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옳고 그릇에 대한 성찰보단 자신이 믿는 정보가 정의라는 믿음 강해져

[게임플]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어!"

달의 요정 '세일러문'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또 한번쯤은 외쳐본 말이다. 지구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악당들과 싸우는 소녀 전사들이 등장하는 '세일러문'은 원래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옛 이야기인 '다케토리모노가타리(竹取物語)'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라고 한다. 원전 내용은 '선한 노부부에 의해 키워지다가 달로 돌아간 공주'라는 내용이라는데 세일러문과는 특별한 동질성은 없어보인다.

그렇다면 '정의'는 무엇일까. 정의의 사전적 의미는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라고 할 수 있지만 정의의 개념은 사실 너무 다양하다. 과거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선한 본성'을 정의라 하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의 본질은 평등, 평균적 정의와 배분적 정의'로 구분하였으며, 고대 로마의 법학자인 울피아누스는 '각자에게 그의 몫을 돌리려는 항구적인 의지'라고 규정하였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교수

현대에 들어서 존 롤스는 '정당화 될 수 없는 불평등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후 27세란 나이로 최연소 하버드대학교 교수가 된 마이클 샌델 교수는 자신의 저서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에서 존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하기도 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가 바로 마이클 샌델 교수다. 이 책에서도 정의에 대한 명확한 개념은 제시해주지 않고 있다. 독자 스스로 정의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정립해보라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으로 본 정의의 이중성

보통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는 주인공을 '정의롭게' 그리는 경우가 많다. 관객이나 독자들에게 정의로움을 감정이입시켜 대리만족을 불러일으키는 장치를 많이 하게 된다.

애니메이션 원피스 '루피 해적단'

그런데 여기서 보여지는 '정의'란 것 자체가 '선'은 아니다. 유명 애니메이션 원피스의 루피 해적단은 타 해적단에 비해 정의롭게 그려지고는 있지만 사실 현실적으로는 해군들과 싸우고 다니는 악당역할임은 틀림없다. 원피스 이외에도 주인공이 범죄나 혹은 살인을 저지르고 다니지만 왠지 선하게 그려지는 영화나 드라마들도 자주 만나볼 수 있다.

평범한 화학교사가 전설적인 마약제조범으로 분하는 과정을 그린 미드 '브레이킹 배드'

2008년 시작된 미드 '브레이킹 배드'는 고등학교 화학 교사였던 월터화이트가 폐암3기 진단을 받고 돈을 벌기 위해 메스암페타민(필로폰) 제조업자가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사실 소재와 설정 자체가 워낙 '막장'으로 그려졌지만 마약이라는 가장 자극적인 소재를 가지고 정의와 도덕성이라는 가장 딱딱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극 중 주인공들은 저마다 정의를 부르짖지만 사회 규범의 테두리에서 보기에는 범죄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화 속 스토리도 비슷하긴 하지만 대부분의 주인공들은 정의의 개념을 사회제도나 분배 같은 복잡한 이야기가 아니라 폭력에 당하는 약자를 구하거나 다수의 목적을 위해 희생되는 개인을 도와주는 것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영화 배트맨에서의 정의는 죄의 댓가를 폭력으로 전달해주는 모습으로 관객들을 만난다.

이렇듯 정의가 곧 선이며 정의롭지 않는게 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지금 시대에서는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창작물에서의 정의는 실제보다 더욱 상대적이라는게 대중의 평가다.

■ 선과 악을 넘어선 팔색조 같은 게임 속 '정의'

게임속에서의 정의는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 상대적인 개념으로 비춰진다. 기본적인 스토리 라인이 있긴 하지만 막상 실제 플레이어가 원하는 방향으로 주인공 캐릭터를 '정의롭게' 혹은 '정의롭지 않게' 만들어갈 수 있다. 보통 자유도가 높은 게임들이 대부분 그렇다.

나만의 '정의'를 만들어가는 GTA5

전세계에서 5번째로 가장 많이 팔린 게임 시리즈 바로 'GTA(Grand Theft Auto)'다. 특유의 자유도와 도시의 삶을 완벽히 재현한 그래픽으로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게임이다. 사실 GTA란 말은 미국 사법당국에서 주로 쓰이는 자동차 절도 범죄를 일컫는 숙어의 약자라고 한다. 한마디로 정의와는 상반되는 범죄 게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GTA의 인기요인은 아무래도 전혀 정의롭거나 도덕적이지 않아서라는 의견이 다수다. 현실세계에서 도덕적인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불한당 같은 주인공을 플레이 하는 것이다. 다른 게임과 달리 GTA는 태생부터 그런 게임이라 게임속 콘텐츠가 올바르지 않을수록 흥행가도를 달릴 수 있었다. 물론 플레이어에 따라서 정의롭게 게임을 즐길 수도 있다. 선택은 자유다.

살인청부업자 '히트맨 코드네임47'

게임 '히트맨'도 GTA와 설정이 좀 다르긴 하지만 코드네임47 이라는 암살자의 스토리를 따라가다보니 자연스럽게 살인과 암살 등 각종 범죄를 저지르는 퀘스트를 해결해야 한다. 검은 수트와 빨간 넥타이, 가죽장갑과 대머리 뒤통수의 바코드 문신 자체가 정의로운 모습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자신의 신념에 맞게 정의롭게 싸운다는 개념으로 볼 수도 있지만 사실 살인청부업자가 정의롭다면 얼마나 정의롭겠는가. 게임 속 이야기일 뿐이다.

모바일게임 '마피아 리벤지'도 주인공 로베르토의 복수를 소재로 담고 있는데 칼리시티라는 가상의 도시에서 펼쳐지는 마피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재밌는 것은 칼리시티의 보안관들이 아주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

게임 속 어드벤처를 클릭해보면 스토리 모드가 나오는데 '보안관의 실체'와 '정의구현'이란 챕터가 나온다. 정의의 상징인 보안관이 오히려 부패에 찌들어 있어 주인공이 '정의의 이름으로' 처단에 나서게 되는 설정이다. 부패 보안관들을 죽임으로써 정의를 구현하게 되는 스토리다. 그런데 목표가 정의롭다고 해서 폭력이라는 수단이 허용되는 설정은 현실에선 절대 불가능하다.

이렇듯 '정의'라는 개념은 현실과 가상세계(영화나 게임 등)에서 전혀 다른 색깔을 보여준다. 영화나 게임 속 정의로운 영웅들이 실제 현실에선 한낮 범죄자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어떤 면에서는 안타까운 느낌마져 든다. 그렇지만 우리 마음속에는 항상 정의로운 '히어로(안티히어로)'를 갈망하는 욕구가 있다는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인 듯 하다. 비록 현실세계에서 히어로 캐릭터를 볼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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