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롱으로 시작된 유행, 실력 통해 '진짜 숭배'로 바꾼 사연

[게임플] "혼란한 스토브리그를 보니 문득 10년째 한 팀에서 전설을 쓴 페이커가 새삼 대단하다고 느껴지네."

e스포츠를 넘어 온갖 분야에서 '숭배'가 쏟아지고 있다. 19일 2023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결승에서, '페이커' 이상혁이 이끄는 T1이 강력한 중국 LPL 팀들을 연파하고 7년 만에 트로피를 거머쥐었기 때문. 특히 페이커는 롤드컵 4회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금자탑을 쌓아 'e스포츠의 신' 자리를 더욱 굳혔다. 

대통령의 축전을 비롯해 모든 업계에서 페이커를 향한 찬사가 쏟아졌으며, 지상파 모든 뉴스를 비롯해 언론에서도 열풍에 힘을 싣는다. 한국에서 개최된 롤드컵에서 LoL 최강 한국의 지위를 2년 연속 굳혔고, 그것을 해낸 선수와 팀의 스토리도 위대했던 탓이다.

그중에서 롤드컵 전부터 계속되던 것이 '기습 숭배' 탬플릿이다. 전혀 관련 없는 주제에 갑자기 "문득 ~ 한 페이커가 새삼 대단하다고 느껴진다"며 이야기를 확 틀어버리는 것. 인터넷 커뮤니티와 방송에서는 "젠장, 또 형이야", "대상혁" 등으로 이를 접수하는 반응도 자주 볼 수 있다. 

2018년경 NBA매니아 사이트에서 붙은 "새삼..." 논쟁
2018년경 NBA매니아 사이트에서 붙은 "새삼..." 논쟁

사실, 이 밈의 기원은 부정적이었다. 생각보다 오래 전 시작된 밈이다. 대략 2018년경, 농구 커뮤니티 NBA매니아에서 다른 선수의 부진이나 불행에 "새삼 르브론이 대단하게 느껴지네요", "릅의 위엄이네요"라는 반응이 자주 달리는 것에 갈등이 벌어졌고, 이런 팬덤 현상을 비꼬기 위한 용도로 함께 사용되곤 했다.

그리고 올해 들어, 디시인사이드 내 축구 커뮤니티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대상으로 적극 사용하면서 조롱과 '뜬금 유머'로서의 의미가 커졌다. 호날두는 '노쇼' 사태 이후 한국에서 이미지가 좋은 선수가 아니다. 하지만 캐릭터성은 확고하고 인지도도 높았기 때문에, 웃자고 쓰는 밈으로써 활용도가 퍼지는 계기가 됐다.

그 대상은 롤드컵을 앞두고 페이커로 옮겨졌다. 한 분야에서 정점에 오른 선수는 안티도 자연스럽게 따른다. 페이커의 커리어와 상징성은 비교 대상이 없었지만, 반대급부로 잠시 준우승을 거듭했다는 것만으로도 비난의 소재가 된 것.

하지만 페이커를 향한 '기습 숭배'가 더 넓게 퍼지자, 역으로 조롱의 의미는 희석됐다. 안티보다 팬 비중이 압도하고, 오히려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이 극히 적기 때문. 나중에는 어원을 잘 모르고 쓰는 경우도 잦을 만큼 자연스럽게 쓰는 농담으로 정착됐다. 

범용성도 굉장히 넓다. 유명 스타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쓸 수 있고, 기습을 넘어 '상습 숭배'로 표현하기도 한다. '기습 목격', '기습 화장실' 등 기습을 살린 다른 표현으로도 점차 쓰인다. 급기야는 "우리는 상습 숭배하고 있었는데 너희가 기습 목격한 것" 같은 발상의 전환도 보인다.

그리고, 페이커는 일말의 조롱 의미마저도 스스로의 능력을 통해 환호성으로 바꾸었다. 

롤드컵 8강 LNG와의 대결에서 미드 라인전부터 숨도 쉬지 못하게 압박한 끝에 3:0 압승을 이끌었고, 우승후보 1순위로 불린 징동게이밍과의 4강전은 불리한 전황에서 아지르 슈퍼플레이를 통해 시리즈 전체 흐름을 뒤집었다. 

밈의 역사를 돌이켜볼수록, 페이커가 '상습 숭배'를 받기 마땅한 선수라는 것이 재차 확인된다. 2013년 데뷔부터 세계를 흔들었고, 10년이 지나서도 같은 모습으로 흔들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한 번의 사고와 논란도 없었다. 또 흔들릴 일이 있더라도, 결국 다시 일어나 선두에서 역사를 써내려갈 선수라는 것을 모든 대중이 알게 됐다.

압도적인 업적과 퍼포먼스, 그리고 프로 정신은 부정적 밈도 유쾌하고 밝은 밈으로 재탄생시킨다. 문득, 헤이터들의 끊임없는 괴롭힘마저 신화의 소재로 흡수해버린 페이커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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