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황한 설명 없이 장르 핵심만 얘기하고자 하는 효율성 보여
스킬 빌드, 아이템 제작 재미 높지만 번역과 서버 문제 가장 큰 장벽

핵 앤 슬래시 ARPG 장르에 또 다른 선택지가 놓였다.

‘라스트 에포크’는 장르의 핵심을 제외한 주변부는 과감히 도려내고 충실히 할 것들만 채워 넣었다. 장황한 설명 없이 단축어로만 얘기하고자 하는 효율성은 던전 크롤러, 핵 앤 슬래시 장르에 잘 어울린다.

캐릭터 커스터 마이징은 생략되어 있으며 가이드에 따라 액트를 진행하면 된다. 스펙 업을 위한 귀찮은 부가 퀘스트가 괴롭히지 않는다. 또 게임 시작과 함께 자원 소모 걱정 없이 스킬을 난사할 수 있다.

포션을 채워 넣거나 제작하는데 시간을 쓰지 않아도 되며 죽어도 경험치나 골드를 잃지 않는다. 직업과 전문화 선택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택에는 친절하게 기회를 다시 준다.

직업 선택도 직관적이다. 이름만 다를 뿐이지 ARPG 팬들에게는 익숙할 직업들로 엄선했다. 파수병, 도적, 마법사, 원시술사, 복사 다섯 개 직업은 생김새부터 기술 설명까지 RPG 장르 문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게임을 시작해 액트에 진입하면 ‘에테라’라는 곳에 진입하게 된다. ‘라스트 에포크’의 세계관 내에서 주인공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다니면서 시간선의 주요 일들을 수정하는 것이 목표다.

아마도 많은 유저에게 이 이야기가 그다지 중요한 지점은 아닐 것이다. 현재는 한국어 번역이 미흡한 상태이며 버그로 자막이 보이지 않거나 말하고 있지만, 자막을 보여주지 않는 구간도 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나 세계관이 크게 와닿거나 매력적인 게임은 아니다. 모험을 기대했다면 크게 실망할 가능성이 있다.

15레벨 이후로 전문화를 선택하고 이때부터 조금 복잡한 단어들이 추가된다. ‘디아블로4’와 ‘패스 오브 엑자일’의 중간 사이라고 일컬어지는 빌드 시스템이다. 각 캐릭터에게는 기본 스킬이 존재하며 패시브 트리 포인트 추가에 따라 스킬들이 잠금 해제된다.

자신의 전문화뿐만 아니라 타 전문화 패시브에도 포인트를 투자하고 스킬을 얻을 수 있지만, 스킬 전문화 슬롯에 스킬을 올려두고 사용할 수는 없다. 스킬 전문화 슬롯에 원하는 스킬을 올려두면 각종 다양한 추가 어픽스를 붙이고 또 스킬 피해를 광역에서 단일 대상으로 바꾸거나 반전시키는 등의 새로운 게임 플레이를 도모할 수 있다.

전문화 시스템의 넓이는 게임에 익숙해지는 액트 끝에 익숙해진다. 이후 운명의 모노리스 구간부터 빌드 연구에 본격적으로 매진할 수 있는데 여기서 앞서 언급됐던 한국어 번역의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같은 스킬 명도 노드에 따라 다르게 표시하는 경우가 있어 혼동을 준다. 버프 효과 중 하나인 실버 슈라우드(Silver Shroud)는 실버 베일, 백색 수의, 은색 수의 등으로 번역되어 있다.

‘라스트 에포크’ 전체 흐름을 봤을 때 게임은 분명 난도가 높지 않은 편이며 진입 장벽이 낮다. 하지만 번역이 게임을 어렵게 만든다. 외부 요인이지만, 게임을 즐기는 데 큰 역할을 하는 부분이므로 함께 평가할 수밖에 없다.

게임 인트로부터 시작되는 자막의 압박.
게임 인트로부터 시작되는 자막의 압박.

이 문제는 이제 설명할 아이템 제작에도 있다. ‘라스트 에포크’는 아이템에 붙는 어픽스를 조각으로 저장할 수 있고 조각은 아이템을 분해하거나 사냥 중에 얻을 수 있다. 조각은 재료 아이템으로 따로 저장되며 크래프팅 탭에서 자유롭게 붙일 수 있다.

조각과 강화 잠재력으로 수치와 한계를 명확히 하면서도 룬과 문양을 이용해 무작위성을 추가해 아이템 획득에서 얻는 재미뿐만 아니라 제작의 재미도 반경을 넓혔다. 거칠게 말해 강화 시스템도 함께 있는 것이다.

매직이나 레어 수준의 아이템도 옵션과 크래프팅에 따라 쓸만하게 만들 수 있고 캐릭터 파워에 유의미한 영향을 준다. 게임 후반 진입부터는 나에게 필요한 어픽스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이때 전리품 필터를 이용해 나에게 필요한 어픽스만 구분할 수 있다. 5년의 얼리 액세스 동안 갖춰진 커뮤니티 덕분에 전리품 필터를 일일이 설정할 필요는 없다.

게임 후반 엑잘티드 등급의 아이템을 줍는 재미가 쏠쏠했다.
게임 후반 엑잘티드 등급의 아이템을 줍는 재미가 쏠쏠했다.

대신 필터를 갖추면서 아이템이 쏟아지던 파밍 경험은 다소 줄어든다. 대신 파밍 보상 구간이 조금 더 짧아진다. ‘운명의 모노리스’는 무한히 반복되는 던전들이 수놓아진 일종의 로그라이크 던전 크롤러 시스템이다. 각 던전 즉, 세션의 전체 길이는 상당히 짧으며 다양한 보장된 보상과 예측 불가능한 아이템 보상을 제공한다.

또 다른 엔드 콘텐츠인 ‘아레나’에서는 몬스터 웨이브가 쏟아지고 웨이브를 많이 밀수록 더 큰 보상을 받게 된다. 일정 구간마다 몬스터를 강화하고 보스 보상을 높이는 선택지가 주어지며 원하는 아이템 부위 드롭 확률을 높일 수 있다.

단순하지만, 핵 앤 슬래시 장르의 경험을 짧고 자주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고 무작위, 확정 보상을 적절히 배치했다. 또한 모노리스 던전은 퀘스트 에코를 이용해 난이도를 적정 수준마다 높여 턱을 높인다. 퀘스트 에코에서 발목이 잡힌 유저는 캐릭터 빌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고 스킬과 아이템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려 노력한다.

모노리스는 무한한 파밍과 도전 의식을 동시에 일으킨다.
모노리스는 무한한 파밍과 도전 의식을 동시에 일으킨다.
아레나 역시 도전과 보상의 기회를 적절히 조화했다.
아레나 역시 도전과 보상의 기회를 적절히 조화했다.

결론적으로 ‘라스트 에포크’는 군더더기 없는 장르적 재미를 선사한다. 보상과 도전, 확률과 확정성을 적절히 배치해 지루하지 않은 게임 플레이를 제공한다. 같은 장르 내에 훌륭한 마감과 짜임새를 보여주는 타 게임과 재미 측면에서는 견줄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여러 번 설명한 번역 문제가 일부 국가 유저에게 꽤 큰 허들이며 서버 문제 또한 그렇다. 최근에는 서버 문제가 해결된듯 하지만, 17,000명이 넘는 대기열에서 세 시간 넘게 기다린 적도 있다.

'라스트 에포크' 개발진이 5년의 얼리 액세스 동안 게임 개발에 충실히 임한 만큼 해당 문제들이 이른 시일 내 해결되리라 예상한다. 라이브 서비스 게임을 표방하며 약 3개월의 시즌(사이클)으로 새로운 재미를 약속한 만큼 앞으로의 서비스 운영 방향에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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