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논의 거친 확률형 표기 의무, 국내 대리인 지정제는 환영
정부 단독 발표 사항들, 준비 없이 다급한 시행 우려 '솔솔'
"정부에 게임 전문 인재도 없는 상황에 올해 1분기 시행이 말 되나"

윤석열 정부의 게임산업 규제안 발표가 화제다. 게임 소비자 보호라는 방향성은 공감을 얻으나, 사전 준비와 방안 검토 없이 조급하게 진행한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30일 'K-게임정책 신규 업데이트'를 전면에 내걸고 발표한 정책 내용은 크게 셋으로 정리된다. 등급분류 권한 민간 기관에 이양, 게임사의 불법 행위로 피해 입은 소비자 신속 구제, 해외 게임사에도 유저 보호 의무를 부여하는 국내 대리인제도 도입이다.

윤 대통령은 "소비자 보호가 안 되면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거나 커지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게임 산업은 다수의 소액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해 입증 책임을 쉽게 하고, 피해 규모를 어느 정도 법적으로 간주하며 소송하는 절차를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이번 정책 발표는 국내 게임산업 생태계에 정부가 직접 손을 대겠다는 자세가 드러난 것으로 풀이된다. 3개 키워드는 모두 게임산업 진흥과 규제 가운데 규제에 초점을 맞추며, 최근 사건들을 통해 일반 게이머들이 요구해온 정책이다.

게임물관리위원회(게임위)의 등급분류에 대한 지나친 통제, 확률을 임의로 변경한 뒤 숨겼던 과거 행태, 중국 게임에서 꾸준히 발생하는 '먹튀' 행각이 불거지면서 체계적인 법 확립의 필요성이 대두된 바 있다.

그중 몇 가지는 윤 정부의 의사와 관계 없이 입법 과정을 거쳐 완성됐다. 이 정책들은 이미 국회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 통과됐고, 당장 시행할 완성도와 당위성이 충분해 유저들 사이에서 환영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3월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 의무화는 2020년 게임산업법 개정안부터 단계를 밟아 지난해 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해외 게임사에 보호 의무를 짊어지도록 하는 국내 대리인 제도도 지난해 6월 이상헌 의원이 발의한 국회발 정책이다.

다만 윤 정부가 추진한 분야는 평가가 엇갈린다. 지금까지 행정부에서 유의미한 준비 과정이 드러나지 않았고, 디테일을 마련하지 못한 상태에서 성급히 일정을 잡고 있어 부작용이 우려되기 때문.

대표 분야가 게임위 등급분류 권한의 민간 이양이다. 3단계에 걸쳐 게임콘텐츠등급분류위원회(이하 GCRB)에 업무를 위탁하고, 게임위는 사행성 아케이드 게임 관리만 남긴다. 취지 자체는 유저들이 요구해온 그대로이며, 해외 게임 선진국들의 기준과도 맞아떨어져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게임플 취재 결과, 정책 발표 후 보도가 나가는 시점까지도 GCRB는 이 사실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관계자는 "연락을 받고 난 뒤에야 사안에 대해 확인하고 있으며, 아직은 입장을 밝히기 힘들다"고 답했다. 정부 계획에 사전 논의가 전혀 없었음이 드러난 사례다.

일각에서는 GCRB를 완전한 민간 기관으로 볼 수 있느냐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제기한다. 예전부터 게임위와 업무를 공유해왔으며 관련 주요 인사도 함께 이동한 바 있다. 일례로 게임위 김규철 현 위원장이 GCRB 초대부터 3대까지 위원장을 역임했다. 기관 이름만 바뀔 뿐 똑같은 심의 및 검열 논란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1분기가 30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 시행 가능 여부부터 의심받는 대목
1분기가 30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 시행 가능 여부부터 의심받는 대목

그밖에 아직 준비가 없고 많은 세부 정비가 필요한 정책이 2024년 1분기 내 시행으로 발표됐다는 점이 문제다. 게임아이템 환불전담 창구 의무 운영과 모바일 게임 표준 약관 개정, 유저 피해 신속구제가 이에 해당한다.

유저 피해를 신속구제하기 위해서는 실제 피해의 진위 유무를 확인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무부처에 게임 지식을 갖춘 인력 부재는 매번 언급된 고질병이다. 

이로 인해 게임 신기술 지원 예산이 '눈먼 곳'에 쓰인다는 비판도 꾸준히 제기됐다. 앞으로 불과 한 달 만에 유저의 진짜 피해와 허위 신고를 구분할 수 있는 인력이 갖춰지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오히려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 유저는 "모바일 수집형 게임에 캐릭터 뽑기가 많다는 것만으로 유저 사행성이 크다는 인식이 있는데, 사실 PC 플랫폼 MMORPG가 확률 상품에 대한 구매 유도가 훨씬 크다"면서 "이런 곳들이 법망을 피해갈 수 있겠다는 걱정이 드는데, 게임을 잘 아는 사람들이 세부 정책을 만들어야 할 듯하다"고 생각을 밝혔다.

게임이용자협회 역시 31일 정부의 게임 이용자 권익 보호에 대해 "적극 환영"을 표하면서도 "확률형 아이템 적용 범위를 명확히 하고 유상 간접구매도 의무에 포함하지 않으면 실효성이 극히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했다. "GCRB의 구성과 운영에 투명성과 전문성이 담보되어야 한다"고도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 보호는 필요하지만 이번 발표 정책들을 저렇게 단기간에 행정적, 기술적으로 실행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면서 "큰 선거를 앞두고 너무 졸속으로 큰 변화를 긴급 시행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도 주변에서 나온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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