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T 퍼시픽 킥오프, 모두의 예상을 깨고 완성한 젠지 언더독 돌풍
국내 최고 선수로 꼽혔지만 비운에 시달려온 '텍스처' 김나라의 드라마

이번 발로란트 드라마의 주인공은 젠지 e스포츠였다. 그 속에는 파란만장한 굴곡을 겪은 선수의 눈물도 숨어 있다. 

25일 서울에서 개최된 발로란트 챔피언스 투어(VCT) 퍼시픽 킥오프 결승에서, 젠지는 우승 후보 1순위로 꼽혀온 페이퍼 렉스(PRX)를 3:1로 꺾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창단 첫 공식 대회 우승이자,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언더독의 반란이다. 

VCT 킥오프는 매년 발로란트 시즌의 시작을 여는 권역 리그로, 공식 우승컵과 함께 3월 열리는 마스터스 대회의 진출권을 가린다. 퍼시픽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한 젠지와 PRX는 퍼시픽 지역 대표팀으로서 올해 마스터스가 개최되는 마드리드로 향하게 됐다.

킥오프 초기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로 점쳐진 팀은 작년 퍼시픽 최강자이자 월즈 준우승팀인 PRX였다. 여기에 한국 최강 팀으로 군림하는 DRX가 도전하는 형세였다. 대형 리빌딩을 단행한 젠지는 상위권을 노려볼 만한 라인업이지만, 곧바로 우승을 노리기는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젠지는 대회 도중 실시간으로 성장했다. 그룹 스테이지는 매번 접전 끝에 힘겹게 올라갔지만, 플레이 인 2승에 이어 플레이오프에서 DRX를 상대로 2:0 완승을 거두는 파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룹 스테이지 패배를 안겨준 PRX와의 결승에서 각 선수들이 돌아가며 활약하는 경기력을 선보이며 드라마를 완성했다.

감동의 눈물과 함께 인터뷰를 진행한 '텍스처' 김나라
감동의 눈물과 함께 인터뷰를 진행한 '텍스처' 김나라

전 세계 시청자들의 감탄과 놀라움이 함께 한 가운데, 가장 이목을 끈 장면은 '텍스처' 김나라가 우승자 인터뷰에서 보인 눈물이었다.

김나라는 2021년, 21세 나이로 담원 기아에 입단해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국내를 대표하는 발로란트 팀 중 하나이며, 그 팀의 에이스로 불릴 만큼 출중한 실력을 뽐냈다. 그러나 매번 한 걸음 앞에서 국제전 진출에 실패했고, 설상가상 담원 기아가 프랜차이즈 진입에 실패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비운이 시작됐다. 

2023년 해외팀인 글로벌 e스포츠(GE)에 입단했으나, 팀 전력의 한계로 인해 퍼시픽 하위권에 머물러야 했다. 이후 팀을 나온 뒤 2024시즌을 앞두고 젠지의 리빌딩에 발맞춰 합류하면서 주전 타격대 역할을 담당했다.

젠지 전력에 많은 의심도 나왔으나, 김나라의 역량을 향한 의심은 적었다. 여전히 국내 최고의 타격대 선수라는 평가도 종종 나왔다. 플레이 스타일도 공격적이면서 화려하고, 방송을 통해 보여준 털털한 성격도 호감을 사며 인기는 큰 폭으로 올랐다.

'텍스처'를 향한 기대는 부응으로 돌아왔다. 김나라는 젠지의 결승 진출 과정에서 언제나 먼저 진입하며 가장 빛나는 활약을 펼쳤고, 결승 역시 퍼시픽 최강 PRX를 상대로 1세트 본인의 시그니처인 제트를 기용해 23킬을 쓸어담았다. 초기 분위기를 휘어잡는 한편, PRX의 촘촘한 전술을 흐트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2024년 챔피언스까지의 일정
2024년 챔피언스까지의 일정

우승 확정 순간까지도 하나의 각본이었다. 우승까지 단 1점만을 남긴 17라운드, 양 팀은 각자 단 한 명의 레이즈만을 남긴 채 스파이크 해체를 놓고 대치했다. 젠지는 김나라, PRX는 바로 지난해 GE에서 절친한 동료였던 '몬옛' 차야 누그라하였다. 이 일대일에서 서로를 너무나 잘 아는 김나라의 샷이 먼저 명중하며 우승을 확정지었다.

김나라는 무대에서 우승 소감을 묻는 질문에 눈물을 쏟았다. "4년 동안 우승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힘든 시간을 보냈다"면서 "하지만 이 게임이 너무 좋아서 계속 해왔고, 그 노력이 보상받은 느낌"이라며 자신의 결실을 되짚는 모습이었다.

젠지는 그밖에도 모든 팀원이 고른 활약을 보이면서 국제 무대 가능성을 빛냈다. 특히 '카론' 김원태는 공격과 수비에서 눈부신 전투력을 통해 '괴물 신인'이라는 찬사와 함께 파이널 MVP를 얻었다. 마스터스에서도 예상을 뛰어넘는 성적을 기대할 수 있는 이유다.

VCT가 퍼시픽 킥오프가 열린 성수동 에스팩토리는 9일간 약 11,000명의 팬들이 현장에 방문했고, 개막부터 결승까지 모든 티켓이 매진되면서 발로란트 e스포츠 열기를 실감케 했다. 마스터스 마드리드는 3월 14일 시작되며, 전 세계 8개 팀이 스위스 스테이지와 더블 앨리미네이션 방식으로 봄의 제왕을 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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