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그 자체에 집중시키는 힘은 역대 최고

금일(25일) 90년대 PC 게임을 즐겼던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킬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조이시티의 김태곤 CTO가 자사에서 준비 중인 '창세기전: 안타리아의 전쟁'을 공개한 것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창세기전: 안타리아의 전쟁'은 한국 패키지게임 시장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게임 '창세기전'의 IP를 활용한 게임. 지금은 위세가 예전만 못 하지만, 과거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던 SRPG 장르의 매력을 국내 게이머들에게 전하며 SRPG 대중화에 기여한 게임이기도 하다.

창세기전이 '현역'이던 시절에 이 게임을 즐기던 이들이라면 그 이름만으로도 반가운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이식, 리메이크와 신작까지. 창세기전과 관련한 소식만 전해지면 유저들이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은 그 정도로 이 게임이 많은 인기를 구가했었다는 증거다. 김태곤 CTO가 '창세기전: 안타리아의 전쟁'을 공개하면서 "창세기전은 첫사랑이다"라고 말한 것은 이런 유저들의 마음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창세기전 IP에 대한 추억이 없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반응이 낯설다. 많고 많은 고전 게임 중 왜 유독 창세기전 IP에 '아재 게이머'들이 열광을 하고, 창세기전 오리지널 넘버링이 실패했음에도 계속해서 이 IP에 관심이 끊이지 않는지 말이다.

 

사실 창세기전은 지금 기준에서 들여다보면 굉장히 단점이 뚜렷한 게임이다. 지금 기준에 비추어보는 것이 아니라 90년대 중후반 기준으로 보더라도 게임의 짜임새나 시스템 측면에서는 분명 지적사항이 적지 않다. 

후반으로 갈 수록 광역기에 의존하게 되는 게임 밸런싱과 광역기 유무로 캐릭터 성능 격차가 판가름 되기 때문에 클래스에 상관 없이 게임의 전략성이 희미해지는 것은 당시에도 지적되던 창세기전의 약점이다.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 육성 시스템도 당시 비판받던 부분이다. 기껏 키운 캐릭터가 유저의 판단과 상관 없이 스토리에 따라 멋대로 전직해버리고, 열심히 육성한 캐릭터가 스토리 때문에 갑자기 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또한 게임 진행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산재했던 버그 문제도 적지 않았다. 이런 부분만 본다면 창세기전을 모르는 이들은 '도대체 이 게임이 왜 인기가 있던 걸까?, '시간이 지나면서 추억이 미화된 거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법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세기전 IP가 유저들의 기억 깊숙한 곳에 자리할 수 있던 것은 이 작품이 국내에서 개발된 모든 게임을 통틀어 가장 방대하고 탄탄한 세계관과 서사구조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창세기전3 파트2의 '뫼비우스의 우주' 설정을 두고 '당위성이 부족하다'는 평이 나오기는 했으나, 창세기전 1, 2편과 3편 파트1는 물론 외전격이라 할 수 있는 서풍의 광시곡, 템페스트 등은 모두 매력적인 캐릭터와 설득력 있는 스토리를 앞세워 유저가 자연스럽게 소설을 읽는 느낌으로 게임에 몰입할 수 있게 한 것이 장점이다.

누군가는 복수를 위해,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누군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다양한 개성과 배경을 가진 인물들이 서로 얽혀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구조는 취하고 있음에도 이야기에 당위성을 잃지 않았다는 것은 이 게임의 큰 장점. 

특히, 90년대에는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에서도 정형화된 캐릭터들이 정형화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일본 미디어 시장에서도 일상적이었으나, 창세기전은 이런 시류 속에서도 캐릭터 설정을 단편적으로 하지 않아 보는 이들의 몰입도를 높였다.

덕분에 '누구의 이야기에 몰두하냐'에 따라 다른 느낌으로 작품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도 창세기전 팬들이 이 시리즈를 사랑하는 이유다.

창세기전의 이런 장점은 최근  국내 게임시장의 형태를 생각하면 더욱 인상적이다. 이 정도로 심도 깊은 세계관과 다양한 캐릭터성을 구축한 게임은  창세기전 시리즈가 처음 등장하고 20년이 넘게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찾아보기 어렵다. 

당시 창세기전을 즐기면서 세계관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에 집중하며 게임을 즐겼던 이들에게 창세기전 이외에 이러한 매력을 전달하는 게임이 없었기에, 여전히 '아재 게이머'들은 창세기전에 열광하는 것이다.

저작권자 © 게임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