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이 대기록을 앞두고 이족보행을 시작한 이유는?

[게임플]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는 일본의 실존 경주마들을 미소녀화한 게임입니다. 어떻게 이런 신기한 발상을 했느냐는 경악,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와 매출로 충격을 선사했죠. 카카오게임즈의 국내 서비스 발표로 기대감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비결은 캐릭터, 그리고 그 캐릭터들에 얽힌 서사에서 나옵니다. 하나의 스포츠 드라마를 보는 듯한 몰입감은 애니메이션에 이어 만화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매주 주요 캐릭터의 원본마 스토리를 살펴보고, 이것이 어떻게 IP로 재해석됐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기존 팬들에게는 이야기를 되새기는 즐거움을, 입문자들에게는 캐릭터 이해와 새로운 스토리에 대한 재미를 드리려 합니다.



이번 주인공은 실력과 예능을 모두 갖춘 말입니다. 일본 경주마 역사에 남을 기행마이자, 우마무스메 마스코트 겸 최강의 망나니. 골드 쉽입니다.

할아버지가 전설의 종마 선데이 사일런스, 아버지가 스테이 골드. 이 혈통의 특징은 가문(?) 구성원 전부가 어마어마한 성격을 자랑한다는 점입니다. 형인 오르페브르는 골을 통과하면 처음으로 하는 일이 기수를 패대기치는 일이었다고 하니. 

골드 쉽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아니, 어떤 의미로는 누구보다도 대단했습니다. 기행과 발광이 시작되는 순간을 도무지 예측할 수가 없었거든요. 

만 3세 클래식 시즌에서는 출중한 능력에 성격도 나름 고분고분한 말이었다고 합니다. 사츠키상, 킷카상에 이어 아리마 기념까지 G1 3승을 쓸어담았죠. 하지만 이때도 일본 더비에서 기수 명령을 무시하고 달리고 싶은 대로 달리다가 침몰한 전적이 있어서 전조는 보였던 것 같습니다.

2013년 4세로 넘어오면서 무시무시한 성적 널뛰기가 시작됩니다. 텐노상 봄 5착으로 부진하다가 다짜고짜 타카라즈카 기념을 우승하더니, 교토대상전과 재팬 컵에서 5착과 '15착'. 

이후 6세까지 뛰는 동안에도 압도적인 우승과 거진 꼴찌를 넘나드는 성적 차이가 교차되면서 관중들의 멘탈을 박살냅니다.

골드 쉽 원본마 (출처: 위키피디아)
골드 쉽 원본마 (출처: 위키피디아)

왜 극단적인 기복을 보여주느냐? 뛰기 싫어서요.

간혹 얌전한 날도 있었지만, 골드 쉽을 찍은 사진 대부분은 말이 날뛰고 있거나 사람이 튕겨나가고 있습니다. 특히 다른 말만 보이면 로데오를 뛰면서 뒷발차기를 날리는 통에, 눈 가리고 귀 가리고 뒤돌아서 게이트에 입장해야 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대표 각질(주법)은 클래식 시즌에 주로 보여준 추입. 최후방에서 힘을 아끼다가 3코너부터 슬슬 속력을 붙이면서 추월하는 방식입니다. 특히 사츠키상에서 단 15초 만에 꼴찌에서 선두로 올라가버리는 후반 스퍼트는 보는 이들을 경악하게 만들었죠. 

뛰려고 맘 먹으면 정말 빠르고 강한데, 문제는 그 마음이 자기 멋대로라는 겁니다. 오죽하면 얘가 뛸 마음이 없길래 바깥으로 빠져나와서 관중 응원소리를 들려줬더니 신나서 뛰기 시작한 적도 있고요.

그러면서 지능은 말 중에 최상위권이었습니다. 경주의 흐름을 너무 잘 알았거든요. 한번은 또 너무 기수 말을 안 들어서 마음대로 달리라고 놔뒀더니 알아서 페이스 조절을 하면서 우승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프랑스 개선문상에 원정 나갔다가, 극소수 말만 가능하다는 게걸음 스텝으로 관중석을 구경하더니 갑자기 전력 스피드로 뛰어다닌 일화도 있습니다. 아마 외국인들이 신기해서였던 것 같은데요.

네, 그러고 힘 빠졌는지 14착으로 들어왔고요.

이 오묘한 1등 포즈가 무려 실화다
이 오묘한 1등 포즈가 무려 실화다

골드 쉽의 수많은 기행 중에서도 손꼽히는 '대형 사고'가 따로 있습니다. 때는 2015년 타카라즈카 기념. 이 경기를 우승하면 대회 3연패 대기록을 쓸 수 있었습니다.

전 대회인 텐노쇼 봄에서 승리한 만큼 압도적인 1번 인기. 마땅히 골드 쉽을 견제할 라이벌들도 출전하지 않았죠. 정말 '아주 이상한 짓'만 하지 않는다면 무난히 1착으로 들어와 3년 연속 우승 신화를 달성할 것이라고 모두가 예상했습니다.

그리고 출발 신호와 함께 게이트가 열리는 순간...

"저... 저 녀석, 두 발로 섰어!"

오늘은 뛰기 싫은 날이었는지, 출발 전부터 온갖 몸부림을 치던 골드 쉽이 두 발로 깽깽이 걸음을 뛰면서 로데오 파티를 열어버리고 맙니다. 

몇 초나 뒤쳐져서 출발하는 대참사. 골드 쉽을 응원하던 관중석은 비명과 동시에 웃음이 튀어나왔습니다. 실력이 좋으면서도 경기는 재미있게 하고, 워낙 희한한 짓을 많이 저지르다 보니 팬덤도 굉장했거든요. "골드 쉽이라면 저럴 만해" 라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결과는 16두 중 15착. 하여간 똑똑하기는 지독하게 똑똑해서, 조교사가 다가오자 눈을 피하고 얌전히 먼 곳으로 시선을 돌리는 모습도 목격됐습니다. 자기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다 알고 있는 거죠. 

결국 이 사태는 '타카라즈카 게이트 난동 사건'으로 골드 쉽의 대표적 행각으로 남았고, 6년이 지난 지금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우마무스메로 인해 앞으로 더 오래 기억될 가능성이 올랐습니다.

은퇴 후에도 잘 먹고 잘 살고 있습니다. 자식 중 벌써 G1 레이스를 재패하는 말도 나오면서 종마 생활도 성공적이고요. 날뛰는 성격도 여전해서 마방에서 온갖 몸부림을 다 치고 있다고 합니다. 

더 시간이 흘러서 늙고 힘 없어진 모습을 보게 된다면, 어쩐지 슬퍼질 것 같네요. 

"레이더 수신~ 레이더 수신~"

제 정신이 아니었던 말답게 우마무스메 캐릭터도 제 정신이 아닙니다. 

게임 개인스토리는, 하도 날뛰는 성격 때문에 트레이너들이 모두 피하자 유저를 '사냥'해 자기 트레이너로 삼아버리면서 시작됩니다. 특히 1화부터 트레이너를 감지하고 추는 레이더 수신 댄스는 골드쉽의 모든 것을 설명할 정도로 기괴합니다.

다른 우마무스메들이 사람 귀 위치를 옆머리로 가리는 것에 비해 골드 쉽은 혼자 헤드기어를 쓰고 있는데요. 원본마부터 온갖 발광을 방지하기 위해 시야를 가리고 귀에 덮개를 씌우고 별 난리를 다 쳐야 했다보니 이를 고증한 것으로 보입니다.

트레이너를 무인도로 납치하거나, 외계 생물체와 조우한다거나, 발렌타인 선물로 생선을 낚아와서 회를 뜨거나, 그밖에 온갖 이해 불가능한 언행으로 트레이너를 괴롭히다가 나중엔 서로 동화되어가는 기묘한 이야기가 그려집니다. 심심하다는 이유로 버스 노선도를 통째로 암기하고 다니는 등 똑똑한 머리에 대한 고증도 나오고요.

"응 다른 훈련 못해~"
"응 다른 훈련 못해~"

"다른 훈련 시키면 강물에 담가버린다?"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메인스토리에서 직접 경주를 뛰는 장면은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우마무스메 주연 캐릭터 대부분이 1990년대 전후에 활약했다 보니, 한참 막내에 해당하는 골드 쉽은 같이 레이스 스토리를 만들 대상이 거의 없거든요.

하지만 조연으로 존재감은 독보적입니다. 사뭇 진지한 애니메이션 스토리에서 골드 쉽 하나만으로도 유머 지분은 충분할 정도로요. 특히 메지로 맥퀸과 티격태격 개그 콤비로 환상적 궁합을 보이는데, 원본마가 골드 쉽의 외할아버지였던 것이 큰 이유 아닐까 싶습니다. 

게임에서는 트레이너의 심정을 들었다 놨다 하기로도 유명합니다. 육성하다 보면 가끔씩 다른 훈련은 하기 싫다면서 한 가지 빼고 다 잠궈버리는 일도 일어납니다. 대박 훈련이 떴는데 여기에 딱 맞물려서 사용을 못하면 그렇게 복장이 터질 때가 없어요. 오직 골드 쉽에게만 있는 이벤트입니다. 

그저 골드 쉽이 최강캐였던 첫 챔피언스 미팅
그저 골드 쉽이 최강캐였던 첫 챔피언스 미팅

'게이트 난동' 사건도 동명의 스킬로 구현됐습니다. 타카라즈카 기념을 앞두고 고르는 선택지에 따라 확률적으로 생기는데요. 스타트에서 특별히 더 늦게 출발하는 디버프 스킬입니다. 스킬 포인트를 소비해 없애야 하고요.

하지만 잘 키워놓으면 PvP에서 이만큼 든든한 우마무스메도 몇 없습니다. 장거리 대회는 물론 중거리 용도로도 충분히 쓸 수가 있죠. 공짜로 받는 캐릭터인데도 1티어. 맨 뒤에서 설렁설렁 뛰어오다가 서서히 선두를 향해 달려가는 '추입의 맛'은 써본 유저라면 다 알 겁니다. 

"나를 만나서 인생 좀 재밌어졌지?"

골드 쉽이 우마무스메에서 소중한 이유는 단순히 재미있어서만은 아닙니다. IP 암흑기에 명맥을 이어준 '개국 공신'이기도 하거든요.

우마무스메 게임은 첫 공개 이후 개발 과정을 통째로 갈아엎었고, 실제 출시까지 무려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애니메이션 시즌1 방영 뒤에도 3년 동안 아무 것도 없었고요.

IP 존폐 자체가 시작부터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우마무스메는 유튜브 채널 '파카튜브'를 신설하고 골드 쉽을 1인 버츄얼 유튜버로 내세워 조금이나마 공백을 채우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콘텐츠를 만들어나갔죠. 

결국 우마무스메는 애니메이션 시즌2와 게임 출시로 화려하게 날아올랐고, 파카튜브는 공식 정보 채널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골드 쉽의 1인 예능 활약이 없었다면 공백기 사이 모두의 기억에서 잊혀졌을지도 모릅니다. 

우마무스메가 몇십년 이상 가면서 사랑받을 수 있을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이 재미있는 캐릭터가 우리에게 준 웃음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겁니다. 원본마 고증 그대로 말이죠.


(NEXT : ⑤ 하루 우라라 - 113전 전패가 만들어낸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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