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운영, 인게임 플레이 모두 한발 앞섰기에 가능했던 승리
다시 보여준 '페이커'의 저력... 최근 리그, 국제전 아쉬움 씻어낼 기회

[게임플] 완성된 시나리오 위에 춤추는 완벽한 서커스였다. 모두의 바람대로 '페이커'와 T1이 리그와 팀을 결승 무대로 이끌었다.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LoL)’ 2023 월드 챔피언십(이하 월즈) 4강 T1이 JDG(징동게이밍)를 3대1로 승리했다. 'LoL' e스포츠 역사상 가장 뜨거운 시리즈를 만들어 낸 T1의 경기력은 팬들의 기대와 우려를 아득히 뛰어넘은 수준이었다.

물론 LPL의 거인 JDG의 무릎을 꿇리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하지만 T1이 보여준 경기 운영과 인게임 플레이는 시리즈 승리를 가져올만 했다. JDG 역시 매 경기 지금껏 보여줬던 최고점의 경기력으로 팬들의 응원에 보답했지만, 말 그대로 T1이 격차를 보여줬다.

■ 1세트 - 시리즈의 향방을 결정하다.

이번 월즈에서 가장 중요한 다전제 1세트였다. 시리즈의 향방을 결정할 밴픽 싸움에서 T1이 먼저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다. JDG는 코인 토스에서 승리했음에도 레드 진영을 골랐다. 이번 월즈 블루 진영 승률은 61.8%다. (지난 월즈 블루 진영 승률은 52.5%였다.) OP 챔피언이 확실한 이번 월즈에서 밴픽 주도권을 갖기 좋은 블루사이드의 이점이 드러나는 경기 결과다.

그럼에도 T1이 8강 LNG전 승리 과정에서 보여준 레드사이드 3연승은 수치만으로 확인할 수 없는 전략이었다. JDG 역시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까다로운 T1의 바텀 비틀기를 피하면서 ‘룰러, 미씽’ 듀오에게 더 편한 구도로 경기를 재편하고자 했을 것이다.

JDG는 두 개의 바텀 챔피언(애쉬, 칼리스타)과 뽀삐를 밴 카드로 소모하고 OP챔피언 나눠 먹기를 시전했다. 과정에서 이번 시리즈 중요한 고지를 차지하는 두 개의 OP 챔피언 럼블과 오리아나가 풀렸고 T1이 오리아나를 먼저 가져갔다.

JDG는 남은 OP 챔피언 럼블, 오리아나를 대처하기 위해 아칼리를 뽑아 들었다. 두 번째 밴 페이즈에서 세나, 케이틀린까지 닫은 JDG는 T1의 바텀 비틀기를 최대한 피하고 자야를 뽑아냈다.

이에 T1은 이번 월즈에서 한 번도 사용된 적 없는 ‘진-바드’ 조합을 꺼내 들면서 시리즈 첫 세트 바텀 구도를 결국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끌고 갔다. 그럼에도 럼블, 자야, 아칼리를 뽑아낸 JDG 측이 후반 밸류 측면에서 나쁘지 않은 것은 분명했고 두 팀 모두 할 말이 많은 상태에서 경기가 시작됐다.

그러나 의외로 경기 구도는 이른 시간에 무너졌는데 T1이 먼저 ‘오너’의 렐을 이용해 JDG의 탑 ‘369’ 럼블을 무너트리면서다.

T1은 이번 시리즈 다양한 정글 구도를 짜왔다. 탑 균형이 중요했던 1세트에서는 끝까지 ‘오너’를 숨기면서 동선을 예측할 수 없도록 만든 것이 유효하게 작용하며 첫 킬을 쉽게 가져갔고 2세트에서는 바텀 주도권을 확실히 가져오기 위해 팀 전체가 모여 압박했다.

'오너'의 초반 정글 설계가 '카나비'를 흔들었다.

‘오너’를 중심으로 한 T1의 팀플레이는 게임 내에서 매번 중요 포인트에 맥을 짚었다. 이번 시리즈의 숨겨진 일등 공신은 아무래도 '오너'다. JDG는 지난 LNG 전에서 상대 정글 ‘타잔’을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괴롭혔던 ‘오너’의 뽀삐를 견제하며 시리즈 내내 밴 카드로 소모했다.

탑에서 ‘오너’의 설계와 미드에서 ‘페이커’의 받아치기는 JDG를 크게 흔들리게 만들었다. 다시 한번 탑에서 터진 ‘제우스’의 승전보, ‘구마유시’의 활약으로 첫 세트를 승리로 가져왔다. 

■ 2세트 - JDG의 저력, '유관 행동'

JDG는 럼블을 여는 밴픽 구도를 파기하고 판을 새롭게 짰다. KT에게 1세트 패배 이후 밴픽을 수정하면서 시리즈를 승리로 이끈 JDG의 유연함이 다시 한번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369’의 크산테를 이용한 상체 잠그기 전략이 제대로 먹힌 세트였다.

케이틀린, 애쉬로 바텀 주도권에 힘을 준 T1은 바텀 힘싸움에 아트록스를 끌어 쓰는 등 많은 자원을 투자했다. 하지만 과정에서 '룰러'의 슈퍼 플레이가 터져 나오고 와중에 크산테가 편하게 성장하는 구도가 만들어지는 등 결과적으로 바텀에서 강한 주도권을 가져오지 못했다. 결국 과성장한 크산테, 반반으로 따라온 칼리스타를 막지 못하면서 T1이 패배했다.

■ 3세트 - T1의 서커스는 이제 시작이다.

T1과 JDG의 바텀 구도가 역전됐다. 강한 바텀 라인 주도권을 가져오는 바루스, 애쉬 픽과 중반 한타에서 괴력을 보이는 ‘카나비’의 오공까지 1페이즈에서 JDG는 만족할 만한 성과를 가져왔다. 실제로 인게임 내에서도 바텀이 시종 주도권을 가져갔고 ‘카나비’의 오공은 탑 레넥톤의 힘을 이용해 ‘제우스’를 괴롭히며 경기를 유리하게 이끌었다.

T1은 밀리는 와중에 후반으로 경기를 끌고 가기 위해 용과 전령을 처치하며 힘을 모으는 선택을 내렸다. 경기 6분과 11분에 바텀 주도권이 크게 밀리는 상황이었지만, 빈틈을 파고든 ‘오너’의 선택이 주요했다.

어느새 경기 17분, 2개의 용과 2개의 전령을 모두 차지한 T1을 본 JDG는 조합의 힘을 제대로 쓰기 위해 한타를 유도했다. 오공, 레넥톤, 탈리야로 이어지는 중반 힘 싸움에 가장 큰 위력을 보이는 상체 조합과 바루스, 애쉬까지 JDG의 힘이 부족할 리 없었고 T1의 힘은 아직 미완의 상태였기에 한타 결과는 사실상 불 보듯 뻔했다.

하지만 이때 T1의 진짜 서커스가 시작되면서 시리즈의 기류가 완전히 넘어갔다. 슈퍼 플레이에 슈퍼 플레이의 연속이었다. 오너가 보여준 클러치 플레이에 이은 2차 타워 앞에서 ‘페이커’가 보여준 아지르 궁극기는 거인 JDG가 무릎을 꿇는 결정적인 한 방이었다.

■ 4세트 - JDG DOWN!, LPL DOWN!

시리즈 마지막이 될 수 있는 4세트, JDG는 다시 한번 밴픽 구도를 비튼다. T1이 승리한 경기 패턴을 막고 정글 힘 싸움에 밀리지 않기 위해 뽀삐, 렐을 밴카드로 소모했다. 앞선 T1의 승리 세트에서 ‘오너’의 렐은 상대하기 까다롭다고 인정하는 JDG였다.

자르반, 오리아나가 풀린 상황에 JDG는 오리아나를 가져가고 T1이 자르반, 바루스를 가져갔다. 이번 시리즈에서 바텀 티어가 정립이 되는 모습이다. 칼리스타가 밴이 된 상태에서 바루스는 티어 픽으로 뽑히기 충분했다.

JDG는 이어서 벨베스, 아트록스를 뽑아내며 상체에 힘을 줬고 경기 내적으로도 이와 같은 기조를 이어간다. 특히 T1이 요네를 4픽에 가져가면서 탑 격차를 더 크게 벌릴 요량이었기 때문이다. 경기 9분대 탑-바텀을 스위치 하면서 까다로운 구도를 만들어주고 ‘카나비’의 벨베스가 연속 득점에 성공하면서 초반 경기를 유리하게 풀어나갔다.

T1은 요네, 아지르를 아트록스에 계속 붙이면서 성장을 지연시키고 사이드 주도권을 가져오는 한편, JDG는 벨베스, 오리아나 중심의 난전에서 조금씩 이득을 얻어나가며 경기를 주도했다. 그러나 경기 20분 ‘카나비’는 2차 타워 안의 ‘구마유시’를 무리하게 노리다 미끄러졌고 T1이 이를 놓치지 않고 늘어지면서 바론까지 잡아냈다.

T1은 시리즈 내내 보인 결정력을 마지막 세트에서도 발휘했고 한 치의 흔들림 없이 그대로 세트를 마무리했다. 결과적으로 밴픽과 인게임 전략, 각 선수의 역량 모두 한 수 앞섰던 T1이었기에 JDG를 꺾을 수 있었다.

LPL의 거인 JDG는 그랜드슬램 달성을 목전에 두고 시즌을 마무리했다. 골든 로드를 향한 여정을 한 발 남겨둔 ‘룰러’는 다시 한번 ‘페이커’와 T1의 벽 앞에 멈추고 말았다.

‘페이커’는 위기의 상황에서 스스로를 증명했다. T1은 최근 리그와 국제전에서 보인 부진을 말끔히 씻어내며 최고의 자리에 다시 올라섰다.

‘페이커’와 T1은 LCK와 팀 외에 경기 흥행 측면에서도 이번 월즈를 구원해내는 데 성공했다. 430만 뷰어십을 기록한 이번 경기는 지난 2022 월즈 결승 T1과 DRX의 경기 514만에 이은 'LoL' e스포츠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시청 기록이다.

2년 연속 월즈 결승에 오르는 T1은 이제 마지막 남은 중국 팀 WBG를 만난다. 4강 4중국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아낸 데 이어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 JDG까지 꺾어낸 '페이커'와 T1이 LCK의 안방 서울에서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을지 전 세계 팬들의 이목이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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