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뿐만 아니라 영화 및 비디오물 역시 유통 전 등급분류 거쳐야
가혹한 심의는 검열 역사의 잔재... 문화적 흐름에 발맞춘 법 개정 필요

(이미지 출처: G2)
(이미지 출처: G2)

냉정하게 말해서 게임물관리위원회(이하 게임위)가 스팀에서 판매 중인 성인 게임에 지역 제한을 요청한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일제강점기에서 독재로 이어진 검열의 역사가 남긴 잔재다.

얼마 전 게임위가 스팀에 성인 게임의 지역 제한을 요청한 사건이 큰 화제가 됐다. 앞서 2022년 6월에도 이와 동일한 전례가 있었고, 이로 인해 이용자들은 성인이 성인 게임을 이용하지 못하게 막는다며 게임위의 조치에 대해 비판했다.

이제 시간이 조금 지났으니 머리를 식히고 사건을 다시 볼 차례다. 여기서 감히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이번 사건은 전적으로 게임위의 문제일까?

오해를 막기 위해 밝히자면, 게임위에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말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2022년 10월 불거진 ‘블루 아카이브’ 등급 조절 논란에서 드러났듯 게임위의 등급 분류 심의 기준은 제대로 지켜지고 있다고 보기 어려우며, 말 그대로 ‘물밀 듯이’ 쏟아지는 성인 게임에 홀로 대응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게임위는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부분들은 명백히 게임위의 책임이다.

다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현 사태엔 게임위의 책임 이면에 가려진 근본적인 문제가 존재하며, 이러한 사태가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선 문제의 원인을 적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에서 게임위는 철저하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수행했다. 이러한 조치를 취한 이유에 대해 묻자 게임위 관계자는 “자체 스팀 모니터링 결과 두 게임이 게임위의 등급 분류를 받지 않고 판매 중인 것을 확인했고, 이에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게임산업법) 제32조에 따라 두 게임의 판매 중단을 요청하게 됐다”로 설명했다.

지역 제한에 걸린 '관리인의 엿보기' 게임 중 한 장면. 수위 높은 장면은 기자가 모두 처리했다.
지역 제한에 걸린 '관리인의 엿보기' 게임 중 한 장면. 수위 높은 장면은 기자가 모두 처리했다.

사실 이번에 지역 제한에 걸린 ‘닌자 타락시키기’와 ‘관리인의 엿보기’, 그리고 앞서 이슈가 됐던 ‘오크 마사지’와 ‘인큐버스’ 외에도 많은 성인 게임들이 게임위의 요청에 의해 국내 판매가 중단된 것을 제보를 통해 확인했다. 이들은 단순히 성인 게임이라서 판매가 제한된 것이 아니라 ‘등급 분류를 받지 않은’ 성인 게임이라서 판매가 중단된 것이다.

이들의 법적 근거는 다음과 같다. 게임산업법 제21조에 따르면 게임물을 제작 또는 배급하고자 하는 자는 해당 게임물을 배급하기 전에 게임위 혹은 자체등급분류 사업자로부터 등급 분류를 받아야 한다. 같은 법 제32조에선 위 법령에 따라 등급을 받지 않은 게임물의 유통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다.

종합하면 국내에서 유통되는 모든 게임은 등급 분류를 거쳐야 한다. 2016년 5월 29일 신설된 자체등급분류제도에 따라 게임위가 인정한 일부 사업자는 자체적으로 게임의 등급을 분류할 수 있지만, 청소년이용불가 등급의 게임의 경우 여지없이 게임위가 직접 등급 분류를 진행한다. 결국 게임위가 성인 게임의 지역 제한을 요구하는 것은 순전히 법적 근거에 입각한 업무의 일환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엄격한 심의는 비단 게임만의 문제일까? 그것도 아니다. 게임보다 먼저 등장한 영상 매체, 즉 영화와 비디오물 역시 마찬가지다.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에 직접 확인한 결과,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화비디오법) 제29조에 따라 일부 예외 사례를 제외한 모든 영화는 상영 전 영등위로부터 상영등급을 분류 받아야 하며, 비디오물 역시 같은 법 제50조에 따라 공급 전 영등위의 등급분류를 거쳐야 한다.

한형모 감독의 영화 ''자유부인' 중 한 장면. 해당 장면은 검열로 인해 삭제됐다. (이미지 출처: KMBb)
한형모 감독의 영화 ''자유부인' 중 한 장면. 해당 장면은 검열로 인해 삭제됐다. (이미지 출처: KMBb)

이토록 가혹한 한국의 심의는 일제강점기에서 독재로 이어지는 검열의 역사가 남긴 잔재다.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총독부의 엄격한 검열로 인해 친일 영화가 아닌 영화는 극장에 걸릴 기회조차 없었다. 해방 이후에도 이데올로기와 군사 정권의 ‘가위질’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연인의 가벼운 키스 장면조차 문란하다는 이유로 검열됐고, 심지어는 멀쩡한 노래 가사가 영부인의 이름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검열되기도 했다. 이 같은 검열의 잔재가 영화 산업을 넘어 게임 산업까지 이어진 것이다.

우리는 게임에서 정확한 타깃 지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 애먼 곳을 타깃으로 지정하면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없다. 작금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선 게임위가 아니라 입법부, 즉 대한민국 국회와 국회의원들을 타깃으로 해야 한다.

흐름이 변했다. 이제는 글로벌 시장이 플랫폼 하나로 문화 콘텐츠를 함께 즐기는 시대다. 대한민국 역사와 함께 이어진 검열의 잔재를 씻어내고, 게임을 비롯한 문화 산업 전반이 자유롭고 건강하게 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충분한 법적 기반을 마련해달라는 목소리를 내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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