비슷한 교류 활동이 벌어지는 가상 공간으로 정의된다. 어쩌면 수많은 게이머들은 이 모닥불 속에서 메타버스의 시작점을 맞이한 것이 아닐까. 그것이 바로, 경제와 산업 논리로 말하는 메타버스보다 더욱 직관적인 경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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