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노리에서 분사 독립, 재기 넘치는 IP 구축으로 급성장
'프야매'로 누린 황금기, 모바일 이후 신작 실패와 운영 문제로 연이어 쇠퇴
폭넓은 성별과 세대 아우른 추억... 유산은 부활할 수 있을까

손노리의 마지막 흔적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엔씨소프트 자회사인 엔트리브가 1월 4일 폐업을 선언했다. 남아 있던 직원 70여명은 권고사직 형태로 퇴사가 결정됐으며, '트릭스터M'과 '프로야구 H3' 등 기존 서비스 게임은 서비스 종료를 알렸다. 

폐업 소식이 퍼져나가자 많은 유저들의 안타까운 반응이 전해지고 있다. 추억 되새기도 이어진다. 대형 게임사는 아니었으나, 전성기 시절 매력적인 게임으로 다양한 세대에게 어필한 역사를 가졌기 때문. 

엔트리브의 시작은 1990년대 한국 패키지게임을 양분한 손노리부터 시작한다. '악튜러스'와 '화이트데이' 등 굵직한 PC패키지 게임에 참여한 손노리 내부 개발팀이었다. 그러나 2003년경 플래너스 산하에 있던 손노리에서 복잡한 소속 이동이 벌어졌고, 그 과정에서 프로젝트를 나누어 엔트리브가 분사 독립하게 된다. 

당시 김준영, 서관희 대표는 서비스 중이던 '트릭스터'와 또다른 신규 프로젝트를 들고 홀로서기를 이끌었다. 화이트데이에 사용된 '왕리얼 엔진'을 개량해 개발한 골프게임, 바로 '팡야'였다. 

■ 디자인과 센스로 무장한 엔트리브의 성장기

그후 연이은 흥행 실패로 침몰한 손노리와 달리, 엔트리브는 성장세를 이어나갔다. 최대 강점은 디자인이었다. 

'팡야'는 '모두의 골프'와 유사하다는 말도 있었지만 매력적인 캐릭터로 차별화를 뒀고, 일본 등 해외에서도 큰 흥행을 누리는 무기가 됐다. UI 등 게임 경험 디자인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 역량은 '프로야구 매니저'로 이어졌다. 

'트릭스터' 역시 드릴로 땅을 파서 아이템을 발굴하고 탐사한다는 아이디어에 더해, 동물을 의인화한 귀여운 캐릭터를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이는 여성 유저층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았고, 성별과 세대를 불문하고 골고루 사랑을 받는 원동력이 됐다. 

2009년 '프로야구 매니저(프야매)' 오픈베타의 폭발적 반응은 엔트리브가 또다시 한 단계 도약한 계기였다. 야구에 조금이나마 관심이 있던 게이머라면 당시 손대보지 않은 사람이 희귀할 정도다. 

흥행도 흥행이지만, 국내에 야구 매니지먼트 장르 유행의 포문을 열었다는 의미도 크다다. 카드 덱 구성과 성장 방식, 전체적 게임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지금 게임들도 이 뼈대를 계승하고 있어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를 받는다. 

■ "뭘 해도 술술 풀리던" 황금기, '2010~2011'

2011년 출시된 '말과 나의 이야기: 앨리샤'도 화제몰이를 했다. 말을 교배하고 성장시켜 레이싱을 펼친다는 아이디어도 이목을 끌었고, 엔트리브 특유의 동화풍 디자인도 감성을 살렸다. 레이싱 재미와 속도감은 물론 농장 관리 등 아기자기한 요소도 갖춰 많은 유저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프야매'가 최절정기를 누리고 '앨리샤'가 주목을 받던 2010~2011년이 곧 엔트리브의 황금기로 기억된다. 행운도 따르는 시기였다. 당시 주목을 받기 시작하던 가수 아이유를 앨리샤 전속모델로 발탁했는데, 계약 후 게임 출시 시기와 맞물려 '좋은날'로 대박이 터지면서 큰 이득을 보게 된 것. 

업계에서는 "뭘 해도 잘 풀리는 기운이 몰렸다"며 엔트리브를 부러워 하는 분위기도 존재했다. 아이유가 부른 앨리샤 주제곡은 지금도 많은 유저가 회상하는 추억의 게임 명곡 중 하나다. 

모델을 유망주 가격으로 계약해 국민스타의 효과를 누린 '앨리샤'
모델을 유망주 가격으로 계약해 국민스타의 효과를 누린 '앨리샤'

■ 모바일 개발로 전환했지만... "유저 마음을 너무 몰랐다"

그러나 엔트리브의 내리막은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다. 엔씨소프트 자회사로 인수된 직후, 2012년부터 적자가 시작됐다. 이 적자는 폐업 순간까지 11년 동안 흑자로 전환되는 일이 없었다. 2023년 3분기까지 누적 적자는 617억 원으로 추산된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기존 흥행작들의 장기적 운영에 실패했고, 신작들은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

이미 위태로웠던 트릭스터와 팡야는 제하더라도, 프야매와 앨리샤가 빠르게 가라앉은 것은 뼈아팠다. 프야매는 대형 시스템 업데이트마다 재미보다 과금 부담이 증가한다는 비판이 나왔고, 앨리샤는 결국 레이싱과 말 교배의 숙제인 '고인물' 진입장벽을 해결하지 못했다.

"운영이 좋았다면" 이라는 아쉬움이 유독 진하게 남는 '소환사가 되고 싶어'

스마트폰 게임 팽창에 맞춰 모바일로 신작 개발 체질을 전환했지만, 결과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2014년 '세컨어스'에 이어 2015년 '프로야구 6:30'이 연달아 흥행에 참패했다. 

같은 해 트릭스터 세계관으로 개발한 '소환사가 되고 싶어'는 만듦새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일본 시장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수집형 게임 유저들의 니즈를 파악하지 못한 운영이 발목을 잡았고, 결국 서비스 종료를 맞이해 아까운 게임으로 기억된다.

2020년 간담회를 통해 대형 야심작 3종을 공개했으나, 그중 '트릭스터M'과 '프로야구H3'는 출시 후 혹평에 시달려야 했다. '팡야M'은 완성조차 되지 못했다. 좋은 원작의 기억을 가지고 기다리던 팬들의 방향성과 지나치게 엇갈린 것이 패착이었다. 

■ 엔트리브가 남긴 좋은 재료들, 다시 꽃필 수 있을까

엔트리브의 이름은 사라지지만, 매력적인 IP들이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모회사 엔씨에게 권한이 넘어간다. 엔씨의 의향에 따라 이를 활용한 신작 프로젝트가 가동될 가능성은 남아 있다.

트릭스터, 팡야, 앨리샤와 같은 엔트리브의 유산은 폭넓은 추억을 선사한 바 있는 재료로 꼽힌다. 추억을 떠나 기본 뼈대와 세계관에서도 경쟁력을 가진다. 비록 트릭스터의 최근 실패는 뼈아팠지만, 여전히 방향 전환에 따라 살아날 가능성은 남아 있다. 

이제 끝났다고 생각한 IP가 극적으로 부활하는 사례는 언제나 나온다. 스팀 등을 통한 글로벌 시장은 예전보다도 열려 있다. 국내 게임계에서 장르의 다양성도 점차 주목을 받는 추세다. 엔트리브의 끝이, 모든 유산의 끝은 아니길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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