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실패의 경험은 때로 창의성의 씨앗이 된다

[게임플] 어떻게 실패할 것인가. 오랫동안 천시받아온 질문이다.

넥슨은 국내에서 참신한 개발 시도를 가장 많이 한 게임사다. '시도'의 기준이라면 이 점을 반박할 관계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해외에서도 본 적 없는 시스템으로 무장한 게임을 내놓기도 했고, 특별한 트레일러 공개로 "이번엔 다르다"를 외치기도 했다.

결과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자전하는 행성 위에서 AOS를 설계한 '어센던트 원', 고대 생물들이 사는 땅에서 생존하는 '야생의 땅: 듀랑고', 누구보다 시대를 앞서간 샌드박스 MMORPG를 꿈꿨지만 출시까지 가지도 못한 '페리아연대기'까지. 그밖에도 수많은 신작들이 큰 기대를 안고 아이디어를 내밀었지만 연달아 고배를 마셔야 했다.

기업은 이윤을 위해 움직여야 한다. 넥슨의 실패를 지켜본 곳곳에서 물음표가 피어오르는 것도 당연했다. 자사에서 흥행에 성공한 공식이 여럿 있으니, 이를 바탕으로 한 신작에 집중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말도 여럿 나왔다.

"넥슨은 그래도 다양한 시도를 한다"는 말, 분명 칭찬이지만 폐부를 찌르는 말이기도 했다. 실패한 시도는 대접받지 못하는 업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침내, 결실 하나가 나왔다. 얼리액세스로 출시된 '데이브 더 다이버(이하 데이브)'는 국내외 게이머 사이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지스타 2018에 해양 어드벤처로 첫 공개된 '데이브'
지스타 2018에 해양 어드벤처로 첫 공개된 '데이브'

'데이브' 역시 이미 개발 단계에서 한번 좌절한 적이 있었다. 2018년 처음 공개한 버전은 순수 해양 탐사 어드벤처였다. 

당시에도 신선한 편이지만, 게임 본연의 재미와 플레이를 계속할 동기부여는 좀 부족했다. 이후 프로젝트가 엎어졌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또 흔한 실패겠거니, 당시에는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서브 브랜드 '민트로켓'의 이름으로 돌아온 데이브는 또다른 창의성을 얹은 형태였다. 해양 탐사로 가져온 물고기를 밤 시간 초밥집 경영에 쓴다. 그 결과 플레이의 즐거운 순환 구조가 완성됐다. 여기에 센스 넘치는 연출과 캐릭터들의 이야기까지 더해지면서 스팀 '압도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얻을 수 있었다.

한국 게임계의 접근 방식에서 드러난 맹점이 있었다. 글로벌 시장을 노린다는 게임은 기본적으로 '대작'의 이름을 붙였다. 거대한 스케일과 높은 퀄리티로 승부하려 했다. 세계 게임계에서 경쟁하기 위해서는 필수로 취급됐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누구나 재미있을 게임은 무엇인가"라는 고민은 후순위에 밀려 있었다. 우리가 생각한 재미가 밖에서도 먹히는가. 이 물음을 먼저 확인받을 필요가 있었다.

정작 전 세계에 통한 게임 대부분은 엄청난 대작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나마 개발력을 들인 편인 '배틀그라운드'도 AAA급 규모는 아니었다. '로보토미' 시리즈로 해외에 큰 팬덤을 쌓고 있는 개발사 프로젝트 문, 네오위즈가 퍼블리싱해 판매량 백만 장 신화를 쓴 '스컬'은 아예 인디게임 규모로 업적을 이뤄낸 사례다.

'데이브'에 쏟아지는 호평은 실패와 새로운 시도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데이브'에 쏟아지는 호평은 실패와 새로운 시도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독특하게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시도 후 경험을 얻는 것이 중요했다. 다만 계산서에 실패를 넣는 일은 중소 규모 게임사가 하기 어렵다. 남은 '코인'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신작 하나 결과에 따라 회사가 휘청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최악만큼은 면하는 방향으로 안전한 신작 개발 방향을 정하기 마련이다.

대형 게임사들은 '코인'이 있다. 소규모 게임 도전이 그 코인을 심각하게 소모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도 젊은 개발자들 사이에서는 만들고 싶은 게임 아이디어가 다양하게 오간다. 다만, 그 제안서가 대부분 반려될 뿐이다. 시장성이 검증되지 않은 게임 형태는 곧 위험한 아이디어 취급을 받았다.

넥슨은 그 코인을 위험한 아이디어 구현에 조금씩 투자해왔다. '민트로켓'은 그 투자를 더욱 체계적으로 일궈내기 위해 올해 출범한 브랜드다. 무수한 실패를 겪으면서 개발 시스템을 어떻게 고쳐야 할지 깨달은 것이다.

직원들이 30명을 넘지 않는 규모로 자유롭게 모여 만들고 싶은 아이디어를 만들고, 창의적인 개발 자원을 공유한다. 시장성과 일정에 쫓기지 않고 순수한 '재미'를 최우선으로 만든다. 그 과정에서 '데이브'는 재탄생할 수 있었다.

'야생의 땅: 듀랑고'의 부활도 기대하게 된다
'야생의 땅: 듀랑고'의 부활도 기대하게 된다

'데이브'가 막대한 실적을 안겨줄 게임은 아니다. 가격은 2만 원, 인게임 과금도 없다. 무려 백만 장을 넘게 팔아야 2백억 원 가량의 매출이 나온다. 넥슨 같은 거대 기업에서 결정적인 흥행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모두가 재미있는 게임'을 한 번 만들어봤다는 것은 엄청난 자산이다. 이는 개발자들 스스로가 자기 감각에 대한 확신을 얻고, 개발 노하우를 넥슨 전체에 뿌리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다. 유저 입장에서도 넥슨 신작을 향한 기대감이 오르면 차후 게임들을 구매하는 데 저항감을 없앨 수 있다.

아무 시도 없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창의력은 없다. 남들이 비웃던 실패도, 멈추지 않으면 결국 혁신으로 돌아올 때가 있다. 호평을 받기 시작한 '데이브'가 어디까지 완성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 넥슨에게 데이브가 마침내 맺은 열매 한 알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저작권자 © 게임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