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콘텐츠 수급 넘어 게임 플레이 깊이의 문제
'디아4' 근본 문제인 그라인딩 시스템 획일화 해결 필요

뜨거운 지옥의 불길이 차갑게 식었다. ‘디아블로4’에 몰렸던 관심이 출시 반년 새 놀랍도록 사그라들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최근 ‘디아블로4’는 시즌 3 ‘피조물의 시즌’을 시작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시즌으로 평가되고 있다. 두 번째 시즌에서 분명 유저 평가가 반등했는데 이번 시즌은 크게 불호를 표현하는 유저들이 늘었고 복귀를 거부하기도 한다.

최근 예정된 엔드 게임 콘텐츠 업데이트도 미뤄지면서 ‘디아블로4’에 우호적이던 크리에이터들도 비판에 나선 지경이다.

지난해 블리즈컨에서 개발진은 “더 많은 엔드 게임”을 세 번이나 강조하며 ‘지르의 도살장’ 콘텐츠 업데이트를 소개했다. 난도가 높은 엔드 게임 콘텐츠로 도전이 쉽지 않았지만, 유저들을 즐겁게 만들었다.

세 번째 시즌에서 더 많은 엔드 게임 콘텐츠를 선보일 것으로 예상했던 유저들에게 개발진은 추후 업데이트를 약속했고 해당 업데이트는 현재 무기한 연기 상태다. 블리자드 커뮤니티 매니저 아담 플레처는 오늘 16일 자신의 X(트위터)에서 다음 주 모닥불 대화를 통해 시즌3 시련의 터와 순위표에 대해 다루겠다고 약속한 상태다.

엔드 게임에 대한 유저들의 갈증은 단순한 콘텐츠 업데이트가 아닌 게임 플레이 깊이 추가에 대한 요청이다. ‘디아블로4’는 다층적인 게임 플레이 경험을 선보이지 못하고 있다.

장르 특성에 기인하기도 하는데 게임 시작과 함께 플레이어는 끊임없이 쏟아지는 적들을 물리치는데 시간을 투자하고 그 사이에서 아이템을 줍는 ‘그라인딩’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런'한다.

유저는 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즐겁지 않거나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 정체를 느낄 때 지루함을 느끼고 게임을 떠난다. 프리 시즌과 시즌 1이 직면했던 비판은 이것이다. 몬스터 밀집도 감소, 던전 구성의 불편함, 아이템 획득처 부족, 아이템 시인성 부족 등의 문제가 언급됐다.

시즌 2에서 개발진은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몬스터 밀집도가 크게 늘고 던전 구성의 불편함도 줄었다. 신규 우두머리 우버 두리엘의 등장으로 목표 도달 가능성을 키웠다.

세 번째 시즌은 이 틀을 그대로 유지하긴 했지만, 추가된 신규 콘텐츠가 다시 그라인딩 과정을 즐겁지 않게 만들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위험한 함정이 가득하다는 컨셉트의 지하 전당 던전과 전혀 강해 보이지 않는 청지기 동료는 유저들의 원성을 살수 밖에 없다. 여기에 미비된 엔드 콘텐츠까지 더해졌고 유저들은 이전 시즌보다 더 좋지 못한 상황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시즌 2에서 호평받은 그라인딩 시스템 우버 두리엘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여러 이유로 비판의 대상이 되지만, 한 줄 요약하면 그라인딩 시스템의 획일화다.

‘디아블로4’는 시즌 2 이후부터 파워 커브가 완만하게 상승한다. 클래스마다 편차는 존재하지만, 약 80레벨에 도달하면 캐릭터는 우버 두리엘을 포함해 모든 그라인딩 콘텐츠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현재 우버 두리엘은 그라인딩의 최상층에 있고 속삭임의 나무, 지옥 물결 등 결국 모든 콘텐츠는 이 꼭짓점에 도달하기 위해 준비되어 있다. 그러나 콘텐츠는 모두 쉽고 허들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디아블로4’는 오픈 월드에 레벨 스케일링 시스템을 차용하기 때문에 80레벨의 지옥 물결이나 100레벨의 지옥 물결이나 난이도 턱의 차이가 없다.

월드 티어4 입성 이후 선조 아이템 세팅 구간부터는 그라인딩 과정에 브레이크가 없어지게 되는 셈인데 여기에 엔드 콘텐츠까지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또 그라인딩을 통해 얻은 아이템으로 다시 더 많은 보상을 얻을 수 있는 던전 그라인딩에 나서게 되는 선순환 구조가 없고 그라인딩을 통해 얻은 아이템 빌드 파워를 직접 체감할 곳이 없어 피로는 크고 보상은 없는 체계가 완성됐다.

이 모든 문제의 끝에 결국 엔드 콘텐츠가 있다. 현재 상황에 엔드 콘텐츠의 부재는 굉장히 치명적이다. 유일한 엔드 콘텐츠인 악몽 던전 100단은 성취와 보상 측면에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순위표와 모든 유저가 함께 도전하는 ‘시련의 터’ 추가가 이 획일화된 그라인딩 시스템을 잠시 잊게 만드는 콘텐츠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 연기되면서 유저들은 게임에 흥미를 완전히 잃었다.

현재로선 게임이 너무 획일적이고 단순하다고 표현할 수 밖에 없다. 개발진이 유저가 하나의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면 불만을 토로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몬 것이다. 직관적이고 캐주얼한 게임 플레이는 어쩌면 이전 작의 시리즈 유산을 그대로 계승한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이런 게임 플레이를 즐기는 유저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디아블로4'는 ‘디아블로2’보다 보상의 짜릿함은 적고 ‘디아블로3’보다 캐주얼하진 못한 아주 애매한 상태로 진단한다. 아직 크림이 쌓이지 않은 케이크처럼 밋밋한 맛이다.

프랜차이즈 총괄 로드 퍼거슨의 표현을 빌리자면 ‘디아블로4’를 즐기는 유저들은 더 많은 설탕을 원한다. 그리고 이것은 잘못이 아니다. 잘못이 있다면 이를 충족시키는 데 계속 실패하는 개발진에게 있다.

‘디아블로4’는 만듦새가 단단하다. 이전 시리즈들을 한참 뛰어넘는 스케일을 보여줬다. AAA 타이틀 프라이스에 걸맞은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메타크리틱 86점을 기록한 게임이 이 정도 평가를 받게 된 것은 아쉬운 일이다.

'디아블로4'는 충분히 플레이할 가치가 있는 게임이다. 개발진이 내세운 라이브 서비스 장점을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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