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 1일 그것도 만우절 날. "우리 합병해요~"라는 황당한 소식을 전한 일본 게임 회사 스퀘어와 에닉스의 합병은 게임 업계에서는 큰 충격 중 하나였다. 이 이후로 수많은 일본 게임 회사들이 서로 눈 맞아 줄줄이 청첩장을 날린 건 덤이었다.

스쿠에니(スクエニ) 라는 귀여운 애칭을 얻은 이 합병은 사실 그리 좋은 이슈로 시작된 건 아니었다. 곁으로 보기에는 상류 사회에서 이름 깨나 날리던 부자들의 정략결혼과 같았지만 속을 보면 쓰러져 가는 집안끼리 눈물을 머금고 벌인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것이다.

당시 두 회사의 합병은 거짓말 같았다.

사실 양사의 합병은 1990년 후반에 이루어질 뻔했다는 점이다. 그때는 도도한 아가씨 에닉스의 바람기 때문에 이루어지지 못 했다. 닌텐도와 결별한 후 소니를 비롯해 몇몇 회사와 바람을 피우던 에닉스는 이쪽저쪽도 아닌 선택 아닌 선택을 하며 시장을 흔들어놨다.

스퀘어 측은 당시에 약간 빈정이 상해 있는 상태였다. 아쉬울 것 없는 재력 남이자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던 그가 ‘드래곤 퀘스트’라는 작품과 내수 출판, 유통업 위주로 움직이던 에닉스의 분위기를 맞춘다는 건 썩 신나는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에닉스와 스퀘어를 대표하는 드래곤 퀘스트, 파이널 판타지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와 드래곤 퀘스트의 관계 때문에 양사를 라이벌로 보는 유저, 언론의 시선이 있었지만 실상을 보면 전혀 다른 구조로 생존해 있는 업체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둘의 정략결혼은 업계에선 의외의 선택으로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이런 구조가 양사에게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형태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장인 정신을 바탕으로 개발에 몰두하던 스퀘어와 드래곤 퀘스트를 제외하면 퍼블리셔 역할에 충실한 에닉스가 손을 잡으면 내수 시장 내 입지는 물론 해외에서의 파급력도 충분히 기대해볼 수 있기 때문.

그러나 1999년이 지나도 결혼에 대한 내용은 나오지 않고 기약 없이 밀리기 시작했다. 여전히 에닉스의 바람기는 업계 뒤 바람을 타고 정신없는 풍문만 만들어 냈고 있었다. 스퀘어는 결국 기다리지 못하고 과감한 투자에 들어간다. 더 큰 손이 되기 위해서 말이다.

이 작품의 성공으로 영화화의 도전이 시작됐다.

2000년도 스퀘어는 자사의 가장 강력한 프랜차이즈 파이널 판타지를 영화화 시켰다는 자료를 내고 본격적인 홍보에 들어간다. 일본의 게임 경쟁력은 물론 완전히 업계 판도를 뒤집을 풀 CG 영화를 전 세계에 내놓겠다는 것. 당시 이 소식은 게임, 영화 업계 큰 충격을 안겨줬다.

당시 CG 영상은 일반적 게임에서도 쉽게 사용할 수 없는 고급 기술이자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는 시스템이었다. 그때 당시 많은 업체들은 1994년 나온 플레이스테이션 플랫폼의 3D 재현 기술에 맞춰 기술을 상승시키고 있었지만 풀 CG 영상 영화, 애니메이션 제작은 꿈도 꾸지 않았다.

영화 파이널 판타지 스피릿 더 위드인 영화 포스터

막대한 비용은 물론 이를 만들 인력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기 때문에 스퀘어의 도전은 일본 전체가 기대하고 응원하는 분위기로 전환됐다. 스퀘어도 당시에는 월간 잡지와 서서히 불기 시작하는 인터넷 열풍을 활용한 홍보에 열을 올렸고 분위기는 전 세계로 조금씩 퍼져나갔다.

이렇게 모습을 드러낸 영화가 바로 ‘파이널 판타지 스피릿 위드인’(FINAL FANTASY THE SPIRITS WITHIN)이다. 2001년 7월 여름에 맞춰 전 세계 개봉을 준비한 이 영화는 당시 우리나라 돈으로 약 1,700억 원(엔화 170억 엔)이라는 막대한 자금이 투입된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90년대 당시 1억 불, 약 1,000억을 넘긴 영화들은 블록버스터 이상의 대우를 받으며 전 세계 영화팬 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지금이야 2,000억 이상을 사용하는 작품들을 쉽게 만날 수 있게 됐지만 2000년대 초반 1,700억 원의 영화는 대단,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한국형 블록버스터 쉬리.. 덕분에 키싱구라미도 유명해졌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한국형 블록버스터로 유행하던 ‘쉬리’는 제작비 25억 원, 마케팅 비용 15억 원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충 계산해보면 파이널 판타지 스피릿 위드인 영화 제작비로 약 40~50개의 쉬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것. 또한 당시 물가 등을 고려하면 더 대단해진다.

파이널 판타지 스피릿 위드인은 점차 미래형 스페이스 판타지로 분위기를 전환 시키던 파이널 판타지 게임 시리즈에 맞춰 미래형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고전 문학에 가깝던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는 7편을 기점으로 스팀 펑크 분위기의 어두운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7편부터 스퀘어는 파이널 판타지의 세계를  미래화하기 시작했다.

파이널 판타지7는 전 세계 980만 장이라는 엄청난 판매를 기록했다. 일본 자국 내에서는 약 326만 장을 판매하며 그야말로 시리즈 최고 수준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1997년 일본 내 수많은 수상 경력은 물론 해외에서의 수상과 극찬들이 이어지며 지금도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같은 성공은 미래형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를 만드는 원동력으로 작용했고 이후 나온 시리즈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1999년 2월 11일 출시된 파이널 판타지 8은 CD 4장이라는 파격적 구성과 8등신 캐릭터, 그리고 풍성한 풀 보이스 CG 영상들로 가득했다.

8편의 경우는 일본 내에서는 전작보다 높은 판매량을 기록해 시리즈 중 일본 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작품이 됐고 전 세계 800만 장이라는 높은 판매량을 달성했다. 이 같은 성공은 당시 ‘밀레니엄’ 시대에 맞춰 게임의 상업화에 대한 전반적인 시각을 크게 만든 계기로 작용했다.

당시 공중파에서는 일본 콘솔 게임의 마케팅 성공 사례로 수차례 언급되기도 했고 수많은 언론에서 일본 게임 시장의 장밋빛 미래를 언급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게임 중 하나가 됐다. 일본 골든 디스크를 게임 주제가 ‘Eyes On Me’가 수상하기도 해 눈길을 끌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수 메이비가 부른 리메이크 버전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물론 게임 팬에게는 8편이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를 부정하는 안티 팬을 양성하는 계기라고 하지만 결과론적으로는 두터워진 지갑과 높아진 위상 때문에 7편, 8편의 성공 사례는 이후 스퀘어의 본질을 바꾸는 계기로 작용하게 된다.

스퀘어가 선택한 노선은 화려한 그래픽과 드라마를 보는 듯한 영상에 있었다. 풀 3D로 제작된 7편과 8편은 아름다운 영상미를 자랑하는 CG 부분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실시간 3D 영상 부분은 다소 어색했지만 CG는 지금 봐도 뛰어날 정도로 아름답다.

그리고 이때부터 영화에 대한 언급이 나오기 시작했다. 스타 트랙 시리즈나 스타 워즈 등의 북미 시장 내 지대한 영향을 끼치던 SF 영화를 스퀘어가 그것도 풀 CG 영상으로 제작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내부 의견이 조금씩 힘을 얻기 시작 했기 때문이다.

이 의견은 무려 타나카 히로미치 개발자와 함께 스퀘어의 황금기를 만든 주역 ‘사카구치 히로노부’의 입에서 나왔다. 파이널 판타지 1편을 시작으로 9편까지 일본 RPG의 성공 신화를 이끈 그는 7편, 8편의 대중적 성공을 바탕으로 더욱 큰 한 방을 기획하기 시작한다.

사카구치 히로노부는 직접 할리우드의 스태프와 손을 잡고 전 세계 최초의 풀 CG 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한다. 스퀘어는 당시 170억 엔에 가까운 제작비와 엄청난 마케팅 비용을 쏟아 영화를 완성, 홍보한다. 홍보 기간도 1년에 가까웠을 정도였다.

이 영화가 나오기 전 스퀘어는 두 개의 작품으로 생성된 안티를 잠재우기 위한 시도를 한다. 파이널 판타지 9는 전작과 달리 초기 파이널 판타지 세계관과 흡사한 느낌을 준다.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나온 마지막 작품인 이 게임은 누적 판매량 550만 장을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기대보다는 실망스러운 결과였고 원작 분위기, 세계관의 활용은 대중적인 성공을 거둘 수 없다는 판단을 수뇌부가 하게 만드는 계기로 작용한다. 그래서 사카구치 히로노부의 도박은 힘을 얻게 되고 희대의 사건 파이널 판타지 더 스피릿 위드인이 개봉을 앞두게 된다.

스퀘어에게는 잊을 수 없는 시기 2001년 6월과 7월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풀 CG 영화, 게임을 소재로 한 문화의 확산 등 다양한 주제로 여론 몰이를 하던 스퀘어는 북미 개봉과 함께 연이은 참패 소식을 접하고 짧은 기간 극장에서 간판을 내리게 된다.

엄청난 자본이 투입된 일본 영화 역사 상 유래 없는 프로젝트였지만 결과는 대 참패였다. 이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대략 제작비의 2배인 3,400억 원이었다. 미국 내 수익은 3,200만 달러 정도였고 1개월 뒤 개봉된 타 아시아 국가와 일본 개봉 역시 최악의 결과를 기록한다.

사용한 금액의 1/5도 벌지 못하고 영화가 망한 이유는 무엇일까. 평론가들은 영화 작품에 대한 비평보단 여름을 겨냥한 이 작품이 전혀 재미가 없었다는 점을 들고 있다. 관람객들은 시원하게 부수고 파괴하고 날려버리는 내용을 기대하고 왔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무적에 가까운 팬텀이라는 생명체에 의해 죽어가는 지구인들이 자신들의 최종병기로 팬텀의 본거지로 추측되는 운석을 파괴해 전쟁을 종결 시키자는 내용으로 진행되는 이 영화는 시종일관 무겁고 복잡하며 어려운 이야기를 한다.

게임 유저들처럼 플레이하며 세계관을 배우고 동화하는 시간이 없었던 일반 대중들은 2시간 동안 벌어지는 풀 CG 배우들의 열연이 낯설기만 했고 여름 더위를 날려줄 시원한 청량음료 같은 통쾌함만 기다리다가 허무하게 올라오는 스탭 롤에 분노를 표하기도 했다.

또한 ‘불쾌한 골짜기’(언캐니 벨리, Uncanny valley)로 불리는 현상도 한 몫을 했다. 이 용어는 로봇이 인간을 어설프게 닮을수록 불쾌함이 증가한다는 일본 로봇 공학자 모리 마사히로의 논문에서 나왔다. 영화 속 캐릭터들의 모습이 관람객들 상당수에게 불쾌함을 줬을 수도 있다.

이와 비슷한 평가를 받은 영화로는 톰 행크스의 1인 5역으로 화제가 된 워너브라더스사의 애니메이션 영화 ‘폴라 익스프레스’가 있다. 당시 이 영화는 동화 폴라 익스프레스를 풀 CG로 제작한 형태였는데 관람객 상당수가 등장 인물들이 어색하고 불편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몰락했다.

참고로 이 영화의 일본 개봉에는 파이널 판타지10의 출시도 함께 이루어졌다. 최종 결과는 전 세계 850만 장이라는 준수한 결과였지만 영화의 참패로 인해 자칫 시리즈의 마지막 또는 스퀘어의 마지막 파이널 판타지 게임이 될 수도 있었다. 결과론적이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 영화의 실패로 인해 스퀘어는 몰락의 위기에 빠지게 된다. 사카구치 히로노부의 과감한 한 수였지만 여기에 투입된 건 스퀘어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때 손을 내밀어준 곳은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전 세계 돌풍을 일으킨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 쪽이었다.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 측은 1,500억 원을 긴급 지원해 자금난에 빠진 스퀘어를 수령에서 꺼내줬고 향후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의 독점 출시라는 무언의 약속을 받는다. 이렇게 쪽박을 면하게 된 스퀘어는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라는 주주들의 압박에 사카구치 히로노부를 퇴사 시킨다.

이후 스퀘어는 2003년 4월1일 에닉스와 합병에 최종 합의한다. 상처 뿐인 스퀘어를 품은 에닉스는 대승적인 선택도 한다. 이미 무너질 때로 무너진 스퀘어를 합병 후 이름의 앞에 올린 것. 사실상 에닉스가 스퀘어를 흡수하는 방식으로 진행 됐기 때문에 이 같은 결정은 의외라는 평가였다.

당시 에닉스 측은 스퀘어 계의 그 동안의 결과를 존중하고 영화로 무너진 자존심을 세워주자는 내부의 의견, 그리고 개발 스탭이나 힘든 스퀘어 인력들에게 힘을 주자는 의미로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일부는 에닉스스퀘어보다 스퀘어에닉스 발음이 편해서 아닐까라는 의심도 했다.

결국 전 세계 최초의 풀 CG 영화 파이널 판타지 스피릿 더 위드인을 향한 스퀘어의 꿈은 이렇게 무너졌다. 하지만 이후 에닉스와 소니의 든든한 지원 속에 다시 부활을 날개짓을 시도했고 망작이라는 평가는 받았지만 재기의 발판을 삼은 13을 시작으로 다시 힘찬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후 스퀘어에닉스는 무리하지 않는 노선을 선택하며 게임과 영화 사이를 오고 갔다. 일본 OVA 판매량 중 1위를 기록한 2005년 작 파이널 판타지7 어드벤스 칠드런과 TV 시리즈 파이널 판타지 언리미티드 등 다양한 영상물을 선보였다.

물론 어드벤스 칠드런은 50만장 이상 일본 내 판매를 기록하며 10만장 이상이면 초 대박이라는 OVA 시장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을 달성했다. 이 작품은 본의 아니게 OVA 시장 내 기념비가 될 작품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 또 하나의 파이널 판타지 영화가 등장했다. 일본에선 7월9일, 북미 시장에서 8월19일, 우리나라는 8월25일 개봉한 ‘킹스글래이브: 파이널 판타지15’(Kingsglaive: Final Fantasy XV)가 그것이다. 어드벤스 칠드런 이후 나온 정말 오랜만의 영상물이다.

다시 돌아온 스퀘어의 야망 ‘킹스글래이브 파이널 판타지15’

이 영화는 게임 파이널 판타지15의 주인공 녹티스와 그의 동료들의 이야기가 아닌 녹티스 일행이 자리를 비운 사이 루시스 왕국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국왕인 레기스 113세와 그를 지키는 요원 닉스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작품은 하세가와 타카시 원작에 노즈에 타케시 감독이 연출, 미국 영화배우 아론 폴과 영국의 레나 헤디, 숀빈 등이 출현한다. 이 작품은 게임 파이널 판타지15의 세계관 및 원작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주고 빠른 전개와 화려한 그래픽으로 호평을 받았다.

15년 전 있었던 경험이 바탕이 된 것인지 모르지만 북미는 물론 일본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극장에서는 오랜 시간 상영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 애니메이션은 디즈니와 픽사를 제외하면 무덤 수준이기 때문이다. 최근 개봉했던 요괴워치 역시 국내에선 참패를 하며 막을 내렸다.

스퀘어의 원대한 영화의 꿈은 ‘한 여름 밤의 꿈’처럼 허무하게 지나가 버렸지만 이로 인해 게임과 영화 역사는 큰 반환점을 돌았다고 볼 수 있다. 게임의 상업적 발전과 전문화된 마케팅의 시작이 이루어졌고 게임이라는 문화의 대중화, 풀CG 상업 영화의 등장 등 문화계 전반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물론 결과론 적인 이야기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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