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유려한 그래픽, 친절한 UI... 게임 장르 충실히 임한 모습
전략적, 창의적인 전투 개념 필요한지는 의문, 속성 상성 강조 필요
'팰'의 매력으로 장르-게임 융화, 독립적인 이야기 부재는 한계 명확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일본의 중소 개발사 포켓페어가 선보인 TPS 오픈월드 생존 제작 게임 ‘팔월드(팰월드)’는 단 사흘 만에 전 세계를 삼켰다. 인터넷 방송으로 컬트적인 인기를 끌 것이란 예상과 달리 실제로 게임을 구매하고 플레이하는 유저들의 숫자가 엄청났다. 기자 역시 열풍에 휩쓸린 유저 중 한 사람이고 ‘팔월드’에 발을 들였다.

처음 맞닥뜨린 ‘팔월드’는 웃음이 난다. '팔월드'의 세계는 분명 다르며 완전히 새로운 단단한 지반으로 만들어진 곳이었지만, 모두 어디선가 본 것이란 기시감을 떨칠 수 없다. 

의외로 유려한 그래픽과 친절한 UI, 오픈월드 생존 게임에 맞는 세밀한 세계 단계 조정 등 게임 장르에 충실히 임했다. 게임의 핵심 콘텐츠인 ‘팰’은 자기 역할에 맞게 열심히 움직인다.

튜토리얼은 꽤 단순하지만, 섬세한 구성으로 유저를 유도한다. ‘팔월드’의 큰 세 가지 성장 루트를 경험하도록 제안한다. 먼저 플레이어의 분신인 캐릭터의 성장, 캐릭터가 잡아서 다양한 용도로 쓰는 ‘팰’의 성장 그리고 거점 기반의 마을 성장이다.

캐릭터는 다양한 행동을 통해 경험치를 얻고 스테이터스 포인트를 투자해 능력치를 올린다. 체력, 기력, 공격력, 방어력, 작업 속도, 소지 중량을 키울 수 있고 포인트는 레벨 당 하나씩 얻는다. 공격력 스탯이 투자처 중 가장 효율이 낮다. ‘팰’과의 협력 전투를 강요하기 위함인 것인지 개발사의 밸런스 조정 실패인지는 알 수 없다.

캐릭터는 허기를 느끼기도 하며 추위와 더위를 타기도 한다. 왼쪽 아래 상태 창에 나타나며 시간의 흐름도 인지할 수 있다. 제작대를 이용한 크래프팅을 기반으로 생존을 이어 나간다는 점은 한때 혹은 지금도 유행 중인 생존 게임의 그것을 떠올리게 만든다.

팰의 성장은 ‘힘의 석상’과 ‘팰 융합기’를 통해 가능하다. 힘의 석상에서는 일부 팰과 상자 등에서 얻을 수 있는 팰 영혼을 사용하고 팰 융합기에서는 같은 팰들을 응축해서 쓸 수 있다.

이미 '어둠의 포켓몬'이라는 수식어가 유명하지만, 응축이라는 단어는 꽤 낯설다. ‘팔월드’에서 팰은 모험을 떠나는 소중한 친구의 역할은 물론 강화와 식량, 탈것, 노역, 몬스터 등 다양한 역할을 소화한다. 

팰은 전통적인 포켓몬 개념보다는 자동으로 전투를 수행하는 애완 펫에 가깝다. 포켓몬스터 IP 기반 게임들이 턴제 전투를 수행하는 것을 고려하면 당연한 차이다. 캐릭터 소유의 팰은 자율주행 자동차처럼 필드 위의 팰과 전투를 펼친다.

게임 중에 전략적이거나 창의적인 전투 개념이 필요한지는 의문이다. 튜토리얼이나 게임 초반부에 속성 전투를 강조하지 않았고 게임 초반 진행 중 팰 간의 속성 상성보다 레벨과 성장에 앞설 수록 더 좋은 성능을 내는 것으로 확인된다.

거점은 거점 임무를 완수하면서 레벨이 증가하고 수용할 수 있는 팰의 인원이 커지고 거점 숫자도 늘어난다. 거점에서 ‘팰’에게 자동화 역할을 수행하도록 할 수 있다.

벌목장, 채석장, 열매 농원까지만 만들어도 거점 내 ‘팰’은 벌목과 채석 식사와 휴식까지 자동으로 수행하며 재료들을 상자에 가득 채워준다.

귀찮은 업무들을 대신하거나 팰을 잡기 위해 모험을 떠난 유저를 돕는다. 각 팰은 작업 적성을 가지며 팰에 따라 한 개 이상의 적성을 가진다. 작업 적성에 따라 자동 임무를 수행한다.

거점 관리는 림월드와 같은 생산 관리에 중점을 둔 게임들을 이미 선행한 유저라면 쉬운 수준이다. 거점에는 가끔 랜덤으로 습격 이벤트가 발생하고 팰들이 이를 방어하기도 한다. 거점 관리는 난도가 높지 않아 가볍게 즐기는 수준이다. '팰'들이 열심히 뛰어다니며 노동하는 것을 보면 괜히 흐뭇하고 마음이 넉넉해진 기분이다.

게임 초반 거점 관리를 어느 정도 마쳤다면 장비를 갖추고 본격적인 모험에 나선다. 장비를 갖추고 던전을 찾거나 아주 먼 지역으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팰들을 찾는 것이다. 

튜토리얼을 지나치고 정말 마음대로 게임을 해본 유저들은 알겠지만 '팔월드'의 월드가 '젤다의 전설'과 같은 오픈월드 작품만큼 섬세하게 짜여진 것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시작 초기 이동 가능한 대부분의 지역은 바다 근처나 눈 내린 산맥이나 등장하는 팰의 종류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거대한 맵에서 지역 특색을 알아보려면 상당히  높은 레벨의 팰이 등장하는 지역으로 나서야 한다.

오픈월드 게임에서 흔히 사용하는 연출인 높은 지대와 가려진 지형에서도 특색 있는 무언가를 찾기는 어려웠다. 산 하나를 등반해서 얻은 것은 겨우 상자 하나였고 좁은 협곡 사이를 지나 찾은 대나무 숲에서 마주한 것은 텅 빈 지형이었다.

만약 '팔월드'에서 게임을 수식하는 오픈월드 게임만큼의 상호작용을 기대하는 유저라면 다소 실망스러울 것이다. 생산 관리와 몬스터 수집, 전투 역시 각 장르에서 대표작으로 자리한 게임만큼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팰'과 다양한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는 것만큼은 상당히 만족스러운 경험이다. 게임프리크가 포켓몬스터 IP로 구현하지 않았던 상상력을 '팔월드'가 구현했다. '팔월드'의 핵심은 팰이다. 팰이 아닌 중세 판타지의 흔한 몬스터가 자리했다면 이만큼의 재미는 없었을 것이다.

얼리 액세스 단계에서 열광적인 인기를 끌어낸 데 성공한 이 게임이 가야 할 곳은 분명하다. 오픈월드 상호작용은 물론 모험의 중추가 되어줄 추가 팰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게임의 한계도 느껴지며 불안감도 생긴다.

전 세계 유저들의 빠른 게임 소화력은 콘텐츠를 금방 바닥나게 할 것이고 111종의 팰은 한 달이면 쓸모를 다할 것이다. 게임에 녹아든 장르를 하나로 뭉치게 만드는 팰들이 역할을 다하는 시기가 다가오기 마련이다.

오픈월드 게임에 내러티브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인기와 관심을 받을 정도로 재미있는 이유에 '포켓몬스터' IP가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팔월드'는 자신들이 선택해야 할 장르와 게임을 잘 선별했고 게임에 훌륭히 녹여냈다. 그러나 이야기의 부재는 치명적이다. 단순히 '팰'의 매력을 가지고 오픈월드를 꾸려나간다는 것은 어렵다. 현재 사용자들은 '팰'을 보고 자연스럽게 기존 포켓몬스터 IP를 떠올리며 자연스레 머릿 속으로 혼자만의 서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런 스키마는 결국 언젠가는 수명을 다할 것이다. '팔월드'가 자신만의 매력적인 이야기를 구축하지 않는다면 샌드박스 게임으로 사용자들이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기를 기대해야 한다. 

개발사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팰과 콘텐츠를 추가할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얼리 액세스 단계의 게임 볼륨만으로 전 세계 게이머들에게 재미를 선사했다. '팔월드'에 추가될 팰과 신규 콘텐츠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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