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드라마는 시작됐다

[게임플]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는 일본의 실존 경주마들을 미소녀화한 게임입니다. 어떻게 이런 신기한 발상을 했느냐는 경악,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와 매출로 충격을 선사했죠. 카카오게임즈의 국내 서비스 발표로 기대감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비결은 개성 있는 캐릭터, 그리고 그 캐릭터에 얽힌 서사에서 나옵니다. 하나의 스포츠 드라마를 보는 듯한 몰입감은 애니메이션에 이어 만화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매주 주요 캐릭터의 원본마 스토리를 살펴보고, 이것이 어떻게 IP로 재해석됐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기존 팬들에게는 이야기를 되새기는 즐거움을, 입문자들에게는 캐릭터 이해와 새로운 스토리에 대한 재미를 드리려 합니다.



■ '제왕'의 탄생

대중은 스포츠 속 천재들에게 환호합니다. 특히 무난한 최강자보다는, 드라마 같은 역경과 부활에 더욱 박수를 보내기 마련이죠. 

경주마 중에서도 드라마를 옮겨놓은 듯한 주인공이 존재합니다. '토카이 테이오', 이 말은 아버지의 명망에서부터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20세기 일본 최고의 명마, 최초 무패 삼관과 G1 7승의 위업으로 빛나는 '황제' 심볼리 루돌프가 첫 해 얻은 자식. 여기에 '테이오(제왕)'라는 이름으로 인해 데뷔 전에 이미 '제왕'으로 별명이 굳혀진 경주마입니다.

토카이 테이오 원본마 (사진: 위키피디아 촬영자 'Goki')
토카이 테이오 원본마 (사진: 위키피디아 촬영자 'Goki')

어설프게 붙은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재능이 달랐거든요. 발과 다리의 탄력성이 신기하다고 말할 정도였고, 조교를 시작하자 타는 사람마다 부드러운 승차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밖에도 전신이 유연함 그 자체라, 작은 몸집에도 불구하고 단점을 뒤덮는 압도적인 장점을 가졌다고 평가됐습니다. 혈통에 재능까지 탁월하니 시선을 끌 수밖에 없죠. 여기에 다리의 탄력을 살려 통통 튀어오르는 특유의 걸음걸이도 '테이오 스텝'이라고 불릴 만큼 화제를 낳았습니다.

테이오의 레이스는 적수가 없었습니다. 데뷔전을 포함해 한 번도 접전 없이 4연승으로 클래식 G1 전선에 돌입합니다. 첫 관문 사츠키상에서 최악의 자리인 18번 배정에도 불구하고 승리, 이어진 일본 더비는 일말의 가능성도 없앨 만큼 가볍게 따돌리며 들어옵니다. 관중석에서는 제왕에게 환호하는 '테이오 콜'이 울려퍼졌습니다. 

1991년 클래식 G1 3관 중 두 경기를 연이어 압승, 남은 대회는 국화상 하나. 클래식 동기 중에 테이오를 막아설 적수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루돌프에 이어 부자 무패 삼관이라는 대위업이 코앞까지 온 셈입니다.

그러나... 첫 번째 '좌절'은 여기서 시작합니다.

■ "천재는 있다, 분하지만" 

토카이 테이오 골절. 더비가 끝나고 불과 사흘 만에 날아온 비보였습니다. 

더비 시상식 뒤 마방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걸음갈이에 이상이 감지됐고, 엑스레이 검사 결과 왼쪽 뒷다리 발목에 골절이 찾아온 겁니다. 무려 NHK에서 일반 뉴스 시간에 보도할 만큼 대형 뉴스였습니다.

특이할 만큼 유연한 발목 탄력은 뼈를 해칠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이었습니다. 전치 6개월 진단, 경주마 생애에서 클래식은 단 한번 뿐. 그렇게 테이오의 삼관 꿈은 날아갑니다. 더비에서 큰 차이 2착으로 들어왔던 레오 더반이 접전 끝에 국화상을 가져가면서 아쉬움은 더욱 짙게 남았죠. "테이오가 있었다면"이라는 말이 들려오는 것도 당연했고요.

물론 테이오가 여기서 주저앉은 것은 아닙니다. 다음해 4월 오사카배(당시 G2)를 복귀전으로 삼았고, 가볍게 승리를 따내면서 '제왕의 귀환'을 선언합니다. 하지만 메지로 맥퀸과 세기의 대결로 화제를 집중시킨 텐노상(봄)에서 장거리의 한계를 이겨내지 못하고 최종 직선에서 침몰, 8전째에서 무패 기록마저 깨졌습니다.

텐노상 열흘 뒤, 두 번째 시련이 또 찾아옵니다. 이번에는 오른쪽 앞다리 골절. 테이오는 또다시 긴 치료에 들어갑니다.

재차 복귀전은 텐노상(가을). 그러나 발열 증상으로 꼬여버린 컨디션 복구 일정, 메지로 파머와 다이타쿠 헬리오스라는 대도주 듀오가 만들어낸 역대급 하이페이스 등 악조건이 겹치면서 7착으로 침몰하고 맙니다. 

JRA CM '토카이 테이오' 편 문구
JRA CM '토카이 테이오' 편 문구

다음 경기는 재팬 컵, 테이오는 여기서 마생을 통틀어 가장 낮은 5번 인기를 받습니다. 골절이 누적되면서 부진한 모습이 계속되기도 했고, 당시 재팬 컵은 세계 최강급 외산마들이 들어와 휩쓸던 대회였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날 테이오는 천재이자 제왕으로 불리던 그 모습이었습니다. 

"부활을 이뤄냈습니다, 토카이 테이오입니다!"

다섯 번째 정도에서 페이스를 유지하다가 200미터를 남긴 최종 직선에서 외곽 스퍼트. 그리고 세계적인 말들과의 경합에서 이겨낸 채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합니다. 

7년 만에 내국산 경주마의 재팬 컵 우승, 7년 전 우승은 바로 아비인 심볼리 루돌프. 루돌프의 뒤를 잇겠다는 테이오 진영의 꿈이 마침내 그림 하나를 그려낸 셈입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꽤 멋들어진 스토리인데요. 테이오의 이야기는 이제 반환점을 돌았을 뿐입니다. 슬프게도, 동시에 놀랍게도. 

■ '꿈을 달리다'

재팬 컵을 거머쥐면서 다시 최강마로 꼽히기 시작한 테이오는, 한달 뒤 아리마 기념에서 거짓말처럼 11착으로 대패합니다.

패인은 게이트 출발에서 발이 미끄러지며 발생한 허리 근육통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부상을 치료하던 중에 또다시 박리 골절이 발견됐습니다. 이번엔 왼쪽 앞다리.

세 번째 골절, 사실상 경주마로서 전성기가 완전히 끝났다는 의미였습니다.

기나긴 치료와 휴양, 그리고 재활. 모두의 기억에서 잊혀져갈 때쯤 테이오의 복귀전이 결정됩니다. 다른 대회도 아니고 다시 아리마 기념, 무려 364일 만에 치르는 레이스가 경주마들의 올스타전이라 불리는 연말 그랑프리였습니다.

테이오는 현 기준 5세로 이미 은퇴가 이상하지 않을 나이였고, 경주마들의 세대교체도 끝난 뒤입니다. 1년 전 재팬 컵이 일어날 만도 한 부활극이라면, 이번에는 부활을 꿈꾸기엔 만화에서도 차마 못 쓸 만큼 비현실적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1993년 아리마 기념, 테이오는 4번 인기를 받았습니다. 정말로 네 번째로 우승 확률이 높다기보다는, 그저 뛰는 모습에 팬들이 응원을 보낸다는 의미가 강했죠. 그저 달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었습니다. 

1순위 우승 후보는 같은 해 국화상 우승마 비와 하야히데였고, 그날도 어김없이 압도적인 기세를 뽐냈습니다. 선행으로 달리다 3코너에서 일찌감치 선두로 전진, 위닝 티켓과 레거시 월드 등 당대 경쟁마들은 미처 따라갈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비와 하야히데의 우승 가도로 흘러가기 시작한 최종 직선.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빨간 모자가 마군을 뚫고 튀어나왔습니다.

"토카이 테이오, 토카이 테이오가 온다!"

불과 200미터를 남기고 그 이름이 불릴 줄 누가 알았을까요. 세 번의 골절을 견뎌내고 1년 만에 돌아온 토카이 테이오가, 현세대 최강마를 홀로 쫓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오직 둘만의 싸움. 비와 하야히데 역시 모든 힘을 쏟아 달렸지만, 테이오의 최종 스퍼트는 그보다 조금 더 빨랐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00미터를 남기고 테이오가 조금 더 앞서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떠나갈 듯한 나카야마 경기장의 함성 속에서, 테이오는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토카이 테이오, 기적의 부활!"

그 다음 이어진 멘트는 “미라클”. 말 그대로 '기적'이라는 단어밖에 쓸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은 역대 최장기 휴양 후 G1 레이스 승리. 약 15만 명의 관중들은 재팬 컵에 이어 벌어진 더욱 큰 기적을 바라보며  '테이오 콜'을 일제히 외쳤습니다. 

타바라 세이키 기수는 인터뷰에서  "중앙 경마 역사의 상식을 뒤집은, 토카이 테이오 스스로가 이뤄낸 승리”라고 말하면서 눈물을 보였습니다. 1년 재활 후 큰 대회에 바로 출전시켜야 했던 미안함, 그 역경을 이겨낸 명마를 향한 감동이 뒤섞인 감정이었습니다.

이 아리마 기념은 테이오가 써낸 드라마의 마지막 장이었습니다. 재차 출전을 준비하던 중 4번째 골절이 발견됐고, 회복 자체는 가능했지만 말 보호를 위해 단념하게 되죠. 그렇게 치른 은퇴식, 큰 경기가 없었던 도쿄 경기장에 10만 명 넘는 인파가 몰렸습니다. 오직 경주마 한 마리의 은퇴를 보기 위해서 말이죠.

총 전적 12전 9승, G1 4승. 조금만 더 건강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적을 실현한 감동이 공존하는 진짜 '제왕'.

테이오 은퇴를 기념해 발간한 책자에 실린 부제가 '꿈을 달리다'. 테이오의 라스트 런을 가장 잘 요약한 한 마디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문구는 우마무스메 애니메이션 시즌 2 오프닝 테마곡 제목이자, 최종화의 부제이기도 합니다.

■ "누구보다도 이기고 싶은 건 나야"

우마무스메 애니메이션 시즌2는 감동적 스토리와 연출로 수많은 시청자들에게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이 작품을 떠받친 핵심 주인공이 토카이 테이오라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테이오는 회장 루돌프의 더비 레이스를 보고 무패 삼관의 꿈을 꾸기 시작한 꼬마아이 모습으로 첫 등장합니다. 원본마가 부자관계인 만큼 각별한 연관성을 드러내죠. 그리고 시간이 지나 테이오를 지켜보며 꿈을 키우는 어린 키타산 블랙도 있습니다. 동경의 대상이 이어지면서 나타나는 구도는 이 스토리의 주요 테마로 자리잡습니다.  

실제 테이오의 여정을 그대로 따라가는 만큼, 이야기는 처절하면서 역동적입니다. 1화와 2화에서 응석 많은 아이 같았던 테이오는 연달아 시련을 맞이하면서 입체적으로 성장하죠. 테이오라는 한 명의 캐릭터가 어떻게 좌절하고, 일어서고, 끝내 이겨내는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그려낸 스포츠 서사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테이오의 첫 번째 기적이었던 재팬 컵 우승은 이야기의 기승전결을 위해 생략됐는데요. 대신 맥퀸과 라이스 샤워, 트윈 터보, 나이스 네이처 등 주변 캐릭터들의 일화를 절묘하게 테이오와 엮어내면서 감성을 폭발시키는 전개가 돋보입니다.

테이오의 알파와 오메가를 모두 담아낸 애니메이션과 달리, 게임은 '부상당하지 않은 테이오'를 전제로 경쾌한 육성 스토리를 진행해나갑니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에 비해서는 좀 심심하다는 의견도 있고요.

하지만 게임 속 테이오는 어려 보이지만 단단한 멘탈을 가진 캐릭터로 또다른 해석을 보여줍니다. 애니메이션처럼 맥퀸과 라이벌 구도를 그리면서 자신에게 부족한 점을 깨닫고, 점차 성장한 끝에 동경의 대상인 루돌프에게 도전하는 이야기로 흘러가게 되죠.

원본마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테이오 스텝을 반영해서, 주요 스킬이 스텝과 포지셔닝에 집중된 점도 재미있습니다. 인게임 레이스 화면에서도 가볍게 튀어오르는 듯한 주법이 눈에 띄고요. 이 매력적인 캐릭터 테이오에게 굳이 단점을 꼽자면, 파괴적인 사복 패션 센스를 들 수 있겠네요.

토카이 테이오에게 붙은 수식어는 많습니다. 제왕, 천재, 기적의 명마 등. 부활의 대기록에 힘입어 명예의 전당인 '현창마' 라인업에 입성하기도 했죠. 평론가 스다 타카오는 "성적으로 테이오를 넘는 말은 앞으로도 나오겠지만, 그 이상 특별한 서러브레드가 나올까 묻는다면 고개를 끄덕이기 어렵다"고 평가했습니다.

놀라운 재능으로 생을 시작했고, 수많은 사람들의 애정과 응원이 모여 매듭지은 놀라운 결말. 능력과 드라마가 합쳐진 이야기는 성적보다도 오래 가기 마련입니다. 우마무스메는 그런 수많은 분투가 한땀 한땀 모여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결과물일지도 모릅니다.


(NEXT: ⑫ 메지로 파머 - 도주 콤비, '장애물'을 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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