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성 문제 드러난 AAA 게임 경쟁... 와중에 빛난 AA 게임들
AAA 라벨, 게이머에게도 퍼블리셔에게도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아

AAA 게임의 흥행에도 불구하고 퍼블리셔들은 정리 해고를 단행한다. 꾸준히 제기된 지속 가능성 문제가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반면 한 단계 아래 AA 게임은 흥행과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블록버스터 출혈 경쟁 사이 AA의 약진이 게임 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워너브라더스는 지난 5일 모건 스탠리 콘퍼런스에서 휘발성 AAA 게임보다 부분 유료화와 모바일 게임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2월 출시한 ‘호그와트 레거시’가 2,220만 장 판매고라는 놀라운 흥행을 거둔 뒤에 나온 발언이라는 점에 업계 모두가 주목했다.

워너브라더스는 이와 같은 발언 뒤에 ‘수어사이드 스쿼드: 킬 더 저스티스 리그’의 실패 사례를 언급했다. 해당 작품의 성적에 실망스러움을 표한 동시에 수익 변동성을 줄이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 킬 더 저스티스 리그
수어사이드 스쿼드: 킬 더 저스티스 리그

AAA 게임이 독이 든 성배라는 말은 지난해 많은 대작이 대규모 흥행을 거머쥐는 가운데에서도 끊이지 않고 제기된 주장이다.

지난해 블록버스터 타이틀 중 괄목할 성과를 올린 소니의 ‘마블 스파이더맨2’ 개발 비용은 3억 1,500만 달러(한화 약 4,209억 원)다. 이마저도 마케팅 비용을 제외한 것으로 알려진다. 다행히 게임은 천만 장 판매고를 올리면서 흥행에 성공했고 손익 분기점도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소니는 이후 후속작 개발에 더 많은 예산을 배정할 예정이다. 스튜디오에서 준비 중인 후속작 ‘마블 스파이더맨3’와 ‘울버린’의 개발비는 모두 3억 달러를 웃돈다. 천문학적인 개발비가 다시 소모될 예정인 것이다.

경쟁사 마이크로소프트의 사정 역시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규제기관 CMA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 관련 보고서에서 2023년 AAA 게임 개발 및 마케팅 비용 총합이 10억 달러(한화 약 1조 3,1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위기를 방증하듯 최근 대형 퍼블리셔들은 스튜디오와 프로젝트 정리에 나섰다. ‘디아블로4’로 막대한 흥행을 거둔 블리자드도 프로젝트 정리의 대상이었고 소니 역시 지난 29일 인섬니악과 너티독 등 여러 스튜디오에 영향을 미칠 정리 해고를 단행했다.

이런 와중에 AAA 한 단계 아래 중소규모 스튜디오가 선보인 AA 게임들이 눈에 띄는 글로벌 흥행 성적을 거머쥐었다. 100명 이하의 중형 스튜디오에서 내놓은 작품들로 스팀과 콘솔에서 흥행하며 게이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코옵, 멀티 플레이의 재미가 강조된 이 게임들은 최근 업계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킨 게임즈의 인슈라오디드 (자료: 스팀)
킨 게임즈의 인슈라오디드 (자료: 스팀)

에로우헤드스튜디오의 ‘헬다이버즈2’, 킨 게임즈의 ‘인슈라오디드’, 넥슨 산하 엠바크 스튜디오의 ‘더파이널스’, 포켓패어의 ‘팰월드’까지 모두 100명 이하의 개발 인력을 유지하는 중형 스튜디오로 알려진다.

넥슨은 지난 실적발표에서 엠바크 스튜디오의 ‘더 파이널스’ 성공을 콕 집어, 출시 당시 대형 예산의 게임들과 경쟁했음에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 것을 강조했다. AAA 타이틀 개발에 적게는 400명에서 많게는 1,000명 이상의 인력이 필요한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품질과 흥행이다.

3월 22일 출시 예정인 캡콤의 드래곤즈 도그마2
3월 22일 출시 예정인 캡콤의 드래곤즈 도그마2

AAA 타이틀을 소모하는 유저들의 입장도 까다로워졌다. 최근 블록버스터 타이틀은 8만 원 선으로 출시된다. 9만 원을 훌쩍 넘는 가격도 이제 예사다. 개발사들은 개발비에 비해 게임 타이틀 가격이 오르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소비자의 심리는 아직 반영되지 않았고 기준은 더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다. 

구매력을 가진 게이머는 전 세계로 봐도 한정적이고 그들조차도 비싼 가격에 게임 구매에 더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상황이다. 게이머들은 이미 검증된 IP나 입소문이 난 게임이 아니면 구매를 꺼리게 됐다.

3만 원에서 4만 원 선에 머무는 AA 타이틀은 게이머들의 구매 심리를 돋웠다. 게임 가격과 플레이 타임, 재미가 비례하는지 가성비를 따지는 것이 당연한 게이머들에게 미들급 타이틀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과거 AAA 게임 타이틀은 게이머에게는 일종의 품질 보증 라벨과 같았고 게임 퍼블리셔, 특히 콘솔 플랫폼을 쥐고 있는 플랫폼 홀더들에게는 최고의 투자 상품 중 하나였다. 그러나 2024년 현재 시류에서 AAA 라벨의 과거 의미는 크게 퇴색됐다.

대규모 예산 게임의 성공은 소수에게만 주어졌고 벽은 높아졌다. 거대 스튜디오는 심각한 출혈 경쟁 끝에 정리 해고를 단행하고 인공지능(AI) 기술 도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게이머들은 그동안 쏟아진 마케팅 용어에 더 이상 속지 않고 있으며 수많은 게임 타이틀 사이에서 옥석을 가리며 돈을 지불한다.

AAA 게임의 장래가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다. 'GTA 6'는 출시 첫날 수백억 수익을 올릴 것이다. 하지만 대형 퍼블리셔와 스튜디오들이 결산표를 받아 들고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한 것은 분명하다. 

그 결과로 그들이 블록버스터와 대규모 예산에 신중해질 수도 있고 독보적인 위치를 점령하기 위해 더 많은 예산을 투자할 수도 있다. AI 기술 발전이 업계를 완전히 뒤바꿀 수도 있다.

게이머들에게는 더 많은 선택지가 열린 것이 분명하다. AA 게임들은 더 자주 그리고 경쟁력 있는 모습으로 등장할 것이다. 하지만 대형 신작 출시에 전 세계 게이머가 환호성을 지르는 모습은 앞으로 뜸해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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