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 세대 향한 '지면 기사-공중파' 인식 공략... 예전만큼 쉽지 않아
게임의 긍정적 영향 조사하기도 자료가 쏟아지는 시대

[게임플] 무심코 버린 폐기물 하나에 연못 속 물고기들이 폐사할 수 있다. 스치듯 뱉어내는 '게임 중독' 몰이해는 문화산업 전체를 오염시킬 수 있다.

2023년에 이런 주제로 또다시 뉴스를 볼 것이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다. 기성 미디어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한 것일지도 모른다. 지난 8일 조선일보 게재된 '칼로 베는 살인 게임에 빠진 청소년들'이라는 기사는 수많은 이들이 실소를 자아내게 만들었다.

요즘 게임은 사실적이라는 말과 함께 카툰풍 게임과 2005년 출시된 옛날 게임을 자료화면으로 쓰고, 지금은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2001년 대한가정학회지 논문을 제시한다. 또, 예전 폐기된 게임중독법을 두고 "숙원사업"이라고 밀어붙였던 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사장의 멘트를 근거로 게임과 범죄의 영향을 주장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온라인 게임의 민간인 학살 동영상이 다수 올라와 있다며 끔찍한 장면을 묘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국내 인기 온라인게임 중 살해와 피 묘사가 구체적인 게임은 하나도 없다. '게임 민간인 학살' 등의 검색으로 찾은 결과 간신히 유사한 영상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GTA5'의 몇몇 장면만 모은 자료였다.

최근 인기를 끄는 온라인게임 (최근도 아니며, 인기를 끌고 있지 않고, 온라인도 아니다)
최근 인기를 끄는 온라인게임 (최근도 아니며, 인기를 끌고 있지 않고, 온라인도 아니다)

■ "어차피, 기사가 겨냥한 타겟층은 따로 있다"

하지만 GTA5는 2013년에 출시되어 '최근'도 아니며, 해당 영상은 싱글 플레이 장면이기 때문에 '온라인'도 아니다. 국내는 지금 시점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단 한 단어도 사실과 맞지 않는다. 

저 영상을 토대로 한 것이 맞다면, 굳이 민간인 학살 키워드를 입력해야 나타나는 영상을 가상의 인기 온라인게임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혹시 다른 영상을 발견하고 보도한 것이 아닐까 싶어 백방으로 찾아봤지만, 결국 조건에 맞는 영상은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인기 게임 상위 10개 중 4개가 총칼로 살해하는 게임이며, 주 이용자는 중고등학생과 20대 초반 남성"이라는 전달도 악의적이다. '발로란트'나 '오버워치'는 여성 유저도 굉장히 많은 게임으로 유명하다. '서든어택' 주 유저층은 20대 후반 이상이 된지 오래다. 억지로 청소년 및 남성 유해 이론에 끼워맞추려는 의도가 읽히는 이유다. 

이런 기사들은 어떻게 봐도 논리와 사실관계가 망가져 있지만, 특정 목적을 위해 화제를 일으키고 프레임을 형성하는 기술로 해석할 수 있다. 게임에 대해 잘 모를 경우 속아넘어가기 딱 좋게 설계됐기 때문이다. 기성 세대의 인식에 게임 중독 한 단어만 심어둘 수 있다면 기사의 의도는 성공이다.

아무리 수많은 댓글로 정정하고 항의해도, 지면으로 읽는 독자는 비판 없이 수용하게 된다. 보통은 그 쪽이 목표다. 그리고 읽자마자 예상한 대로, 이 기사는 조선일보 지면 기사로 인쇄됐다.

■ "조선이 게임 중독이면, 정유정은 영화 중독이냐"

때마침, 나흘 뒤 검찰 발표에서 "게임 중독"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신림역에서 '묻지 마 칼부림'으로 살인을 저지른 조선이 게임 중독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고, 범행 방식도 게임 속 캐릭터와 닮았다는 것이 이유다. 

그러나 내용을 살필수록 이상하다. 작년 12월부터 게임에 빠졌다고 하는데, 피의자는 이미 상해 전과 3범이었고 소년원 송치 14건 이력을 가졌다. 사이코패스 진단 역시 받았다. 게임을 문제로 삼기는 인과 관계에서 너무 늦다. 게임 유튜버에게 악플을 달다가 모욕죄로 고소당하고 분노가 쌓인 것 역시 게임보다는 인터넷 과몰입과 혐오의 문제다. 

다행히도, 게임 중독을 활용하려는 움직임은 뜻대로 풀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적대적 반응이 상상 이상으로 크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상헌, 하태경 등 국회의원들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직접 반박에 나섰다. 

이상헌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무슨 '게임의 폭력성을 실험하기 위해 PC방 전원을 내려보겠습니다'급 망언이냐"면서 "'나쁜 건 죄다 게임탓 스킬'의 쿨타임이 찼느냐"고 검찰을 비판했다. 당시 전원을 내렸던 그 뉴스는 아직도 MBC의 부끄러운 역사로 기억되고 있다. 지금에도 그런 수준에서 인식이 더 나아가지 못한 주장을 본 것이다.

하태경 의원은 "정유정은 영화 중독이냐"고 반문했다. 지난 5월 흉악범죄를 저지른 정유정은 평소 범죄 수사 프로그램에 빠졌고, 영화 '화차'를 여러 번 보면서 범죄를 계획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영화 중독이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게임도 마찬가지로, 수많은 사람 중 하나가 접하는 미디어일 뿐이다.

■ "대선 후보가 게임 유튜브 나오는 시대... 이젠 좀 그만 하시죠"

시간이 많이 흘렀다. 게임을 잘 아는 사람들이 정계를 비롯해 사회 전역에 뿌리내린 흔적이 보인다. 예전처럼 2023년에 조선일보 같은 기사와 검찰의 게임 중독 해석을 다시 보게 될 줄 몰랐던 이유이기도 하다. 더 이상 그런 수법이 효과적인 시대가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게임은 도구로 쓰이고 있었다. 게임이 원인이냐 아니냐로 싸우는 동안, 정말 책임을 져야 할 문제들은 조용히 잊혀진다. 시스템을 바꿔야 할 주체들은 과제를 뒤로 미룰 수 있다. 게임 관련 치료가 개시될 경우 막대한 이득을 보는 집단도 몇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하고, 영화와 드라마를 보며, 음악을 듣고, 스포츠를 보거나 직접 하면서 희노애락을 겪는다. 인간이라면 대부분 문화 콘텐츠를 즐기면서 인생의 낙을 찾는다. 극소수는 그 과정에서 범죄에 대한 영감을 얻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화 콘텐츠가 범죄자를 그렇게 만든 원인이 되진 않는다. 

전 세계에서 폭력적인 게임의 대명사는 'GTA5'다. 살인, 폭행, 테러, 마약, 강도 등 세상의 온갖 범죄가 등장한다. 놀랍게도 복수의 논문 조사에서는, GTA5 출시 후 몇 개월 동안 미국 지역 범죄율은 급감했다. 가장 범죄율이 크게 떨어진 시기는 게임 판매량이 정점에 달했을 때였다. 

범죄 원흉으로 지목받던 게임계 사람들의 상처는 오랜 시간 깊었다. 지난해 대선 후보들이 게임 유튜브에 출연해 진흥 공약을 내는 등 세상이 달라지면서, 이제서야 조금씩 상처가 아물어가는 참이다. 이제 게임을 때려서 이득을 보려는 행동은 그만 둘 때도 되지 않았나. 게임으로 세상을 더 밝게 만들 방법을 논의하기도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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