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이어 올해도 차단 계속... "할지 몰라도 일단 사놓자" 인식 팽배
심의 강제, 미심의 게임 접속 차단하는 국가는 중국, 베트남 등 극히 소수
사전심의의무 폐지 청원해도... 17년 전 헌재 판결 근거로 거부한 문체부
"글로벌 ESD 플랫폼 시대에 맞는 사회적 논의 필요해"

게임물관리위원회(게임위)의 계속된 성인 게임 차단으로 게이머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이어진다. 역으로 차단되지 않은 성인 게임 구매가 급격히 늘어나는 모습까지 보인다.

이번 사건은 지난 12월 28일, 일본의 두 게임 '닌자 타락시키기'와 '관리인의 엿보기' 스팀 페이지가 한국 접근이 차단되면서 발생했다. 최고 수위의 노출이 존재하며, 국내 인기 차트 1위와 2위를 차지하는 등 큰 화제를 모은 게임들이다.

당시 취재에서 게임위는 "자체 스팀 모니터링 결과 등급 심의를 받지 않고 판매 중인 것을 확인해, 게임산업법 제32조에 따라 국내 유통을 제한하게 됐다"고 답했다.

추가 차단도 확인됐다. 1월 10일, 위와 같은 유통사의 게임인 '나를 데려가 줘, 던전으로!' 스팀 페이지 접근이 막혔다. 덱빌딩 로그라이크에 성행위 관련 장면이 포함됐지만 야한 수위보다 게임 플레이 재미로 화제가 된 게임으로, 연내 전연령판도 출시 예정이다.

호기심에 실행했다가 게임 공략하느라 시간이 삭제된다고 유명해진 '나를 데려가 줘, 던전으로!'
호기심에 실행했다가 게임 공략하느라 시간이 삭제된다고 유명해진 '나를 데려가 줘, 던전으로!'

해외 성인 게임 차단 논란은 꾸준히 불거진 바 있다.  2022년 '오크 마사지'를 비롯해 수백 종 게임이 대량으로 차단되는 일이 발생했고, 2023년 역시 주기적으로 유통을 막으며 유저 불만이 깊어졌다.

한국어를 게임에 공식 지원할 경우 한국 유통 의사가 있는 것으로 판단해 심의 여부를 따진다는 게임위의 답변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INCUBUS'라는 성인 게임은 공식 한국어를 지원하지 않았고, 유저 제작 한국어 패치를 소개했다는 이유로 차단당하기도 했다.

성인 게임이 차단되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나머지 게임의 구매량이 늘어나는 현상도 보인다. "언제 차단될지 모르니 당장 플레이하지 않더라도 일단 사 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다. 일단 스팀 라이브러리에 등록할 경우 상점 페이지 접속이 막혀도 플레이가 가능하다.

AO 등급에 해당하는 하드 성인물 게임은 평소 소수 유저만 이용하는 경향이 강했으나, 2022년 이후 이 방면의 신작들이 국내 스팀 인기순위에 오르는 빈도가 더욱 늘었다. 강제 차단 조치가 역으로 화제가 되고 성인 게임으로 더욱 많은 유입을 만드는 역설이다.

같은 분류라도 다양한 수위의 게임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기준선 세우기가 어렵다
같은 분류라도 다양한 수위의 게임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기준선 세우기가 어렵다

문화 콘텐츠 전반에서 한국의 경직된 심의 제도도 도마 위에 올랐다. 게임 사전심의가 있는 국가는 많지만 보통 민간 업계가 운영한다. 디지털 다운로드(DL) 유통은 심의 없이도 자유로우며, 유통을 위해 심의가 법적으로 강제되는 국가는 극히 드물다.

심의를 받지 않았다고 해서 구매 경로 접근이 완전 차단되는 국가는 한국을 제외하면 사회주의 체제인 중국, 베트남 등 일부에 불과하다.

기준이 모호하다는 문제 역시 남는다. 현재 전 세계 스팀에서 판매하는 게임의 총 갯수는 10만 종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중 음란 게임으로 분류되는 게임 숫자는 짐작하기 어려우나, '누드' 태그가 붙은 게임만 따질 경우 8천여 개다.

원칙대로라면 한국에 등급분류를 받지 않고 한국어를 지원하는 모든 해외 게임이 스팀에서 차단되어야 한다. 스팀은 아직 국내 자체등급분류사업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해외의 작은 개발사들이 한국까지 등급분류를 신청하기는 어려우며, 유통 차단을 어느 선까지 진행해야 하는지도 풀기 불가능한 난제다.

게임위는 법에 따른 절차를 집행하는 역할에 불과하다. 상위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를 비롯해 정부와 입법부의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이 요청은 수용되지 않고 있다.

게이머들을 중심으로 2022년부터 사전심의의무 폐지를 주장하는 국회 청원이 이어졌으며, 두 개의 청원이 동의 5만 명을 넘어 소위 회부 조건을 충족했다. 이에 지난달 문체부는 "등급분류는 사전 검열이나 유통 금지가 아니라 청소년 보호를 위해 접근을 일부 제한하는 것"이라며 수용 거부를 밝혔다.

검열이 아니라는 근거로 2007년 헌법재판소 판례를 들었으나, 이 시기는 글로벌 ESD 플랫폼의 개념이 국내에 미처 정착되기도 전이다. 스팀의 경우 2010년 들어서야 한국어 클라이언트 지원이 시작됐다.

또한 청소년 보호를 위한 일부 접근 제한이라는 말도 반박이 생긴다. 성인이 성인 콘텐츠를 즐길 수 없는 현상이 계속되기 때문. 너무 낡은 법 인식이 게임을 포함한 전 세계 미디어 구조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며, 과도한 성적 규제도 세계적인 수준을 따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 인디게임 개발자는 "글로벌 유통망 구조가 변화무쌍하게 달라지는 시대에, 게이머들 청원이 무려 17년 전 헌재 판결을 근거로 최초 수용조차 되지 않는 것은 너무 예전 관념 아닌가"라며 "중국 수준에 머무르는 강제검열 실태를 인지하고 새로운 인식으로 법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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